살 게 없어도 매번 찾게 되는 '춘천 풍물시장 5일장'
책상 위 달력 곳곳에는 이런저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월급날이나 공과금 결제일, 적금 이체일 등등 매달 꼭 기억해야 할 날들을 표시해 놓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규칙적인 간격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는 날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장날'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인근에는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마다 장(춘천 풍물시장 5일장)이 열린다. 걸어서도 갈 수 있어서 장날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장 구경에 나선다. 주로 사과나 딸기, 귤 같은 과일이나, 감자와 토마토, 양파 등 채소류를 사곤 한다. 신선한 지역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딱 혼자 먹을 만큼만 구입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간혹 "총각 하나 더 맛보라"고 하나 씩 더 덤으로 주시기도 하는데 이런 '정(情)'도 장터를 찾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깔끔하게 잘 차려진 마트도 나쁘지 않지만, 사람 냄새나는 장터에 가면 숨통이 트인다.
어린 시절 살던 도시에도 5일장이 있었다. 엄마가 장터에 간다고 하면 짐꾼을 자처하며 얼른 따라나서곤 했다. 엄마 손잡고 시장 골목을 누비다 보면 신기하고 재밌는 볼거리가 가득했고, 만두나 떡볶이 같은 맛있는 간식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 시절 장날은 5일마다 찾아오는 마법이었다. 그 영향일까. 나는 지금도 시장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본가에 갈 때면 엄마와 시장을 둘러보며 군것질을 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는 딱히 무엇을 살 필요가 없더라도 시장이 있으면 꼭 들러 보게 된다. 그래서 집 근처에 5일장이 선다는 것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남춘천역 교각 아래 쭉 늘어서는 풍물시장 5일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춘천은 물론, 가평이나 홍천, 양구 등 주변 지역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특히 장날이 주말과 겹치는 날이면 최대 10만 명의 손님들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시장 규모도 제법 커서 한쪽 끝에서 출발해 다른 한쪽 끝까지 1.5km에 달하는데, 장터 곳곳을 둘러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봄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캐 온 봄나물 냄새가 진동하고, 여름밤에는 푸드트럭들이 모여 야시장을 꾸린다. 가을에는 햇곡식, 햇과일이 풍성하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국수가게나 어묵집, 전집에 손님들이 유독 많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장터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지난여름에는 옥수수 삶는 구수한 냄새가 발길을 잡았는데, 이번에는 닭꼬치 굽는 냄새에 지갑을 열었다.
강원도 장터의 특징은 메밀이나 감자를 활용한 음식들이 많다는 것이다. 풍물시장뿐 아니라 강원지역 어느 장터를 가도 메밀전이나 메밀전병, 메밀국수, 감자전, 감자떡 등 강원도 토속 음식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수도권의 시장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었던 음식이기에, 내가 강원도 장터에서 처음 먹은 음식도 메밀요리였다. 강원도에 온다면 장터에서 강원도 토속 음식들을 맛보기를 추천한다.
풍성한 먹거리만큼 공산품도 다양하다. 신발이나 옷, 모자, 각종 생활용품 등 정말이지 없는 게 없다. 특히 구제 의류점을 꼭 들러보게 되는데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기도 한다.
딱히 살 게 없어도 매번 이곳을 찾게 된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온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뻥튀기라도 하나 사 먹고 오게 되는, 그런 아기자기한 재미가 이곳엔 있다.
[TRAVEL TIP] 춘천 풍물시장 5일장
끝자리가 2일, 7일마다 열리는 춘천의 민속 5일장. 1989년 약사천 복개지 위에 '풍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2011년 이 자리로 이전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춘천을 비롯해 홍천과 양구, 인제 등에서 채취되는 싱싱한 지역 농산물들로 가득하다.
남춘천역, 춘천터미널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도 접근하기 좋고, 최근에는 주변에 공영주차장까지 문을 열게 되면서 주차도 한 층 편리해졌다. 하루 평균 4~5만 명, 주말과 겹치면 10만 명에 가까운 손님들로 북적인다. 계절별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으며, 새벽에는 농산물 장터(봄~가을, 오전 5시~오전 10시)가, 밤에는 야시장(봄~가을, 금/토 오후 6시부터)이 운영되어 밤낮으로 시장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