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이유보다는 싸움의 방식

by 해센스

한껏 싸우고 나서 고작 며칠 후, 왜 싸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소하게 장난치다가 장난이 누군가의 인내심을 넘어서고 복수심에 불타 한 번 더 한 번 더 하다가 큰 싸움이 되는 어린 시절 남매지간의 싸움 같은 투닥거림에서부터 ‘우린 너무 가치관이 달라‘라는 본질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말다툼에 이르기까지 시작이 사소했든 창대했든, 결국 싸우고 나면 싸움 이후의 감정만 남고 싸움의 이유는 쉽게 잊힐 만큼 작은 것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거의 밤을 새워가며 싸웠던 연애가 있다. 각자의 생각과 입장을 끝까지 이야기했다. 숨이 막혀 답답하다고 호소한 적은 있어도 싸움 이후에 그를 미워했던 적은 없었다. 소리 한 번 높이거나 거친 표현 하나 쓰지 않고 우리는 몇 시간을 내리 이야기했다. 감정이 격해질 것 같으면 10분, 20분, 길게는 한 시간을 쉬고 또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대로 잠을 못 자고 맞은 아침에도 서로의 하루를 위해주었다. 답답한 마음은 각자 스스로 해결해야 했지만, 그래도 서로를 불안하게 하거나 필요한 것보다 결코 더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긴 싸움으로 마모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쓰라리게 안아주며 다시 시작될 서로의 긴 하루를 응원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는 상대방을 찌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싸웠다. 무기는 내려놓고 서로 방패만 들고 싸웠던 것 같다. 각자의 생각을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으려는 싸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각자의 경험의 부족과 그로 인한 어떤 측면의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를 끝도 없이 이야기하고 결국 조율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싸움이 길어졌다.


그는 우리가 강대강이라서 안 맞는 것이라고 했다. 한 명이 리드하고 한 명이 따라와야 하는데 둘 다 리더형의 사람이라서 부딪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싸움의 방식에 대해서만큼은 서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결코 감정이 어느 선을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아무리 싸워도 우리가 과격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것을 우리의 장점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언제나 차분했고 언제나 나를 존중했던 그의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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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common sense)의 각도를 기울이는 생각(Hailey's sense)을 씁니다. #신경다양성 #ASD #ADHD #심리 #연애 관심있는 분들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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