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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Jan 29. 2024

앤이 사랑한 영미 문학들 (1)

빨강머리앤 속 영문학 이야기 - 소설과 시 이야기


빨강머리앤 원서 속에서 가장 많은 영문학 이야기가 등장한 장이라면 아마도 5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5장에서는 특히 앤이 스스로 직접 다양한 영문학 작품들을 언급하는데요.


5장 속에 다뤄진 영문학 이야기를 아래 함께 소개합니다.


먼저 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책들 이야기입니다.

5장이 시작하자마자 금방 등장한 대화 속에서 앤은 빨강머리였다가 나중에 어른되서 머리 색이 달라진 사람 이야기를 아시느냐는 질문에 그런 사람 못봤다는 이야기를 하자 실망하며 앤이 한 표현에서 등장하는데요.



"Well, that is another hope gone. 'My life is a perfect graveyard of buried hopes.' That's a sentence I read in a book once, and I say it over to comfort myself whenever I'm disappointed in anything."

- ANNE OF GREEN GABLES (CHAPTER 5: ANNE'S HISTORY)




앤이 책 속에서 봤다면서 언급한 이 문장은 사실 정확히 어떤 책에서 인용한 문장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graveyard of hope이 관용어처럼 흔하게 사용되는 문장이기도 하고, 저자인 몽고메리 여사와 동시대에 활동한 미국의 유명 자기계발서 작가였던 나폴레옹 힐(Napoleon Hill)의 저서 <Think and Grow Rich>(1934)에서도 유사한 표현으로 "graveyard of dead hope"가 사용되기도 했던 것으로 볼때,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무렵 작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사용되던 문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몽고메리 여사는 특히 신문과 잡지 구독에 굉장히 관심이 높았으며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아마도 동시대 다른 작가의 표현에서 인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표현에 이어 다시 한번 더 책 속 인용을 밝히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마릴라와 대화하다가 앤이 부모님 이름 이야기 하며 장미가 다른 이름이더라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이라는 표현을 읽었다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I read in a book once that a ros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 but I've never been able to believe it. I don't believe a rose would be as nice if it was called a thistle or a skunk cabbage.
- ANNE OF GREEN GABLES (CHAPTER 5: ANNE'S HISTORY)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언급된 책은 바로 널리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제 2막 2장에 나오는 줄리엣의 명대사인데요. 줄리엣이 로미오를 만나고 로미오가 자신의 가문에 원수가 되는 가문임을 알며 한탄하며 말하는 대사였습니다.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
So Romeo would, were he not Romeo call'd,
Retain that dear perfection which he owes
Without that title. Romeo, doff thy name,
And for that name which is no part of thee
Take all myself.


이름이 아닌 사람의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마릴라의 말에 앤이 이 대사를 인용하며 한 말은 참 흥미롭습니다. 마릴라의 말은 마치 줄리엣의 말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앤은 마릴라나 줄리엣처럼 사람의 본질과 됨됨이 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름 처럼 드러나는 것에 한창 더 관심이 많았기에 그러한 삶의 지혜나 의미는 아직 이해하기 힘들다며 말하는데요. 고전을 이용한 표현이 참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이어서 여러개의 영시가 등장합니다. 앤은 마릴라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학교 다닌적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에 이어서 자신은 책 읽기를 좋아하며 그 중에서 특히 시를 가슴에 품고 좋아한다며 여러개의 시를 소개합니다.




I can read pretty well and I know ever so many pieces of poetry off by heart—'The Battle of Hohenlinden' and 'Edinburgh after Flodden,' and 'Bingen of the Rhine,' and most of the 'Lady of the Lake' and most of 'The Seasons' by James Thompson. Don't you just love poetry that gives you a crinkly feeling up and down your back? There is a piece in the Fifth Reader—'The Downfall of Poland'—that is just full of thrills. Of course, I wasn't in the Fifth Reader—I was only in the Fourth—but the big girls used to lend me theirs to read."

- ANNE OF GREEN GABLES (CHAPTER 5: ANNE'S HISTORY)



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들은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담아낸 시가 많습니다. 주로 전쟁과 역사적 사건을 담아낸 서사시가 5장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장에서도 자주 등장하지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들도 하나를 빼고는 모두 전쟁이나 슬픔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앤이 경험한 과거의 기억이 특히나 아픔과 상실, 고난의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저자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앤이 소개한  중, "The Battle of Hohenlinden"  (1803)과  "The Fall of Poland" (1799) 는 스코틀랜드의 시인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 1777-1844)이 쓴 시입니다. 캠벨은 주로 프랑스 혁명전쟁을 둘러싼 유럽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주제로 한 시를 여러편 남겼는데요. 그 중 이 두 시는 저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중 The Battle of Hohenlinden은 프랑스의 혁명전쟁 시기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벌인 호엔린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시로, 실제로 시인이 이 무렵 독일에 방문했다가 전쟁 장면을 목격하고 쓴 시라고 합니다.

Moreau at Hohenlinden (Galerie des Batailles, Palace of Versailles)

전쟁의 장면과 그 순간의 느낌을 담아낸 시로 혼란스러움과 무섭고 정신없게 몰아치는 전쟁의 순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의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poetry-archive.com/c/hohenlinden.html


Fall of Poland는 캠벨의 대표작인 장편 교훈시 Pleasures of Hope에 수록된 시로 폴란드-리투아니아공국이 멸망하던 순간을 담은 시입니다. 나폴레옹의 지지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와 맞써 싸워 전쟁했으나 끝내 침공받은 나라들에 패전하여 나라가 사라지게 된 비극적인 순간을 담아낸 시입니다.


http://www.poetryatlas.com/poetry/poem/3211/the-fall-of-poland.html


다음으로 소개된 <Bingen on the Rhine>(1867)은 19세기 보기드문 여류시인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영국의 캐롤라인 노턴(Caroline Elizabeth Sarah Norton,1808-1877)이 쓴 장편시로 프로이센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하여 죽어가는 빙겐 지역 출신의 군사가 자신의 사랑하는 이들- 가족, 여동생, 연인과 어머니-에게 전해달라며, 자신을 치료하던 간호사에게 남긴 유언과도 같이 남긴 말을 시처럼 쓴 글입니다.


전쟁을 담아낸 시 중 손에 꼽히게 아름답다는 평이 있는 시로도 유명하지요. 이 시는 계속해서 뒤에도 반복해서 등장하는데요. 길버트가 앤을 지긋이 바라보며 청소년 문학회에서 낭송하는 시가 바로 이 시입니다.


시의 전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archive.org/details/hhfbc196-bingenontherhine



이어서 소개된 <Edinburgh after Flodden>(1849)는 스코틀랜드의 시인 윌리엄 애이툰(William Edmondstoune Aytoun, 1813-1865)이 쓴 서사시로 스코틀랜드의 국왕이었던 제임스4세 당시 벌어진 영국과의 전쟁을 담은 장편 서사시집인 LAYS OF THE SCOTTISH CAVALIERS에 수록돈 시 입니다. 이 장면은 특히 치열했던 전투로 인해 제임스4세와 그와 동행했던 귀족들과 군인들이 전사한 소식과 슬픔을 담아낸 장면입니다.



시의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artleby.com/lit-hub/every-day-in-the-year-a-poetical-epitome-of-history/edinburgh-after-flodden/


이어서 소개된 The Lady of the Lake (1810)는 스코틀랜드의 시인으로 유명한 월터 스코트경 (Sir Walter Scott,1771-1832)이 쓴 장편 서사시입니다. 우아한 제목과 달리 이 시 역시 비극적인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전쟁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집은 특히,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가곡의 원시로 유명한 기도의 노래가 수록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시집은 바로 앞서 소개한 윌리엄 애이툰의 <Edinburgh after Flodden>시의 바로 다음 시기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계속된 전쟁의 비극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곧 제임스5세가 왕이 되고 나서 계속 이어진 전쟁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비극적인 상황들을 시로 담아낸 장편 서사시입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서 앤의 관심이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비극에 관심이 높았음을 초반부터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앤은 물론이거니와 마릴라와 매튜 모두 스코틀랜드계 이민자인것으로 작중 설정되어있고 그에 큰 자부심을 갖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그렇다보니 스코틀랜드 시가 특히 많이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용맹함, 전쟁과 비극을 다룬 시들이 계속해서 여러차례 등장합니다.


위 시의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utenberg.org/files/3011/3011-h/3011-h.htm



이어서 앤이 가장 좋아한다며 소개한 The Seasons (1730)는  스코틀랜드의 시인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 1700-1748)이 쓴 장편시로 앞서 소개한 시들과 달리 유일하게 전쟁이 아닌 자연, 특히 농촌의 사계절 정경을 노래한 시입니다.


이 시는 농촌의 사계절을 주제로 하며 원래는 겨울(Winter, 1726), 여름(Summer,1727), 봄 (Spring, 1728), 가을 (Autumn, 1730)의 순서로 발표된 뒤 모음집으로 완성된 시입니다.



이 시는 앤 특유의 자연과 농촌 마을을 사랑하는 그 감성이 가득 담겨있는 시로, 매우 평온하고 목가적인 시입니다. 농촌에 나타나는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그 특징을 잘 담아낸 시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 시를 마지막으로 소개함으로써 아마도 저자는 앤이 비극적인 상황과 혼란스러움 속에 자라왔지만 그 안에 평화로운 전원생활과 그 안에서 누리는 안정감을 동경하며 그러한 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시의 전문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https://en.m.wikisource.org/wiki/The_Seasons_(Thomson)



끝으로 5장 후반부에서 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등장한 장면에서 시적 표현을 인용하여 주위의 풍경을 담아낸 장면이 등장합니다.



The shore road was 'woodsy and wild and lonesome'.
ANNE OF GREEN GABLES (CHAPTER 5: ANNE'S HISTORY)



따옴표를 사용해서 인용했음을 드러낸 이 구절은 미국의 유명한 퀘이커교도 시인이자 노예해방 운동가이기도 했던 존 위티어(John Greenleaf Whittier)의 시 <Cobbler Keezar's Vision>에 등장한 시구입니다.


이 시는 구두장이 키자가 본 환상 속의 미래를 주제로 한 시로 목가적인 분위기의 자연과 마을 이야기를 담아낸 시입니다.


힘겨웠던 앤의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를 앞두고 있을때 이 시구를 인용함으로써 앤 앞에 기다리는 미래에 밝은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던 저자의 문학적 장치가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이 시의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telelib.com/words/authors/W/WhittierJohnGreenleaf/verse/wartime/cobblerkeez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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