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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Jan 20. 2024

빨강머리앤 속의 빅토리안 시대 식사 문화

Lunch가 아니라 Dinner라고? Tea가 저녁 식사였다니!

영화 Anne of Green Gables(1972)의 한 장면


빨강머리앤을 읽다보면 오늘날 현대 미국의 도시 영어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식사 용어가 등장하곤 합니다. 이는 빨강머리앤이 작성된 시기가 여전히 빅토리안 시대 영국 문화를 강하게 받아 나타난 특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삼시세끼에 관한 명칭은 Breakfast-Lunch-Dinner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명칭은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의 도시 문화를 중심으로 통용된 표현이었고, 그 이전까지 주로 사용하던 표현은 바로 Breakfast-Dinner-Supper(또는 Tea) 였습니다.


이 표현은 빨강머리앤 속은 물론이거니와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에는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도 여전히 캐나다와 미국의 시골 지역에서는 여전히 통용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영국계 이주민들이 정착해 지내면서 그 표현이 지금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최근 이사와 지내고 있는 이곳 미국 북부 시골 지역에서도 삼시 세끼를 뜻할때 지금도 Breakfast-Dinner-Supper라 말하곤 합니다. 특히 지역을 불문하고도 연배가 있으신 노년층에서는 여전히 이 표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Dinner가 통상 가장 잘 챙겨먹는 식사를 챙기기 때문인데요. 특히 전기가 거의 없던 빅토리안 시대와 에드워디안 세대에서는 점심때가 환하기 때문에 요리하기에 좋았고 또한 귀족이 아니고서는 저녁에 밝게 불을 켜놓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된 농업에 종사하면서 식사로 낮에 에너지를 보충할 필요도 있었기에 보통 점심 식사를 가장 잘 챙겨먹었고 그래서 Dinner가 통상 하루 중 가장 잘 챙겨먹는 식사면서 점심을 뜻했다고 합니다.


빨강머리앤에서 점심식사는 언제나 Dinner란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4장에서는 아침 식사 후로 등장하는 식사로 Dinner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요.



and then Marilla, to get rid of her, told her she might go out-of-doors and amuse herself until dinner time.

- Anne of Green Gables, Chap 4



마릴라가 앤에게 아침 먹고 나서 설겆이와 방정리를 한 뒤에 점심 먹기 전까지 밖에서 놀고 와도 된다고 말하며 바로 Dinner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저녁을 지칭하는 Supper는 보통 가벼운 식사를 뜻하곤 합니다. 여러가지 생활 조건 상 저녁때는 어둡고, 하루의 긴 노동 후에 여러가지를 차려 먹을 여력이 되지 않았기에 미리 낮에 만들었던 것 중에서 간단히 먹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는 Supper란 표현이 굳어졌던 것이지요.


한편, 저녁식사는 Supper 대신 Tea라 지칭하거나 두 용어가 서로 혼용되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주로 실제로 저녁 식사가 간단히 차와 빵, 비스킷과 말린 과일이나 치즈 등으로 매우 간소하게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Tea는 그래서 문맥상으로 가벼운 간식을 뜻할때도 있지만 저녁을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4장에서도 Tea가 간단한 저녁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마릴라가 앤과 함께 스펜서 부인집으로 가며 매튜에게 간단히 저녁도 차려놓고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Tea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농가에서 보통 저녁 식사 후 저녁이나 밤에 자기 전 마지막으로 소젖을 짰던 것을 고려하면 Tea는 저녁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I'll set your tea out for you and I'll be home in time to milk the cows."

- Anne of Green Gables, Chap 4




이 외에도 빨강머리 앤 원서에서는 여러차례 Tea가 저녁식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앤이 나중에 다이애나를 Tea에 초대하거나 목사님 대에 Tea에 초대받아 갔다는 것은 저녁을 뜻합니다. 그러나 1장에서 린드부인이 얼른 Tea를 마치고 마릴라 집에 간다고 했을때에는 가벼운 간식 또는 정말 차 한잔을 뜻하기도 합니다. Tea는 그만큼 경계가 모호하고 문맥상 그 의미가 굉장히 달라질 수 있는 용어입니다.

 

빨강머리앤 원서에서는 곳곳에서 이런 표현이 서로 혼용되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장에서도 대표적으로 Tea와 Supper 두 표현이 모두 저녁을 지칭하는 용어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I'm going out to put the mare in, Marilla. Have tea ready when I come back."

(...)

Anne took off her hat meekly. Matthew came back presently and they sat down to supper.

<Anne of Green Gables, Chap 3>




매튜는 농장일 보러 나가면서 저녁을 준비해달라며 have tea ready라 표현을 사용합니다. 또 바로 이어진 문장에서는 매튜가 오자마자 supper를 먹기 위해 앉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처럼 두 단어가 모두 저녁을 지칭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깜짝 차와 관련된 문화로, 오늘날에는 사라졌지만 빅토리안 시대는 물론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중후반까지도 시골에서는 여전히 차를 마실때 찻 잔에서 차 받침(saucer)에 따라 마셨다고 하는데요. 차 받침은 원래 뜨거운 차를 식혀서 마시기 위한 용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를 마실때면 가난하나 부유하나  언제나 찻잔과 받침이 함께 있었으며, 찻잔 받침이 심미적인 도구가 아닌 실용적 목적이 있었던 만큼 굉장히 중요한 도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 빨강머리앤 원서에는 이처럼 빅토리안 시대의 영국 문화가 곳곳에 담겨있습니다.


재미로 아래의 짧은 만화도 한번 읽어보세요.





참고문헌


https://en.m.wikipedia.org/wiki/Tea_(meal)


https://en.m.wikipedia.org/wiki/Su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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