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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 Mar 25. 2021

우울이 어울리는 계절


꽃은 마스크 안 써


 봄이 오고 있다. 얇은 옷을 꺼내면 금방 사라지고, 패딩을 꺼내면 훅 들어오던 얄미운 봄. '벨튀'를 하듯 사람을 놀리던 봄이 드디어 성큼 다가왔다.


 봄과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직관적으로 '설렘'을 떠올릴 거다. 조금만 날씨가 따뜻해져도 차트를 노니는 <벚꽃 엔딩>만 봐도 그렇다. 따사로운 햇살, 얼굴을 스치는 살랑바람, 거리마다 만개한 꽃까지 사람의 마음을 간질이기에 더없이 적당하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이 찝찝함은 뭘까? 분명 날씨도 좋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화사한데 어딘지 모르게 슬픈 느낌이 차오른다. 너무 밝고 너무 따뜻해서 더 울고 싶은 희한한 감정이다. 조금은 가라앉는 노래로 채운 플레이리스트를 보며 깨달았다. 봄은 우울한 계절이다.




이건 누구의 블루일까


 이 계절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건 나이를 먹어서일까? 아마 아닐 거다. 나뭇잎만 굴러가도 깔깔 웃던 스물하나에도 봄에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으니... 그냥 나의 태생적 블루가 이 계절에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가진 색을 원망하진 않는다. 오히려 고마워하는 편이다. 남다른 우울 덕에 더 깊은 사람이 됐으니까!


 봄이 되면 꼭 듣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보컬 김윤아의 솔로곡 <봄날은 간다>다. 겨울이 가진 우울의 색채가 심해처럼 짙은 감색이라면, 봄이 가진 우울의 색채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색과도 같다. 내가 만든 이 세계관에서 두 노래는 완벽히 연한 하늘색을 띠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영원의 부재. 두 곡의 가사는 다른 표현을 쓰고 있지만 결국에는 같은 것을 말한다. 노래를 들으면 봄이 유달리 서글픈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뺨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봄 햇살은 곧 작열하는 무더위가 될 테고, 온 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피어낸 꽃도 결국 발길마다 함부로 치인다. 이건 돈이나 힘, 권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구의 섭리다.


 끝이 정해져 있는 것만큼 슬픈 게 또 있을까? 만약 인생의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사람은 희망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희망이라는 건 불확실성에서 오는 거니까.

 아주아주 슬프게도 봄이 끝나는 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고, 꽃이 지는 건 너무도 순식간이다. 그래서 나는 봄이 오기도 전에 봄의 죽음을 슬퍼한다.


 대개 설레는 것들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우울은 잔상처럼 남는다. 설렘이 연사라면 우울은 파노라마다. 나의 봄이 설렘으로만 가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생에는 연사로 남기고픈 장면도, 파노라마로 남기고픈 풍경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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