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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조 Nov 13. 2019

아파도 서럽진 않지만

열한 번째


혼자 살면 가장 서러울 때가 아플 때라는 말을 별로 실감해 본 적이 없다.


기숙사와 자취방을 전전한 지 십 년도 넘었고 아플 땐 끝장나게 아픈 편인데도 그렇다. 학부시절엔 위경련이 와서 혼자 학교 근처 응급실까지 거의 네발로 기어서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혼자 자취방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응급실에서 십만 원짜리 영수증을 받아 집으로 택시를 타고 혼자 가면서도 서럽진 않았다. 집에 가면 나에게 먹을 걸 차려줄 사람은 없었지만 삼라만상을 다 파는 편의점에는 통조림식 죽도 팔았다. 음, 참 좋은 세상이다, 통조림 죽도 있고. 데울 필요조차 없이 뚜껑 딸 기력만 있으면 되네. 좀 살만해지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게 다였다.


감기몸살이나 속병을 앓을 때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아는 사람—아마 비전문가일—의 따뜻한 손이 아니라 전문 의료진의 기민한 처치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수액과 약값과 처치료를 낼 수 있는 통장 잔고다. 


요즘은 다시 백수 신세가 되어 부모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심각한 감기몸살을 앓았는데, 집에 항시 구비되어있는 감기약 몇 개로 넘어갈 줄 알았더니 거의 초주검이 될 때까지 낫질 않았다. 나는 계속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약으로 증상이나 돌보면서 이 감기몸살이 지나가길 기다리겠다고 우겼다. 그런 나의 등짝을 때려 병원으로 데려간 건 엄마였다. 넌 애가 왜 사서 고생이니? 나는 감기에 걸린 거지 입이 아픈 건 또 아니라 꼴에 반박을 늘어놨다. 어차피 감기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며... 아직 감기엔 바이러스 치료제가 없고... 병원에 가봐야 기껏 항생제나 줄텐데 대체 바이러스성 질병에 왜 박테리아용 치료제를 주냐는, 대충 그런 얘기였다. 그러나 엄마는 내 등짝을 또 퍽 때리곤 얘가 아직 죽을 정돈 아니구나 하고 가차 없이 날 병원으로 끌고 갔다.


병원에 기다시피 가서 수액을 맞고—의료실비 있으시죠? 이 질문에 당당히 네,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 그 와중에 행운이었다—항생제와 비염약 따윌 받아서 다시 집으로 오니 놀랍게도 몸이 제법 괜찮아졌다. 그것이 (의료실비 없인 감당 안 됐을 가격의)정 체모를 수액 덕분인지는 몰랐으나 받아온 약을 먹고 한숨 자니 거짓말처럼 거뜬해지는 것이다. 역시 혼자 머리보단 두 명분의 머리가 더 나은 것이 틀림없다. 엄마는 열이 내린 내 이마를 짚어보곤 거참 말도 안 듣고 고생만 사서 한다며 의기양양한 잔소리를 보탰다.


그러면서 엄마는 골골대는 딸내미를 위해 반찬가게에서 굴비구이 두 마리를 사다 줬다. 홀로 앓는 것이 서럽진 않지만 역시 혼자보단 누군가 있어주는 편이 낫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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