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조 Nov 16. 2019

영화관에 앉아서

열네 번째




올해 10월 CGV에서 RVIP로 승급했다. 궁금해서 통계를 보니 최근 1년간 영화 46편을 CGV에서 봤단다. 영화관에 제일 자주 갔을 땐 한 달에 열 번 간 적도 있다(아마 알라딘이 개봉했을 때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왠지는 모르겠는데 언젠가부터 영화관엘 자주 가게 됐다. 내 기억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관에 한 달에 한번 정도 가면 많이 갔던 거고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왜 영화관에 자주 가게 되었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계기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언젠가부턴 개봉하는 대부분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있었다. 


조르주 페렉은 소설 <사물들>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인물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들은 영화광이었다. 영화는 첫째로 꼽는 열정이었다. 거의 매일 밤 영화에 빠져들었다. 화면을 사랑했다. 장면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우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끌어당기고, 매혹적이고, 사로잡는 면이 있으면 그만이었다. 공간과 시간, 움직임을 새로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뉴욕 거리의 소용동이와 열대 지방의 나른함, 술집의 폭력이 재미있었다.”


나는 시네필이라고까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좋아하는 축에는 드는 사람이다. 위의 구절처럼 가본 적 없는 장소들과 시간들을 영화에서 배웠다. 가끔은 미술관에 간 것처럼 화면을 감상했고 사람들이 화면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사람처럼 귀를 기울였다. 그럴 때면 딴 세상을 사는 것 같은 뻔하면서도 감정적인 순간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또한 공간으로써의 영화관에 대해 말하자면, 솔직히 나는 영화관을 싫어하기 어려운 종류의 인간이다. 나처럼 극단적으로 활동을 기피하는 사람으로선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시원하고 따뜻한 실내에서 아늑한 어둠과 함께 영상을 내 눈에 떠먹여 주는  것을 싫어할 리가 없다. 영화는 비교적 시간 때우기 좋은 매체고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물론 나는 넷플릭스와 왓챠의 열렬한 구독자이기도 한데 굳이 영화관을 계속 찾아가게 되는 건 단순히 갓 개봉한 영화 때문이라기보단 영화관 자체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이 맑든 언제나 일정한 어둠, 한 번 영화가 시작되면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는 가차 없는 재생 방식, 소리가 진동으로 느껴질 만큼 강렬한 스피커의 음향 같은 것들은 사적으로 갖추긴 어려운 환경이다. 영화관에서 본 영화를 다시 집에서 볼 때는 그때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단순히 다시 보기의 문제만은 아닌 것도 그런 요소들 때문이겠지.


개인적으로 영화관에서 본 것이 너무 강렬해서 집에서는 틀지 못하는 영화들이 있다. <델마>가 그렇고 <컨택트>가 그렇다. 그러고 보면 둘 다 정적이 두드러지는 영화들이다. <델마>에서 단 한순간의 완벽한 정적, <컨택트>에서 외계비행체 안의 기묘한 고요함 같은 것들은 요란한 음향효과보다도 더 영화관 밖에서 재현하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면 나는 조용함을 돈 내고 사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지도 모른다. 정말 완벽하게 조용하고 어두운 커다란 공간을 잠시 사기 위해서. 그리고 거기서 바깥을 완전히 잊고 싶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끝내주는 야망을 가져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