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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조 Nov 18. 2019

별일 없이 살고 별일 없이 쓴다

열다섯 번째


      


글쓰기에 필요한 것이 어떤 문제의식이라면, 요즘 내 삶은 글쓰기엔 영 적합하지가 않다. 요즘의 나는 하던 모든 일을 그만두고 ‘문제없는’ 삶을 살고 있다. 사실 글 쓸 주제가 떨어져서 하는 말이 맞다. 호기롭게 매일 아침마다 글을 쓰는 일에 도전한 것까진 좋았으나, 그렇다면 매일 쓸 만한 주제를 가지고 있어야(아니면 적어도 짜낼 수 있어야)한다는 전제는 까맣게 잊은 것이다. 


주제 없는 글쓰기가 얼마나 난해하고 또 얼마나 꼴사나워지기 쉬운지 생각해본다. 나는 밥을 먹었다, 잠을 잤다, 수준의 하등동물 같은 사실 나열밖엔 할 것이 없다. 


하던 걸 그만두기 전까지는 정말 다이내믹한 일상이었다. 매일같이 화낼 일도 슬픈 일도 지치는 일도 많았다. 이 새끼 저 새끼 욕도 많이 했고 답답한 나머지 밤에 주먹으로 베개를 퍽퍽 치고야 잠들 때도 있었다. 사실 그 모든 하루하루가 내 인생인데도 내 것 같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하라는 대로 했고 시키는 걸 했다. 그런 걸 일상이라고 한다면야 일상이지만.


만약 그때 이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미쳐버린 사회와 인간사의 무상함과 빌어먹을 자본주의를 분노에 차서 규탄할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문제의식이 있을 때는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식 있는 삶이란 대체로 아주 엄청난 속도로 굴러갈 때가 많아서 진득하니 글이나 쓰고 앉을 시간이 없다. 


지금은 한량처럼 시간은 많고 문제의식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은 나 자신에 대한 것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사실 웃기게도 나는 평생 공개적인 공간에 신변잡기류의 글은 쓰지 않으리라 공언하고 다닌 사람이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인생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은 늘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부끄럽기도 했고. 굳이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난 글에 빌어먹을 자기 연민이 투영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나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구질구질한 자기 연민을 끌어들이는 일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 쓰는가? 그렇게 묻는다면, 너무 별일 없이 사는 것 같아 그렇다. 


데이비드 실즈는 그의 책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글로 씀으로써, 음,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필요성을 느낀다.

 

나에 대해 쓴다는 것은 결국 나를 지탱하는 일이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재빠른 망각의 추격을 간신히 피해 글을 적는다는 것. 그렇게 남은 기록들이 언젠가의 나를 만들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


하던 일을 다 내던지고 나면 끝도 없이 마냥 편할 줄만 알았는데 이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무섭다. 지금 이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 희귀하고 소중한 데다가 지나치게 만족스러워서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시간을 아무런 기록도 없이 흘려보내는 것은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기록의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친숙한 것은 역시 글쓰기이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글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감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경험을 하지만 그 경험 어딘가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 기록을 일기장에만 숨겨두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서, 공감의 순간을 위해서.


예전에 다녀온 서울 국제 작가전에서 받은 에세이집에 작가 플로랑스 누아빌이 쓴 구절을 나는 위로로 삼는다. 


어떤 작가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겸손과는 거리가 먼 행동일 수도 있지만,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전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 위해서다. ‘있죠, 이게 제가 한 경험이에요. 당신도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도 그랬다면, 그리고 우리가 한 경험의 심오한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함께 찾아보도록 해요. 같이 해 보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 연민과 폭로와 과시의 위험이 언제나 함정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글쓰기라 해도 어쩔 수 없이, 써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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