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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조 Oct 30. 2019

뉴욕을 헤매는 가장 문학적인 방법

뉴욕 맨해튼, <리틀 라이프>, 한야 야나기하라, 시공사

여행하는 책읽기 #1





뉴욕은 늘 나에게 기묘한 친근감을 주는 도시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을 때조차 그곳의 거리가 어떤 풍경인지 알았고 뉴욕의 택시는 병아리같은 노란색이란 걸 알고 있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결혼식을 올릴 뻔한 곳이 뉴욕 공립도서관이라는 것, 바로 거기가 <투머로우>의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곳이라는 것, <캡틴 아메리카>에서 몇 십년 동안 얼음에 갇혀있던 캡틴 아메리카가 깨어나 21세기를 가장 먼저 실감하는 곳이 타임스퀘어라는 것도. 세계의 도시들 중 그만큼 유명하고 또 전세계에 자주 얼굴을 비춘 도시가 또 있을까. 나는 이미 그곳을 가보지 않고도 골목골목을 다 둘러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뉴욕에 발을 디디자 그것은 심각한 오만이었음이 명확해졌다. 내가 아는 거라곤 어설픈 것들, 고작 맨해튼과 퀸즈, 브루클린이 다른 동네라는 정도의 귀여운 지식 뿐이었다. 나는 온갖 애비뉴와 스트리트 사이에서 갈 곳을 잃어버렸다. 길이 이렇게 똑바르고 단정한 바둑판 같은데도 도시는 미궁같았고 나를 당황하게 했다.


첫날 맨해튼의 좁아터진 거리에서 사람들에 치여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온 나는 시차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리틀 라이프> 첫번째 권을 펼쳤다. 


한야 야나기하라가 쓴 천페이지짜리의 이 소설은 네 명의 젊은이들이 뉴욕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뉴욕 여행에 이 책을 고른 것은 책의 배경이 뉴욕이란 것도 있지만 뒷표지에 쓰인 한 구절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것도 인생이라고 말해주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란 뭘까, 그것도 제목처럼 보잘것 없는 인생(Little Life)이라는 건. 나는 늘 비극에 끌리는 편이었고 그 때문에 이 책은 더더욱 구미가 당겼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이 책을 골라 여행가방에 넣을 땐 내가 이 두 권짜리 두툼한 책을 다 읽고 돌아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한 권정도 힘들게 읽고 두번째 권은 손도 대지 못한 채 가져오겠거니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그 책을 홀린 듯 다 읽게 된다. 


시차때문에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채 몇쪽 넘기기도 전에 이런 문장을 마주한다.


뉴욕은 야심가들이 사는 곳이었다. 종종 그건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나는 오늘 거리에서 마주친 면면들을 곱씹어본다. 양복을 빼입고 바쁜 듯이 오가는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사람들, 소호에서 쇼핑백을 한가득 든 사람들, 커다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백팩을 매고 에어팟을 낀 채 자전거를 타며 어디론가 급하게 가는 사람들… 그들이 모두 뉴요커일까? 야심가득하고,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황소처럼 달려가는 그런 사람들? 


백쪽을 넘기기 전에 곧 피곤함이 시차부적응을 이겨냈고 나는 잠에 곯아떨어졌다. 창밖으론 영영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빛이 별처럼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리틀 라이프>는 흡입력이 엄청난 소설이다. 한 번 손에 든 이상 더는 다른 생각은 들지도 않게 만들어주겠다는 듯이 소설은 독자를 주드와 윌럼, 제이비와 말컴의 인생으로 끌어들인다. 나는 다음날 거부할 수 없이 다시 책을 가방에 챙겨 나갔다. 점심때 되는대로 들어간 식당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책을 펼쳐 한참 읽고 있는데 지나가던 직원이 책 표지를 보고 반색을 했다.


“나 이 책 정말 좋아해! 너무 재밌어서 다 읽는게 아까울 정도였어.”


나는 정말 그렇다고, 이제 겨우 백쪽 남짓 읽었지만 정말 재밌다고 답했다. 


“그 책을 처음 읽는다니 정말 부럽다. 난 마지막엔 아까워서하루에 열 페이지씩만 읽었어.”


마침 나도 슬슬 남은 페이지가 아까워 공들여 읽고있던 참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 이 책 정말 좋아해’라고 말하게 하는 힘. <리틀 라이프>는 그런 힘이 있는 소설이다. 두권의 묵직한 분량으로 처음엔 겁을 먹게 만들지만 정작 펼쳐들면 책장이 너무 빨리 넘어가는 것이 무서워지는 그런 소설말이다.


프렌치 토스트는 더디게 나오고 나는 다시 책에 빠져든다.


토요일은 일을 했지만, 일요일은 산책하는 날이었다. 산책은 5년 전 그가 이 도시에 이사 와서 거의 아무것도 몰랐을 때 필요에 의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는 매주 다른 구역을 선택해 리스페너드 스트리트에서 거기까지 걸어갔고, 그 주변을 정확하게 다 둘러본 다음 다시 집으로 왔다. 험한 날씨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산책을 했고, 맨해튼의 모든 구역은 물론, 브루클린과 퀸스의 여러구역들까지 걸어본 지금도 매주 일요일 10시면 집을 떠나 정해놓은 노선을 다 끝내고서야 돌아왔다. 


이 책의 주인공 격인 주드는 다른 지역에서 뉴욕으로 이사온 후 맨해튼을 비롯해 주변 지역들까지 주말마다 산책을 한다. 처음엔 지리를 익히기 위해서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산책은 그에게 위안을 주는 일과가 된다. 주드는 과거 모종의 사고로 다리를 절었고, 이렇게 아직 두 다리로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겐 소중한 일이었다. 


<리틀 라이프>에서는 장소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 챕터와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 주드와 윌럼이 처음 뉴욕에서 가지게 된 집이 있는 ‘리스페너드 스트리트’라는 점부터 의미심장하다. 젊고 아무것도 없는 채로 뉴욕에 힘겹게 뿌리내리고 살기 위한 노력이 소설의 초장 내내 이어진다. 그들이 자리잡은 리스페너드 스트리트는 소호와 트라이베카 사이에 있는, 소설 속에서조차 다들 ‘그게 대체 어디에 있는 곳이야?’라고 물을만큼 변변찮은 곳이다. 마치 구석에 몸을 구기고 들어가 있는 고양이처럼 자리잡은 그 곳에서 주드와 윌럼은 첫 자립을 이룬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수성가하며 리스페너드 스트리트를 떠나 도시의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간다. 


<리틀 라이프>의 공간에 대한 디테일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하다. 주인공들이 사는 곳, 그들이 자주 가는 식당, 주드가 산책하는 길의 이름같은 것들은 명확한 현실성을 가지고 자주 언급된다. 그 공간들은 현실에 실재하고, 원한다면 그곳에 가볼 수도 있다. 나는 어느날엔 주드가 그랬듯 소설에서 읽어 조금 친근해진 애비뉴와 스트리트들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처음 뉴욕에 뿌리내리기 위해 이 길들을 매 주말마다 걸었을 주드 생각을 하면서 도시를 찬찬히 산책했다. 마침 때는 9월, 여름도 가을도 아닌 청량한 날씨가 산책하기에 완벽했다. 주드가 어떻게 이 도시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고 또 의지할 사람들을 얻었는지 생각하면서 북쪽으로, 센트럴 파크를 향해 걷다가, 어퍼 이스트 사이드까지 다다라 그 부자집들 중 하나에서 주드가 가정교사로 일했으리라 상상해본다. 눈이나 비가 오면 길은 질퍽할 것이고, 그러면 다리를 저는 주드는 남들보다 느린 걸음이 더 느려졌겠지. 


소호에 갔을 땐 그 곳의 은근한 활기를 느끼며 불이 켜진 저 창들 중 어딘가는 주드와 윌럼이 함께 사는 집일거라 상상한다. 둘이 잠깐 행복했던, 젊고 아름다운 시절이 그 창틀을 액자삼아 펼쳐지고 있을 것이라고. 그런 상상은 소설을 더 열렬히 읽게 만들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고는 피곤한 몸으로 숙소에 돌아와서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한 챕터를 남기고는 너무 아깝고 마음이 아팠던 나머지 차마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야 했다. 내일, 아니면 모레 읽자고 다짐하면서 억지로 책을 밀어뒀다. 그제야 식당에서 하루에 열 쪽만 읽었다던 직원의 말이 실로 공감이 됐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남은 오십쪽을 다 읽고 다시 산책을 나갔다. 정처없이 걸으면서도 길목마다 서있는 길의 이름들을 하나씩 살폈다. 소설이 남긴 여운은 믿을 수 없을만큼 깊어서, 길모퉁이마다 주드가, 윌럼이, 제이비가, 말컴이 서있을 것만 같았다.


<리틀 라이프>는 고통스럽다. 포장지를 하나씩 벗기듯 주드의 과거가 드러날 때마다 마음을 둔한 무언가로 퍽퍽 때리는 것만 같다. 어떤 불행은 영속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 모든 이야기가 쓰여진다. 마치 어떤 불행에도 끝은 있고 결국 행복이 있으리라는 우리의 마음편한 낙관에 찬 물벼락을 끼얹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남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해럴드의 말을 빌려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면, 이 모든 사고가 인생 일반에 대한 은유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물건들은 깨지고, 때로는 수리되고, 대부분의 경우엔 어떤 게 망가지더라도 삶이 스스로 변화하면서 그 상실을 보상해주지. 때로는 아주 근사한 방식으로 말이야. 사실, 어쩌면 나도 결국 그런 종류의 사람인지도 몰라.


이런 글을 어떻게 편안히 읽을 수 있을까. 고통과 환희가 뒤섞인 마음으로 페이지를 끝없이 넘긴다. 그리고 책이 끝나면, 하나의 이야기가 닫힌 문 앞에 또 망연한 마음이 되어버린다.


천페이지짜리 고통을,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생을 단숨에 읽어내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뉴욕 한복판에서 등장인물들의 기쁨과 고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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