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여행지에서 맞이한 어느 아침 댓바람부터 사촌오빠—나와 열 살이 넘게 차이가 나고 내가 어릴 때 내 손을 잡고 문방구에 가서 코디 스티커를 사주던—의 전화가 끈질긴 몇 차례의 부재중 기록을 남겨놨다.
이번 여행은 공식적으로 외가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는 것이었고 사촌오빠의 엄마이자 나의 큰 이모는 중간에 현지 공항에서 합류할 계획이었다. 사촌오빠는 그 나이까지 효자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답게 이모가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전화로 나에게 신신당부를 늘어놓는다. 공항에서 길을 잃으시면 어떡하냐, 입국 수속은 어떻게 하시냐부터 시작해 걱정이 끝이 없다. 나는 이곳의 공항은 비록 국제공항의 이름은 달았으나 코딱지만 한 데다 출구라곤 하나뿐이라 길을 잃을 곳도 없다고, 이곳은 비자도 입국심사서류도 필요 없는 곳이며 우리 일행이 공항 도착 게이트 앞에서 단단히 지키고 있다가 안전하게 모시리라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는다. 사촌오빠는 '야, 그래도 네가 모시니 마음이 좀 낫다' 고 했다. 좀 낫긴 해도 완전히 좋은 건 아니겠지.
나도 예전에 타지에서 엄마가 늦게 합류한 적이 있어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인천 국제공항이 그토록 휘황 찬란히 거대한 것과는 별개로 길을 잃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나는 '엄마 여권은 챙겼어? 비행기표는? 짐 개수는 확인했어? 수화물에 배터리 들어있는 물건은 부치면 안 돼, 그러니까 자동 셀카봉 같은 거…' 하면서 전날 온갖 걱정을 설레발로 늘어놓았다. 그러고도 혹시나 엄마가 현지 공항에 도착해 나랑 엇갈려 이상한 곳을 헤맬까 봐 게이트 앞을 도착 삼십 분도 전부터 틀어막은 채 전전긍긍했다. 꼭 엄마가 비행기 안에서 길을 잃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이성적이지 않은 걱정인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야무지게 비상구 좌석을 지정하고 두발 쭉 뻗고 오신 데다 나조차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코드셰어 마일리지 적립까지 해낸 뒤 의기양양하게 첫 타자로 짐을 끌고 나왔으니까.
어릴 땐 눈에 안보이기만 하면 물가에 애를 내놓는 것 같다며 사사건건 걱정 만발이던 어르신들은 이제 우리의 크나큰 걱정이 되었다. 익숙한 곳에서야 몰라도 타지에 나오게 되면 잔소리처럼 '엄마, 제발 멀리 가지 말고 옆에 좀 붙어있어, 사람 걱정되게' 하는 소리가 여과도 없이 나온다. 심지어는 '길 잃으면 꼼짝 말고 거기 서있어야 해' 소리까지 해봤다. 엄마는 크게 웃었는데, 정작 불안했는지 그 날 저녁에 기어코 구글맵 보는 법을 배워갔다.
물론 우리 모두의 걱정보다 어르신들은 터프하시기 때문에 이모는 당연히 태평하고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와 일행과 합류했으며—나는 사촌오빠에게 '거봐 걱정 말라니까' 하고 카톡을 남겼다. 엄마는 이제 구글맵도 볼 줄 알고 어르신들은 예약해둔 현지 투어를 무사히 클리어하며 아직 건재함을 보인다. 물론 나는 버스를 떠나보내면서도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며 신신당부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타지에선 늘 물가에 내놓은 어르신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