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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 Feb 09. 2022

방문을 잠그고 울고 있는 젊은 엄마에게


 결국 이 말을 뱉고 말았네. ‘미칠 것 같다. 엄마 말 좀 들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답답해서 점퍼를 벗겠다고 떼쓰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말했어. 부글거리는 감정을 최대한 납작하게 누르고, 더 낮고 작은 목소리로. 어쩌면 더 위압적인 방식으로. 


 “왜 엄마 말을 들어야 해?”라고 반문하는 일곱 살 쌍둥이 형제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았어. 알아, 너희들은 모두 개별적인 인간이고 자유의사가 있다는 것도. 근데도 오늘 아침에는 모든 게 참을 수 없이 느껴 졌어. 이런 나를 이해해 달라고는 하지 않을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우울감은 그림자처럼 함께야. 내가 이 상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이상한 패배감과 우울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더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암울한 기분.      

 

며칠 전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급하게 선별진료소가 차려졌어. 등교와 등원은 일시 정지가 되었어. 방학을 삼 일 앞둔 날에. 나는 한 달 전부터 겨울방학을 준비해왔어. 일을 당겨서 한다는 기분으로 미리 출연자를 섭외해두고, 자체 마감일을 만들어 원고를 미리 썼어. 그래,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건 미래를 당겨서 사는 것과 같아.       


‘아이들만 아프지 않다면, 다 해낼 수 있어.’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하는 말이야. ‘아이들이 아프지 않다면’이라는 전제에 담긴 ‘아프지 말아달라’는 부탁은 간절하기까지 해. 아이들이 아프면 모든 일이 중단되니까. 겨우 맞춰둔 일과 육아의 균형이 무너지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이들에게 ‘아파도 돼, 나을 때까지 돌봐줄게’ 라는 말이 아닌 ‘얼른 약 먹고 낫자’라는 다짐 같은 말을 하는 엄마야.  


 다음 날, 초등학교 전교생과 교직원 모두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았어. 전날 저녁까지도 나는 다음날에 잡힌 북토크를 가도 될까. 고민이었어. 덕분에 이웃에게 아이들 돌봄을 부탁하고 북토크에 갈 수 있었어. 그리고 북토크를 마치고 다시 현실로 점프하듯 집으로 돌아와 포장해온 떡국과 콩나물 비빔밥을 아이들과 나눠 먹었어.      


 아이들은 자라겠지.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옷을 입고, 더 이상 추운 날에 점퍼를 벗겠다고 떼쓰는 일도 없어지겠지. 언젠가는 ‘독립’이라는 글자를 마음에 품고 떠나갈 아이들의 먼 미래를 당겨와 손수건으로 쓰는 아침이야. 이건 아무도 모르는 시간을 견디고 있는, 방문을 잠그고 혼자 울고 있는 어느 젊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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