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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 Feb 09. 2022

당신의 현관문 뒤에 서서

    

 <배달의 민족> 앱을 지웠어. 얼마 전 통장 정리를 하다가 놀랬거든. 간혹 입금되는 원고료 사이로 출금 내역을 장악한 ‘우아한 형제들’을 보고. 이틀, 삼일 간격으로 시켜 먹은 배달 음식을 떠올렸지. 3만 원이 넘는 옷을 살 때는 몇 번을 생각해보면서도 음식을 시키는 데는 상당히 과감해. 일주일 사이에 먹은 치킨, 도시락, 찌개를 떠올리니 왜 월급이 통장을 스쳐 갔는지 알 법도 했어. 그리고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몸무게의 원인이 멀리 있지 않구나 싶었어. 거기다 한번 음식을 시킬 때마다 늘어나는 플라스틱 용기를 보면 지구에게 미안하기까지 해.      


 ‘오늘은 뭘 먹을까?’ 배달음식 앱을 살펴보는 건 일종의 취미 생활이 됐어. 음식 앱을 켜면 한식 카테고리부터 살펴봐. 치킨, 마카롱, 자장면... 배달 안 되는 음식이 없다 할 정도로 종류가 많아. 주문은 또 얼마나 쉽니. 지문 인식만 하면 순식간에 돈이 빠져나가고 카톡, 하고 결제 알람이 와.      


 꼭 음식을 시키지 않을 때도 하릴없이 앱에 들어가 보기도 해. 찜해둔 단골 가게에 새롭게 달리는 리뷰를 살펴보고, 새로 등록된 가게는 없는지 봐. 습관이 무서워. 무심코 배달 음식 앱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됐어.     


 <배달의 민족> 앱을 지운 지 일주일 만에 나는 똑같은 앱을 다시 깔았어. 손님이 왔는데 집에 대접할 마땅한 음식이 없다는 핑계로, 아주 간단히 재설치했지. 약한 의지력을 원망할 새도 없이, 배달이 시작되었다는 알람이 왔어.      


 식탐 많은 나는 배달음식을 빨리 받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을 때가 많아. 아파트에 살고부터는 공동 현관에서 첫 번째 호출이 오니까 미리 달려갈 준비를 할 수 있어서 편해. 슬리퍼를 신고 엘리베이터 앞을 서성이면 띵동,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보통은 선결제를 했으니 음식을 집 앞에 내려두시고 가면 된다고 요청하는 일이 더러였지만, 그날은 카드로 직접 결제하는 날이었어.      


“감사합니다.”     


 하고 익숙하게 음식을 전해 받는데, 배달 기사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거야.     


“먼저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중 나와서 음식을 받아주시는 분이 없습니다.”     


 ‘아... 그런가요?’ 머쓱하게 웃고는 음식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어. 따뜻한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자 달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곧 정신이 없어졌지만 배달 기사님의 말이 잊히지 않았어. 공동 현관에서 호출을 누르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인터폰 화면에 비친 제대로 얼굴을 모르는 배달 기사님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어. 상대방의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사적인 공간, 집 앞에서 따뜻한 음식이 식기 전에, 차가운 얼음이 녹지 않게 초조하게 기다리는 한 사람을 떠올렸어.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배달 기사 일을 하다가 그만뒀어. 음식을 빨리 배달하려다가 도롯가에 설치된 소화기를 부수고, 넓은 아울렛에서 매장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하다가 음식이 식어버려서 자신이 음식값을 변상하고, 과속 딱지까지 여러 번 붙고 나서였어.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다고. 이래선 안 되겠다’ 하고 손을 털었다고 했어. 차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나는 상상했어. 사람 많은 엘리베이터에 음식 봉지를 들고 땀 흘리며 서 있는 친구의 모습을, 가까운 곳에 호출 오기를 기다리지만 늘 먼 곳만 당첨되는 초보 라이더의 속상함을.      


 외식이 불편해진 코로나 시대. 편리한 방법으로 다양한 배달 음식을 주문해서 먹어. ‘배달되지 않는 음식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음식이 도착하면 국물을 쏟진 않았나, 면이 불진 않았나. 음식의 상태를 확인하기 바빠.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의 상태를 생각하는 일은 없거나 잠시야.       


 ‘마중 나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생각해. 매번 나가서 음식을 받아올 순 없지만, 현관문 초인종 소리가 날 때면 재빨리 인터폰 옆에 있는 문 열림 버튼을 누르려고 해. 문 뒤에 서 있는 사람의 머쓱한 기다림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게 배달의 시대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에티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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