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처럼 살 순 없어도 에세이는 쓸 수 있지
최애 아이돌의 인터뷰를 봤다. 진행자가 하루 루틴을 묻자, 놀랍도록 단조로운 패턴의 일상을 말했다. 그리고 말했다. 매일 곡을 만든다고, 매일 만들어지는 기적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앉아 있으려고 노력한다고. 매일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놀라워하자 그는 덧붙였다.
‘그게, 정말 쉽지는 않아요.’
쉽지 않다는 말을 하는 최애의 표정을 보면서 나도 깊이 공감했다. 꾸준히 한다는 건 재능이 있든 없든 누구든 쉽지 않다. <애매한 재능>이 남긴 것 중 하나가 <꾸준히 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다. 인쇄된 활자가 이렇게나 무섭다. 스스로 한 선언이니 지켜야 한다는 묵직한 책임감이 생겼으니까.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생활이 아니라 어떻게든 쓰는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선언부터 하세요. 앞으로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나는 쓰는 사람이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해야 해요. “
글쓰기 강연에서 종종 했던 말이다. (어째서 이렇게 멋진 말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오래 입은 내복처럼 편안한 일상에서 쓰는 상태로의 변환이 항상 쉽진 않다. 특히나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선. 그래서 어린이들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커다란 백팩에 노트북을 챙긴다. 다이어리, 만년필, 오후 미팅에 쓸 인터뷰 자료, 지갑과 아이팟을 챙기면 어디든지 떠나 작업할 준비가 된 셈이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곧장 정류장으로 향했다. 일찍 여는 카페에 가기 위해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별별 생각이 든다. 굳이 이렇게 까지 글을 써야 해? 자꾸 가치를 따지게 된다. 어제의 다짐이 떠올랐다. 힘껏 나를 미워도 해봤으니, 힘껏 좋아도 해주자고. 글 쓰는 나를 자꾸 의심하지 말고, 힘껏 한 번 사랑해보자고.
카페에 와서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갓 구운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결대로 크루아상을 찢어 입 안에 넣는다. 15분을 달려온 보람이 가득 퍼진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되는데... 작업하기 좋은 카페에 왔다고 해서 바로 글이 써지는 건 아니다. 하릴없이 다이어리 일정을 쳐다보다, 트위터에 들어가 타임라인을 훑기를 반복하고도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그때, 다이어리 한쪽에 적어둔 윤성희 소설가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존 버거의 말을 빌리자면 ‘일어나는 일마다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있다면 이야기를 한다는 일은 불필요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이야기가 왜 필요할까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이야’ 진단하고 단언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무엇일까, 왜 저럴까’ 묻는 거죠. 저도 이 소설 속 아이를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 아이를 최선을 다해 바라보는 거죠.”
- 윤성희 소설가, 채널 YES 인터뷰
‘최선을 다해 바라보는 거죠.’라는 문장에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시. 잘 쓰기 전에 잘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절하게 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