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처럼 살 순 없어도 에세이는 쓸 수 있지
“어머니!!!!!!!!”
PT선생님인 O는 옆에서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왜 하필 이 순간에 ‘어머니’인가. 그래, 맞는 말이지. 내가 어머니지. 애도 셋이나 낳은 멋진 어머니. 입술을 꽉 깨물고 천천히 일어났다. 이 정도 역경은 껌이다. 이겨낸다. 할 수 있다! 김수미! 팔을 부들부들 떨며 일어났다. 그리고 외쳤다.
“만...세”
힘 빠지는 만세를 부르짖자 O는 말했다. “세 개만 더.” PT의 세계는 잔인했다. 얄짤이 없었다.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처량한 눈빛으로 O를 바라봤지만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다시 엉금엉금 앞으로 기기 시작했다.
‘버피’라고 불리는 전신운동 10회 한 세트를 마치고 두 번째 세트였다. 분명 마무리 운동이라고 했는데. 인생이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에 땀이 축축하게 났고 마음속에 ‘도망’ 두 글자가 떠올랐다.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센터 이름이 적힌 운동복을 입은 채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버피.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서 손을 엎드려뻗쳐 자세로 뻗었다가 다시 일으켜 만세를 하기까지가 한 동작인 전신운동. 처음에는 가뿐했지만 점점 몸뚱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는 운동이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끙끙,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아이고 곡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PT 선생님인 O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전교생 60여 명의 작은 시골학교에서 동창이라 함은 ‘너의 이름과 생김새와 가족관계까지 가뿐히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천천히 멀어져 간 인연이었다. 그중 순하고 착했던 친구 O를 옆동네 헬스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트레이너와 회원으로.
20년 세월이 훌쩍 지나 만난 O는 나만큼 달라져 있었다. 화가 난 듯한 근육이 울룩불룩하고 머리는 은색 장발머리였다. 어딘가 모르게 현실적이지 않은 비주얼 앞에 삼 남매 육아와 글쓰기와 돈벌이에 지친 고달픈 중년의 몸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 사이. 어색했다. 게다가 대화 주제는 대뜸 몸이었다. 주섬주섬 어색하게 양말을 벗고 인바디를 쟀더니 72Kg 숫자가 떴다. 근육량은 적고 체중과 지방은 많은 누운 U자형 그래프. 심각한 표정으로 O는 말했다.
“친구야, 왜 이렇게 살이 많이 쩠노”
“하하. 그러게.”
“웃을 일이 아니다.”
O는 물병을 빙빙 돌리며 PT장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가볍게 스쿼트부터 하자고 했다. 전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봤다. 올록볼록 뱃살과 튼튼한 두 다리. <애매한 재능>을 쓰며 붙은 살 10Kg를 빼보려고 부단히 애썼던 지난여름이 스쳐갔다. 찐 살을 빼보겠다고 열심히 운동했지만 그만큼 잘 먹었다. 3개월의 PT는 +1Kg로 마감되었고 운동을 그만두며 5kg가 더 불었다. 통통한 몸에 적응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이상 증후가 연이어 나타났다. 생리가 5개월 정도 멈추고 목에 쥐젖이 퍼지기 시작했다. 발목이 시큰거리고 아팠다. 단기간에 확 불어난 몸무게를 몸이 감당하지 못했다. 혹시 갑상선에 이상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아무래도 어딘가 병든 게 분명하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종합 건강검진을 권했고, 결과는 뻘쭘하게도 모두 정상. 단지 과체중일 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제 선택은 하나였다. 다이어트.
“오버핏 옷들이 꽉 끼는 정사이즈가 됐지 뭐야.”
“턱이 두 개가 됐어. 셀카 어플도 소용이 없지.”
“부부 사진을 찍었더니 남편이 동생처럼 나왔더라. 하하학”
친구들 앞에서 더는 자학 개그로 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과 끈기로 살 빼기가 얼마나 힘들던가. 나는 이미 실패한 전례가 있었다. 자본과 남의 힘을 빌어야 했다. 그렇게 옆동네 헬스센터에 왔고, O를 만난 것이다.
“친구야, 할 수 있다.”
마지막 하나,를 외치는 O와 눈이 마주쳤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으아으아 신음소리인지 괴성인 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 지르며 마지막, 만세. 꼿꼿하게 두 팔 올린 만세가 아닌 잔뜩 찌그러진 만세였다. 마스크 속 표정도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웃는 것은 O 뿐이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생수병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