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미 Nov 03. 2021

이장님, 오 나의 이장님

창원에 살고 방송국 다녀요

 얼마 전 휴대폰을 바꿨다. 연락처가 옮겨지지 않아서 낭패감을 느끼다가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 휴대폰에는 별별 사람의 연락처가 쌓여 있었다. 한 번쯤 정리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마을 이장님, 부녀회장님, 노인회장님이었다. 그들의 전화번호는 TV 프로그램 <얍 활력천국>에서 일할 때의 흔적이었다.      


 경남의 농어촌을 찾아다니며 마을 잔치를 벌이던 <얍 활력천국>. 덕분에 방송국 작가실 책상에는 각 마을 면사무소 (지금의 행정복지센터) 전화번호와 사투리, 속담 목록 같은 게 쌓여 있었다. 평균 나이 65세 출연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제작진의 몸부림이었다.      


 방송은 마을 섭외가 관건이었다. 어떤 마을, 어떤 사람을 만나냐에 따라 재미와 의미가 달라졌다. 제작진은 언제라도 촬영 펑크가 날 수 있으니 한 달씩 미리 섭외를 해두었다. 아무리 방송이라는 명분이 있어도 요즘은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일반인의 연락처를 공공기관에서 잘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방송국’이라는 출처를 밝히면 쉽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공책에는 온갖 면사무소와, 이장님의 번호가 메모되어 있었다.      


 신입 스크립터에게 ‘마을 섭외 재능을 인정받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누구도 섣부르게 요긴한 스킬을 알려주지 않았다.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섭외는 보통  번에 오케이 되는 경우가 없다. 마을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이장님 개인의 결정만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 출연에 있어서 마을의 어르신인 ‘노인회장님 음식을 책임질 ‘부녀회장님 의견이 모두 일치해야 했다. 청년회장은 따를 뿐이다. 일단 이장님이 우호적으로 ‘한번 이야기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고 말씀하신다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동네를 섭외하고,  전화를 하고, 기다리고의 반복이었다.     


 경남은 8개의 시, 10개의 군으로 이뤄져 있다. 300여 개의 읍, 면, 동. 그중에서도 <활력천국>은 더 촘촘한 단위인 마을에 집중했다. 세상에 이렇게 마을이 많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다. 처음에는 바위에 계란 치기처럼 무모했던 섭외에도 점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일단 ‘이장님’을 부르는 목소리부터 달라졌다. 전화를 받으면 평소보다 한 옥타브 정도 높아졌다. 엄마 아빠도 그렇게 다정하게 부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이장님과 통화하는 나를 보고 남동생은 ‘소름 끼친다’고 표현했다. 점점 낯짝이 두꺼워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방송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음성변조였다.

 통화는 보통 바쁜 낮 일과가 끝나고 느긋해지는 저녁시간에 이뤄졌다. 이장님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섭외 성공으로 이어지는 일은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대개 이장님들은 마을 잔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최선의 협조를 해주셨다. 많고 많은 이장님을 만났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방송에서 사실 적시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뻥을 숨쉬기처럼 일삼는 분이 계셨다.

 이를 테면 야외 촬영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밖에서 해도 끄덕없다. 바람   없는 동네'라고 대답 하셨는데, 도착한 촬영지는 세트를 세울  없을만큼 바람이 불었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원래 바람 많은 동네'라고 했다. 그뿐인가. 죽은 새우를 살아서 팔딱팔딱 뛴다고 바로 먹어보라고 건네고, 마을에 개가  마리도 없다 해놓고는 집집마다 개를 기르고 있었다. 사전 답사를 왔던 스텝과 나는 이장님의 뻥에 처음에는 웃었지만 나중에는 점점 지쳐갔던 기억이 난다.      


 마을 섭외 담당인 나의 연락처에 이장님의 번호가 업적처럼 쌓이듯이, 가수 섭외 담당의 스탭에게는 별별 가수의 연락처가 쌓여갔다. 출연료 10 원에 지역 방송국에 출연할 마음을 먹는 사람들은 대개 ‘이름 알리는  시급한 신인가수였다. 누구는 그들을 향토가수라고도 불렀고, 무명가수라고도 했다.

하동에 가면 ‘하동진씨를 섭외했고, 거창에 가면 ‘거창한씨를 모셨다. 왔다 갔다 차비 정도인 출연료에도 그들은 ‘감사하다 말을 덧붙였다. 시디를   모아 전해주고 ‘ 불러달라 말을 붙였다. 우리는 논두렁에서 열창하는 그들의 모습을 편집하고 기록하다 조용히 팬이 되기도 했다. 스텝들은 노래방에 가서 손인호의 ‘해운대 엘리지 김양의 ‘우지 마라 불렀다. 우리는 모두  노래를 떼창   있었다.     


 가끔 여행하다 예전에 촬영했던 낯익은 마을 이름을 발견하기도 한다. <얍 활력천국>이라는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내가 듣고 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서 재생된다. 함께 난장을 펼치고 손뼉 치고 놀던 그때 그 사람들의 안녕을 마음속으로 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카로운 체리박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