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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 Jan 25. 2022

겨우 이런 일로 너에게 편지를 써도 될까?


 외롭다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해? 어젯밤에 귤을 까먹으며 친구에게 “마음이 공허해서 자꾸 배가 고프다.”는 말을 했어. 친구가 얼마나 크게 웃던지 머쓱해졌지만 툭 튀어나온 진심이었어.      

 얼마 전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어. 시집 한 권만 추천해달라고. 이모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길 하면 놀라. 이모가 읽은 책은 <애매한 재능>이 유일하다고. 도서관에서 청소노동을 하지만, 책과는 관련 없는 인생을 산다고 말이야. 하지만 이모가 내가 쓰는 신문 칼럼을 보고 카톡을 보낸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지. 도서관에 비치된 잡지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라는 것도.      


 나는 이모에게 수십 년 동안 시를 써온 시인의 첫 시집을 선물했어.      


“고맙다 수미야. 시인은 우째 이리 말을 곱게 하니.”     


 그리고  달이 흘러서 이모가 시집을 추천해달라고  이유를 알게 됐어. 이모의 공황장애가 점점 심해지던 때였다고.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멈추지 않고 떠오르고, 잠도 거의 들지 못한다고 했어. 그때 누군가가 약에 계속 의지하기보다 노력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시를 외우는  도움이 된다고 이모에게 말했던 거야. 도서관에서  권의 시집을 들춰보던 이모는  쓰는 조카를 떠올렸겠지.      


 이모는 내가 선물한 시집의 시를 매일매일 외웠다고 했어.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몰아내려고. 한 번에 외워 지지가 않아서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나 시집을 정독했다고 했어. 그래도 잘 외워 지지가 않더래. 혼자서 시를 외우는 이모를 상상했어. ‘외로움을 택할래, 괴로움을 택할래,’ 라는 시구를 외우면서 이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병원을 바꿔보는 게 좋겠다고, 아는 창원정신과의 이름과 위치를 카톡으로 공유했어. 그러자 너에게 말하길 참 잘했네, 하고 이모가 웃었어.  


 외로워서, 겨우 이런 일로 너에게 편지를 써도 될까. 해가 바뀌고 아침이 찾아와도 외로움은 그대로라는 게 믿어지니. 팔 양 옆에 작은 아이들의 체온을 느끼고 누워서도 외로움이 밀려온다는 걸 믿어줄 수 있니.


 집을 나와서 일단  걷기로 했어. 산란한 마음이 분주한 발걸음 틈에 날아가길 바랐어. 가방을 메고 도로를 따라  걸었어. 집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가 거실에 널어져 있고, 아침 설거지 거리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 안전하고 따뜻하고 고요한 집을 등지고 걸었어. 지금 나에게 필요한  평온이 아니라 새로운 소음이었어.      


 카페에 들어와서 평소보다 달게 커피를 주문하고, 가름끈으로 읽다 만 자리를 표시해둔 책을 읽었어. 그리고 받는 사람의 이름이 없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읽히지 않는 바코드처럼 어딘가 고장난 외로움을.


가끔 편지 보낼게.




*시집 <햇살은 물에 들기전 무릎을 꿇는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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