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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 Jan 25. 2022

허기진 겨울 밤을 보내는 당신에게



 오늘 시어머니가 김치국을 싸서 보내주셨어. 간단하지만 맛을 제대로 내기는 힘든 음식. 멸치 다시다를 좀 넉넉하게 넣는 게 관건이라는 걸 알지만 맛을 내기는 힘들어서 쉽게 도전하지 않는 음식이야. 어머니는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낸 국물에 잘 익은 김치와 콩나물과 두부를 넣어 끓이셨는데. 크으, 어찌나 맛이 좋던지 밥 한 그릇을 삭삭 비웠어.     


 얼큰한 김치국밥은 돌아가신 할머니, 판임 씨가 가장 잘하는 음식이기도 했어. 겨울이면 떡국을 곁들여서 끓이기도 했지. 그게 별미였어. 나는 밥보다 건더기 떡을 좋아했어. 할머니는 자신의 국이 식어가든 말든 커다란 냄비에서 손녀가 좋아하는 떡을 건져내는 데 여념이 없었어.


 판임 씨는 손이 커서 언제나 두 끼는 먹을 만큼 국밥을 끓였어. 희한하게 처음 끓인 국밥은 맛있는데 두 번째 데운 국밥에는 손이 영 안 갔어. 퍼질대로 퍼진 밥알과 떡이 구미를 당기게 하긴 힘들었지. 먹기 싫은 음식을 먹을 때면 언제나 ‘이상하게 배가 아프다.’하고 엉덩이를 떼는 나에게 할머니는 한번도 잔소릴 하지 않았어.

 

 그리고 몇 년 후. 판임 씨가 김치 국밥을 끓이는 일은 사라졌어. 한쪽 다리를 다치고 영영 자리에서 못 일어나게 됐으니까. 눈도 보이지 않고, 다리도 움직이기 힘든 판임 씨가 요리를 하는 일은 꿈에서나 가능했지. 가끔 엄마나 아빠가 국밥을 끓여 줄 때면 나는 “국밥은 할매가 잘 끓이는데...” 하고 아쉬운 소리를 했어. 그 말을 뱉은 후 밥상 위로 어색하게 흐르던 침묵을 견디면서도 말이야. 그만큼 판임 씨의 국밥은 끝내줬거든. 


 하루는 판임 씨가 부탁했어. 김치 국밥을 끓여 달라고. 중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무리한 부탁처럼 느껴졌어. 식당 일로 바쁜 엄마, 용접 일을 시작한 아빠는 늘 늦은 밤에 돌아왔고, 저녁을 차리는 건 자주 내 몫이던 때였어. 찌개나 국을 데워서 냉장고에 든 반찬을 꺼내 먹는 게 최선이었건만 대뜸 국밥을 끓이라니.      


“내가 어떻게 국밥을 끓이노! 못 끓인다.”

“할매가 시키는 대로 해봐라. 그럼 된다.”

“못 한다니까.”

“한 번만 해봐라. 할매 소원이다.”     


 그래도 끄떡하지 않으면 판임 씨는 결국 베개 속에 숨겨둔 비상금을 주섬주섬 꺼냈지. 만 원 짜리 하나를 꺼내서 넌지시 꺼내며 설득했어. 그럼 나는 못 배기는 척, 만 원을 받고 툴툴 되면서 주방으로 갔어.      


“물 끓는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물이 팔팔 끓나? 콩나물 있으면 콩나물 좀 넣고. 없으면 고마 김치 넣고, 밥 넣고”

“... 아무런 맛이 안 나는데?”     


은은하게 콩나물 비린내까지 묻어나는 국을 맛본 나는 짜증나는 목소리로 따졌어. 그러면 할머니는 홀홀 웃으며 주방에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지.     


“맛이 안 나나? 싱겁나? 그럼 소금 넣고 다시다를 좀 넣어라.”     


 팔팔 끓는 물에 김치와 밥을 넣고, 간을 본 후 다시다를 넣으면 끝. 판임 씨의 레시피는 너무 간단해서 우스울 정도였지만. 김치 국밥은 도통 맛이 나지 않았어. 나는 맛이 날 때까지 다시다를 계속 넣었어. 그리고 어설프게 흉내낸 국밥을 한 그릇 떠서 판임 씨에게 가져다 주었어. 소주 잔과 함께. 뜨거운 국밥에는 소주를 곁들이는 게 이 집안의 룰이었고, 판임 씨 역시 말할 것도 없지.      


 투명한 소주 잔에 시원한 소주를 따르면 판임 씨는 김치 국밥을 안주 삼아 먹었어. 객관적으로 맛없는 김치 국밥을 두고 ‘잘했네.’ 칭찬까지 하면서 말이야. 한때는 자신의 손으로 빠르게 끓여내던 국밥을 이제는 손녀에게 갖은 회유와 뇌물까지 줘가야만 맛을 보는 현실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고 단지 맛을 즐겼지.  

    

 내가 다시 김치 국밥을 끓인 건 첫째 아이를 품고 나서야. 지독한 입덧으로 먹기만 하면 토하던 내가 누워서 떠올린 음식이 바로 판임 씨의 김치 국밥이었어. 그 국밥을 지금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뜻하고 얼큰한 국물을 마신다면 느글느글 느끼한 속이 싸악 가라앉을 것만 같았어. 김치국밥을 어떻게 만들었더라? 가만 생각하니 판임 씨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렸어. 


“물이 파르르 끓나?”

“그럼 김치 넣고 밥 넣고, 다시다 좀 넣으면 끝이다.”     


 유언도 없이 자는 잠에 조용히 돌아가신 판임 씨였는데. 김치 국밥 끓이는 방법을 알려주던 큰 목소리만은 선명하게 마음 속에 남아있었어. 말을 한 번에 듣지 않는 손녀를 둔 덕분에 판임 씨는 몇 번이고 말해야 했고, 결국 나는 십 년이 흘러서도 레시피를 기억하고 있었어.      


 가스렌지에 물을 올리면서 펑펑 울었어. 김치 국밥을 직접 만들어 먹고 싶지만 누워 있는 게 최선이었던 판임 씨의 시간들을 떠올리니까 미안해서 눈물이 났어. 그리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 판임 씨가 알려준 대로 파르르 끓는 물에 신 김치를 넣고 밥을 넣고 다시다를 톡톡 털어 넣었어. 판임 씨가 끓인 맛보다야 당연히 못했지만, 중학생 수미가 끓인 것보단 맛이 좋았어. 그리고 판임 씨가 그랬던 것처럼 슬픔은 뒤로 하고 국물 맛을 음미했지.      


 고마워, 판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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