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
1년 중 상반기 후반에 가까운 이 날, 어쩌면 어떤 정치적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날 나는 한 살을 더 먹고, 이고 지고 싸맨 짐을 챙겨 영월로 떠났다. (친구는 놀리듯 '참 혁명적이네'라고 했다)
서울 집에서 새벽 요가 수련을 마치고 거의 이삿짐 급인 짐을 싸들고 영월로 향했다. 새벽부터 짐을 싸고 냉장고의 남은 음식을 한 달간 쓸 일 없는 알비백에 탈탈 몰아넣고 차에 탔다.
영월로 가는 길은 비가 내렸다. 비 오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데다가 짐도 많고, 날도 추운데 -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이사 가는 날 비 오면 잘 산 댔다'라는 전통 기복 신앙에 기대면서 갔다.
오전에 일찍 출발한 덕분에 영월에는 점심 후에 도착했고, 짐을 죄다 옮겨놓고 냉장고를 한 바퀴 뒤집어 내 기준에 '먹을 게 좀 있는' 모양새로 만들고 한 살 먹은 기념, 동강 한우를 먹었다.
영월 '읍내' 다이소에서 가져오지 못한 물건들 - 머그, 테이블로 쓸 5천 원짜리 상-을 사고, '읍내' 하나로 마트에서 식용유와 채소를 조금 샀다.
읍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재밌다.
이제 서른 넷이다.
5월 17일
평소에 잠을 잘 못 자서 약을 먹을 정도로 힘들어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뻗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가. 강원도라 그런지 아직은 많이 쌀쌀하다.
아침엔 집에서 가져온 볼에 집에서 가져온 두유에 집에서 가져온 시리얼을 말아서 먹고, 어제 산 테이블을 펴서 일을 했다.
생각보다 빨래가 금방 쌓여서 읍내에 있는 빨래방에서 수건을 빨았다. 세제 향이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고민이 된다. 숙소에 세탁기는 밖에 빨랫줄에 걸어야 하는데, 선택을 해야겠다.
처음 답사 때 키를 받으러 갔던 영월 서부시장에 가서 부치기와 수수부꾸미를 먹고 들어와 브런치를 시작했다.
5월 18일
오전에 날씨가 좋아서 빨래를 했고 오후에는 처음으로 읍내 관광을 했다.
관광이라고 해봐야 카카오 맵+인스타를 켜고 갈만한 카페를 물색해 들어가 다이어리를 쓰고 책을 읽는 정도다. 하루키의 신작을 읽고 몰스킨에 일기를 썼다. 서울에서 하는 짓을 여기서도 하고 있는 걸 보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읍내 카페 스몰토크 아마 영월에서 가장 기억날 것 같은 곳.
3일 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장미 세 송이를 샀다. 신기하게 영국에서 친해진 동생의 사촌오빠가 여기서 꽃집을 한다고 했다. 세상은 좁다.
계란을 사러 간 서부시장 안에서 마음에 드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이름은 중부내륙이다.
읍내에서 집까지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오니 만원 안짝이 나온다. 차 타고 15분 내외지만, 걸으면 2시간이 훨씬 넘는 길이니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