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는 환경을 지배하고 삶을 긍정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모스크바의 신사’의 주인공은 제정 러시아의 귀족 로스토프 백작이다.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된 러시아에서 그는 호텔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스위트 룸에서 6층의 좁은 다락방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좌절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환경을 지배하기 위한 목적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고하고 행동한다.
첫째, 자신의 기질에 대해 파악하고 주변 환경을 자신의 처지에 맞게 변화시킨다. 그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복수의 기질이 없다. 세르반테스처럼 장대한 작품에 대한 상상력도 없고 나폴레옹처럼 제국 복원을 꿈꾸는 공상적인 자아도 아니다.
그와 잘 맞는 인간형은 로빈슨 크루소다. 크루소처럼 실질적인 일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결의를 유지해 나가기로 한다. 크루소가 피난처와 깨끗한 물이 나오는 곳을 찾고 부싯돌로 불 피우는 법을 배우고 섬의 지형과 기후 식물과 동물을 연구한 것처럼. 수평선에 돛이 보이거나 발자국이 나타나는지 살핀 것처럼 새로운 방을 꾸미기 위해 침대 시트, 리넨 제품, 베개 비누, 밀푀유를 장만한다.
둘째, 생활의 루틴을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 스무 번 쪼그려 앉기, 스무 번 스트레칭, 다섯 번 심호흡 후 커피와 비스킷 한 조각, 과일로 식사한다. 식사 후 일을 시작하거나 휴일에는 소설이나 신문을 읽는다. 점심 식사는 피아차 식당에서 저녁은 보야르스키 식당에서 먹는다. 일을 마친 밤에는 공상의 나래와 여행의 추억과 역사에 대한 사색을 하고 잠을 잔다.
셋째, 자신의 강점을 찾아 일을 시작한다. 다년간의 파티 주최 경험과 자리 배치 능력, 와인과 음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웨이터로서 일을 한다.
넷째,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한다. 유머와 품격 있는 태도,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 다방면에 걸친 지식과 경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호텔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한다. 지위고하, 나이를 불문하고 호텔 공간에서 부딪치는 직원, 투숙객, 공산당 간부, 외국인 등 폭넓고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 낸다.
다섯째,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과감하게 나간다. 그는 치밀한 준비와 호텔에서 맺어진 인맥을 이용하여 파리로 간 수양딸 소피아를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시킨다. 본인도 호텔을 빠져나간다. 핀란드로 탈출한 것처럼 속이고 고향 니즈니노브고로드에 간다.
고향을 찾은 그는 신사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고향집은 재가 되었다. 풍경은 과거의 모습이 아니다. 사과주스는 더 이상 달콤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예전 영주인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분노와 실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옛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32년간 호텔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을 찾은 60대 백작은 어떤 변화에도 분노와 실망보다는 아쉬움과 평온함이 깃든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진정한 신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