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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희 Apr 10. 2019

'선'의 무의미


교양과 예능의 경계선을 넘어섰다. 우리 삶에 있는 '선'들에 집중하겠다는 슬로건은 예능의 한계선을 넘는 시도였다. <선을 넘는 녀석들>은 재미있는 예능보단 생각의 공간을 넓혀 준 소중한 방송이다.  






이것은 예능인가? 교양인가?


시즌1에서 <선을 넘는 녀석들>은 해외의 국경 지역으로 떠난다. 겉으론 여행과 문화를 보여주나 싶더니 회가 거듭될수록 뻔한 여행 예능이 아님을 드러낸다. 출연진이 겪는 적절한 고난과 여행의 분위기는 영락없는 예능이다. 영어를 못 해 멕시코와 미국 사이 국경에서 헤매거나 그런 어수룩한 실력으로도 외국인과 교류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그러나 그 속엔 국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두 세력의 갈등과 입장을 살펴보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가벼운 여행에서 시작한 코스는 도착지가 확실하다. 바로 국경을 넘는 것. 그 자체로 참신한 이 소재엔 두 나라 사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자는 메시지가 담긴다.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고 현재 상황과 연결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국경지대 사람들의 입장을 듣는 과정이 이 방송의 중심점이다. 


'선을 넘는다'의 가장 큰 의미는 멀리서 뉴스로만 들었던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데에 있다. 무거운 뉴스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 국경지대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곳에 직접 가서 사람들과 인터뷰하는 <선을 넘는 녀석들> 덕분에 시청자는 더 생생한 상황을 느낀다. 사람 이야기를 듣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는 <거리의 만찬>에서도 입증됐다.


일반 예능과 달리 출연진은 캐릭터가 아닌 역할을 부여받는다. 각자의 관심 혹은 전문분야에 맞는 설명을 맡는다. 강사인 설민석만 말하는 장면이 적은 이유다. 타일러는 정치적 상황을, 김구라는 시사 상식을, 유병재는 스포츠 문화를, 설민석은 역사를, 이시영은 언어를 담당하는 식이다. 한명의 전문 가이드가 끌고 가는 여행의 진부함이 여기엔 없다. 비중의 균형을 맞춰 등장하는 <알쓸신잡> 속 전문가들의 여행을 생각해보자. 만약 한명의 지휘로 움직였다면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기획의도와 메시지가 확실하다는 점, 단순한 재미가 아닌 지식의 전달과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는 점, 캐릭터보단 각자의 역할과 균형에 신경쓴다는 점에서 이 방송은 예능과 교양의 경계선을 더 희미하게 만든다. 




사라져버린 선


결국 선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양쪽의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이 이 프로그램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여행과 역사는 곁들여질 뿐이다. 방송은 국경의 이야기를 여행과 문화, 음식이란 친숙한 소재로 노련히 다뤘고 그와 관련한 역사와 정보는 자세히 다뤘다. 그래서 "알고 보니까 다르다"라는 출연진(=여행객)의 만족처럼 방송 역시 시청자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시즌2는 아쉽다. 시기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시즌2는 3.1운동, 임시정부수립 100주년과 좋아진 남북 관계를 의식했다.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군사분계선을 도착지로 정하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살펴본 과정에서 그들만의 특색은 사라졌다. 국경을 직접 넘으며 전해줬던 생생함과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는 과정이 빠지면서 평범한 역사 여행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즌1은 여행 속 역사·문화 이야기를 뉴스에서만 봤던 쟁점으로까지 끌어올렸다. 역사는 중간 장치로 쓰였을 뿐이다. 반면에 시즌2에선 역사만이 주인공이다. 시즌1의 여행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팀원 중 하나였던 설민석이 가이드가 되면서 역할 분담의 균형성은 무너졌다. 한명의 가이드가 끌고 가는 진부한 여행이 된 셈이다. 


군사분계선은 아직 넘을 수 없는 선이었고 일본과 강화도 같은 장소는 선을 넘는다는 의미와 맞닿기엔 매끄럽지 못했다. 선에 매달리다가 본래의 선을 잃어버린 모양새다. 조금은 무리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선을 넘는 녀석들>은 놔두고 새로운 기획으로 시기적 환경을 다뤘으면 좋지 않았을까.


 <선을 넘는 녀석들>은 예능과 교양의 경계'선'을 없애며 장르 구별 없는 방송의 변화에 좋은 가이드를 제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가능케 한 방송 속 국경'선'도 없앴다. 선의 무의미는 제작자로 하여금 장르의 구별에선 자유롭되 방송의 강점은 지켜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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