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8일차, 마지막 미팅

쿠알라룸푸르-홍콩-인천-김포-제주 일정

by 루파고

예상했던 것보다 딱 하루 더 있게 됐다.

주말이 낀 덕에 팔자에도 없는 말라카 구경도 했다.

전날 갑자기 잡힌 미팅 때문에 아침부터 일찍 짐을 꾸렸다.

짐이라고 해봤자 기껏 35리터 백팩 하나뿐이지만 말이다.



아침식사는 이틀 전 숙소 도착해서 사 둔 매운 컵라면으로 때우기로 했다.

용기 포장부터 무시무시하다.

불닭볶음면 수준 될지 정말 궁금했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일까 하다가 항공사 직원으로 있는 아내의 남편 되는 사람의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렇게 설명하면 관계는 참 복잡하지만 직접적으로 아는 분의 이야기를 걸러 걸러 들었던 것이다.

중국인을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은 호텔 커피포트에다 속옷과 양말 빨래를 한다


는 소문이었다.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믿을 수 있는 분을 통해 나온 이야기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귀찮지만 냄비에 물을 끓이는 수밖에.

조리법이야 만국 공통이다.

시뻘건 소스에 버무린 비빔면.

맛은 어땠을까?

완전히 속았다.

맵긴. 개뿔!


청포도 한 송이와 바질 음료 한 병 남아있었는데 청포도 한 송이를 빨리 먹는 건 어려웠다.

절반 정도 먹고 나머지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자세히 보니 어제 먹었던 음료가 바질 음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개구리알 같은 것이 둥둥 떠 다닌다.

덤으로 타이거 맥주 한 캔이 더.

하지만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배낭에 챙겨 넣었다.

공항에서 마시던 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공항에서 맥주를......


짐을 챙겨 나오면서 창 밖 말레이시아 도심의 모습을 보았다.

보통 시티뷰 호텔이라 해도 이 정도 뷰는 흔치 않다.

우리나라 아파트와는 달리 높은 천정고가 독특했던 숙소 천장에 달린 선풍기.

여전히 느린 속도로 돌고 있었다.




첫날은 듣기 싫은 소음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지만 피곤은 그런 것도 눌러버리고 말았다.

만족도가 높은 숙소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큰 불편 없이 이틀 밤을 보낸 것에 감사해야지.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면 뭔지 모를 허전함 같은 게 있다.

좀 더 열심히 쏘다니지 않은 걸 후회하곤 한다.



부족함, 아쉬움이 있어야 미련이 생기기 마련이다.



호텔을 빠져나와 전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이다.




약속 장소인 쇼핑몰로 들어서자 시원한 공기가 나를 맞아주었다.

여기서 익숙지 않은 모습을 보고 말았다.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는 모습이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총을 등에 매고 있었다.

공항에서야 흔히 볼 수 있겠지만 쇼핑몰에서는 좀 부담스러운 풍경이었다.


히잡을 둘러 쓴 여성 모델.

언제 봐도 재미있다.

말레이시아 스카이다이버 친구들 중에는 여자도 몇 명 있었는데 그들 역시 저런 스타일이었다.

새삼스럽다.




미팅을 마치고 마지막 식사.

이게 말레이시아 출장길의 마지막 식사다.

일본식 돈가스인데 좀 퍽퍽해서 목이 메었다.

맛은 그저 그런......


여기서 또 이상한 층별 안내판을 만났다.

이번엔 G와 L 그리고 U다.

G는 Ground를 뜻하는 것 같고

U는 Upper를 뜻하는 것 같은데

L은 또 뭘까?

정말 알 수 없는 방식이다.

다음에는 꼭 물어보리라.




쇼핑몰을 나서는데 스마트 보관함에 눈길이 갔다.

말레이시아에서 8일을 보내는 동안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온갖 규제로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 할 지라도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하는 것이 허다하다.

그뿐 아니다.

금융지원 같은 건 먼 나라 이야기다.

기업들이 투명한 경영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 국가적 지원책이 문제다.

연일 방송을 통해 중소기업, 벤처기업, 스타트 기업을 돕겠다고 하지만 정작 일선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말을 하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말레이시아보다 잘 산다고는 하지만 정작 이런 지원책이나 규제 관련한 부분에 있어 훨씬 자유롭다.

모르긴 해도 우리는 그놈의 규제 때문에 좋은 기회 다 놓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한국에서 투자지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의 아이템을 정작 이곳 말레이시아에서는 적극 지원하고자 하는 상황인데 국내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할까?



쿠알라룸푸르 공항까지 그랩을 타고 가려는데 비즈니스 파트너는 열차를 타고 가란다.

30분이면 간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왜 택시를 타고 다녔을까?

물론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말이다.

역시 경험해 봐야 한다.

해당 위치까지는 비즈니스 파트너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인천국제공항까지 가는 공항철도 같은 게 있다는 건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KLIA ekspres

말레이시아식 영어가 다시 나타났다.

제1터미널과 제2터미널 두 곳에 정차한다.




우리 공항철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열차는 대체적으로 깨끗한 편인데......




여기서 다시 놀라운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소지품 등을 꽂게 만들어 둔 네트가 전부 뜯겨 나가고 없었다.

실도 너덜너덜하다.

다른 좌석은 어떤가 봤더니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7일간 느낀 그대로였다.

말레이시아는 유지보수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새로운 것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일까?

장기불황 탓일 거라고 나는 지레짐작하고 만다.




공항 구석에서는 뭔가 촬영을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인천국제공항에도 보면 동서 양쪽 끝에서 촬영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KLIA ekspres 덕분이다.

타이거 맥주를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는 없으니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소리 나지 않게 맥주캔을 땄다.

소심하게......

공항에서 술 마시는 사람을 본 기억은 없으니 혹시라도 경범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나 싶었던 것이다.

공항 로비에서 한적하게 미적지근한 맥주를 홀짝거리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았다.

마침 말레이시아 돈도 조금 남았다.

워낙 쇼핑 같은 건 즐기지 않기에 남은 돈이 많다 해도 면세점을 기웃거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스타벅스 커피는 의외로 시내보다 비싸거나 하지는 않았다.

톨 사이즈로 한 컵 주문해 두고 스마트폰을 충전하며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말레이시아에서의 마지막 커피는 스벅 커피가 됐다.

10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홀딱 반해 버렸던 진저 커피를 잊고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말았다.

예전엔 진저 커피 홀릭에 남은 돈 몽땅 구입해 와서 두고두고 마셨는데 말이다.


다음 말레이시아 출장은 추석 후로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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