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옆자리 이어폰을 낀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가 방귀를 뀌었다.
거친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 의자를 타고 전해져 온 진동에 짜증이 났다.
다행히 냄새는 나지 않았기에 도저히 참기 어려운 생리현상이라 실수였겠거니 했다.
불과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는 같은 실수를 했다.
그저 실수로 봐주기엔 내 맘도 너그럽지 않았다.
그런데 사고를 친 아주머니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 아주 태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에서 빠져나갔다.
어처구니없었지만 당사자가 사라진 자리라 나 혼자 열을 낸들 무엇하겠나 싶어 마음을 비우려는 찰나, 다시 방귀 소리와 함께 거친 진동이 플라스틱 의자를 타고 전달이 왔다.
아주머니가 떠나 자리 옆을 보니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헤드폰을 끼고 아무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한 정거장이 남았기도 했고 짜증이 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잠시 후 할아버지가 따라 일어섰다.
곧 같은 정거장에서 내렸는데 어찌나 태연하던지…
아주 오래전 순돌이가 버스에서 헤드폰 끼고 교향곡 박자에 맞춰 방귀를 뀌는 웃긴 얘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정말 쪽팔려!
흔히 쓰는 표현인데 쪽팔림을 안다는 건 체면이란 게 있고, 옳고 그름의 잣대를 놓지 않았단 거다.
매우 좋은 증상이다.
세상엔 쪽팔림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쪽팔림을 알면서도 오히려 끝없는 거짓과 변명으로 모면하려는 뻔뻔한, 심지어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족속들이 있다.
복잡한 세상이라지만 진정으로 쪽팔린다는 생각이라도 했으면 싶다.
쪽팔림을 모르는 자에게 도덕이나 예절을 기대하기 어렵다.
언젠가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쪽팔림을 모르면 죽는 게 낫다
결코 할아버지 같은 경우를 예를 든 건 아니다.
도덕과 예의를 모르거나 뻔뻔한 사람들을 두고 표현한 것도 아니다.
쪽팔림을 모른다는 건 ‘나’ 자체를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쪽은 얼굴이다. ‘쪽팔리다 ‘의 유의어로 ’ 면상 팔리다 ‘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아래 글에 의하면 1990년대 이후에 사전에 나온 ‘쪽팔리다 ‘는 표현은 비속어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아주 일상적인 표현처럼 되어버렸다.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19032901033806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