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던 것처럼 독일에서도 그대로 살고 있는 한국인들 이야기
원래 12월 23일부터 12월 25일까지 프라하 가족 여행을 한달전부터 준비했었으나, 12월 21일 프라하에서 총기로 인해 1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가족들과 논의한 끝에 아쉽게도 이번 프라하 여행은 취소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인 동료는 남자친구와 그날 저녁 예정대로 프라하로 떠났고,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지나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것을 보며 괜히 호들갑을 떤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신 3개월전에 이미 예약해놓은 연말 함부르크 여행이 남아 있기 때문에 위안으로 삼고, 예전에 비해 조용하게 크리스마스 연휴를 집에서 보냈다. 총기 사건이 아니었다면, 프라하 여행기를 포스팅했었겠지만 오늘은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왔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앞으로 이야기 하는 내용은 우리 가족이 직접 경험한 내용과 독일에서 오래 살고 있는 다른 한국인 친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것이지만, 모든 한국 사람이 그렇다고 일반화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외면하기에는 새로운 피해자가 계속 나올수 있는 중요한 독일 내의 한인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뤄보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이 불편한 분들은 부디 읽지 않으시길 권한다.
독일에 오기 전부터, 독일 내의 한식당이나 한국 회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착취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잘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었고, 다들 알고 있지만 문제를 만들기 싫어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느껴졌었다. 독일 전체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유학생을 포함하더라도 5만명도 안되고, 베를린의 경우에는 겨우 6천명 밖에 안되는 굉장히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실로 심각하다고 볼수 밖에 없다. (독일 인구는 약 7천만, 베를린 인구는 약 350만명) 그래서 우리 가족은 독일에 온 이후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다른 한국인들과의 관계를 만들지 않았고, 여전히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베를린에 온 이후 여러 한국 식당에 한국 음식을 먹으러 많이 다녀왔지만 한식당 내부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식당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러 가는 곳이지, 식당 직원의 노동 환경을 연구하러 가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딸내미가 미술대학에 들어간 다음 드디어(!?) 한식당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다. 처음 한식당에서 알바를 한다고 할때 우리 부부는 반대했지만, 나를 닮아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딸내미는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혹시나해서 유학생들이 만든 독일 노동법 관련 문서를 공유도 해주었지만 읽어보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6개월간 열심히 알바를 하고 나더니, "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사람을 막대한다"라면서 두번다시는 한식당에서는 알바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딸내미는 성인이기 때문에 매년 TK(공보험)에서 현재 상황을 업데이트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러면 학교 재학 증명서를 제출해야하는 데, 이번에는 알바를 했었기 때문에 알바 기간 동안 얼마의 수입이 있었는지도 신고해야 했다. 그래서 딸내미에게 한식당 사장에게 6개월치 급여명세서를 받아오라고 했더니, 한식당 사장놈(!!)은 그런것 줄수 없다는 식으로 나왔던 것 같다. 다행히 매니저가 챙겨줘서 6개월치 급여명세서를 받아와서 TK에 제출했는데, 그럼 그동안 매월 급여를 주면서 급여명세서를 주지 않았다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황당했다. 만일 매니저가 따로 챙겨주지 않았다면 내가 그 식당으로 쫒아가서 한바탕을 했었을 것이다. 그 사장놈은 나중에 호텔을 경영하는게 꿈이라고 떠들어댔다는데, 그런 쓰레기가 운영하는 호텔 수준은 안봐도 알것 같다.
지금 딸내미는 대학생들이 많이 일한다는 오페라하우스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당연히 한식당과는 수준이 다르게 좋은 근무 환경에서 편하게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벌고 싶은 만큼 (미니잡 한도내에서) 스케쥴을 임의로 정해서 원하는 날에만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고, 공연 중에는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다만, 유니폼을 받기 위해서는 140유로 보증금을 내야하고, 급여일이 월말이 아니라 매월 15일인 것 등의 차이점이 있어서 딸내미가 당황하기는 했지만, 한식당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인 것은 본인 스스로 많이 느끼고 있다.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 공연의 경우에는, 할머님들이 후하게 팁을 줬다며 신나하는 것을 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왜 한식당들은 타지에서 고생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이런 좋은 환경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중국인이 운영하는 아시안마트에서는 국적 상관없이 유학생들에게는 무조건 10% 할인을 해주고, 중국인 유학생에게는 30% 할인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상품들에 먼지가 쌓여있고 주인은 골프 타령만 하는 초라한 한인마트가 생각나서 안타까울 뿐이다.
독일에 온 이후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항상 바쁘고, 5년 넘게 꾸준히 독일어를 공부해온 와이프가 최근에 주변 친구들의 권유에 자신의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독일에서 오래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일을 할만한 장소들을 신중하고 검토하고는 와중에, 한식당 중에도 그나마 괜찮을 것 같은 곳 중에 한곳에 인터뷰를 하러 갔었다. 와이프 입장에서는 독일에서 한식당을 직접 운영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과연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해당 식당은 우리 가족도 손님으로 몇번 방문한 적이 있었던 곳이라 사람을 구한다 하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본 것이다. 역시나 와이프도 이곳에서 딱 한번 인터뷰를 본 다음부터는 다시는 한식당 일자리는 알아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니, 왜 그동안 그렇게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한식당 주인은 당당하게(!?) 자기들은 일손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은 쓰고 싶지 않고, 한국인 유학생만 쓰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즉, 독일인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근로 환경을 제공할 생각이 없으며, 그때문에 발생하는 독일인 직원들의 당연한 권리 요구가 듣기 싫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만만한 상대이기 때문에, 열악한 근무 환경과 불합리한 급여 등을 제공해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식당 일에 프로베짜이트(수습기간)를 두는 것도 웃기지만, 프로베짜이트 기간 동안 팁을 나눠주지 않거나 무임금 근로 시간 등에 대한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놀라운 일도 아니었지만, 30대인 사장이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다른 직원들에 비해 나이가 있다고 해서 유세를 떨면 안된다" 독일에 와서 우리 부부는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을 사귀어왔고, 독일 생활에서 만족스러운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점이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명색이 자기 사업을 한다는 인간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좌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몸만 독일에서 살고 있을뿐, 생각과 행동이 전형적인 "한국인"이었고 이러한 태도는 죽을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즉, 독일에서 사업을 함으로써 얻게되는 독일 정부나 사회에서 지원받는 것은 다 받으면서도, 자기들이 불편한 부분은 "한국식"으로 처리함으로써 양쪽의 장점만 취하겠다는 것인 셈이다. 그러려면,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잘모르고 독일어를 잘못해서 따로 기댈곳이 없는 한국인 유학생이 착취하기 가장 좋은 대상인 것이고, 그들을 착취하는 것에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식당은 항상 사람을 구하고 있다.
독일에서 오래 산 한국인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리 독일어를 잘하고 독일에 오래 살았어도 대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중에 유독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더 정이 갈수 밖에 없고,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한식당이 더 끌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독일어를 잘하기 때문에 원한다면 국적에 상관없이 많은 친구를 사귈수 있는 우리 딸내미가 대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들이나 한식당 알바 하며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 주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러한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한식당 사장들은 이러한 유학생들의 취약함을 노리는 것이고 그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해먹어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차피 한국인 유학생은 매년 계속 독일로 올 것이니 다소 충분하지는 않아도 최소 6개월간은 활용할 자원이 생기는 셈이니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났었던 수많은 "사기꾼"들의 행태와 정확히 똑같은 모습이라,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젊은 승무원들만 볼 수 있는 한국 국적기와는 달리, 루프트한자나 다른 유럽 항공기를 타보면 나이가 많은 승무원들을 많이 볼수 있다. 자신의 비행 스케쥴을 원하는대로 조정해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일을 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아도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일을 할수 있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항공기 승무원 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상점, 마트 등 어디서든 나이가 많은 직원들이 즐겁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유학생에 의존하기 때문에 계속 사람이 들락날락거릴 수 밖에 없는 한식당과는 달리 (베트남 사람이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식당 체인 같은 경우에는 근속 시간이 긴 직원들이 많고, 나이가 들어서도 문제 없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인건비 아끼려고 모든 식당들이 키오스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한국보다, 바쁜 시간에 직원과 눈을 맞추지 못하면 계산을 하지 못하는 독일 방식이 인간적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나이가 젊든 많든 상관없이 어디에서든 웃으며 일을 하는 식당에서 식사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더 좋다. 굳이 이 먼 독일까지 와서 왜 독일 사회, 문화와 전혀 다르고 지금 시대 상황에 맞지도 않는 "한국식"으로 살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독일내의 한인 사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와도 연관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