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make you feel my love
산후풍 조심!
출산을 하고 나면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 주는 따뜻함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모두가 산후조리를 잘하라고 했었다. 몸 망가지는 것 한 순간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땐 뭣도 모르고 육아, 그리고 산후 회복을 병행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오산이다. 오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망가질 수 있는 건 다 망가진 느낌이다.
내 생애 손목과 허리와 무릎과 어깨와 발바닥과 치아가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아픈 건 처음이다.
젊으면 빨리 회복한다는 그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충고를 가벼이 넘긴 과거의 나 자신이 밉고, 나는 괜찮겠지-하며 나에게 쓸데없이 관대한 내 어리석은 성격이 밉다.
나는 아기밖에 눈에 안 들어오는 나머지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전히 그렇지만.
이쁘기도 이쁜데, 처음엔 아기를 내려놓을 방법을 몰랐으니 말이다.
정말 초반에는 세수도 하지 못해서 얼굴이 마르고 거칠어졌었다. 내 나이 28인데...
아, 만 나이로 바뀌어서 스물일곱이네. 와중에 기뻐버린다.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편은 아이의 안위와 동시에 나의 안위를 챙겼다.
본인도 나와 마찬가지로 본인을 챙길 겨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분명 알아도 감사를 느낄 여유가 없었고, 이제와 돌이켜보니 고맙고 사랑스럽다.
임신 때랑 비교해도 출산 후에는 결혼 전과는 다른 관계가 남편과 나에게 형성되었다.
전우애랄까. 서로를 존경하고 동시에 안쓰럽기도 한 전우애.
내 인생을 바쳐 아기를 키우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 인생도 견고하게, 건강하게 지켜가야 마찬가지로 아기의 인생도 바른 길로 이끌어줄 수 있음을 안다.
그것이 나를 챙기는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고,
그 사실을 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남편이다.
당신은 나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부모세대의 육아가 대개 그렇듯이 나를 다 바치길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온전한 사랑이 아닌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
어려운 일이지만, 해낼 것이다. 응원해 주는 이를 등뒤에 두고!
문득 기억나는 게 있는데, 출산했을 당시에 간호사님께서 남편에게 이름을 물어봤었다.
아마도 내 팔에 꽂은 주사에 나의 이름과 아기의 태명을 적으려고 여쭤봤던 것 같은데, 남편은 본인의 이름을 물어보는 줄 알고 본인의 이름을 답했다.
간호사가 웃으면서 병원에서 남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산모와 아기의 이름만 알면 된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조리원에서는 나의 이름은 방호수로 대체되어 905호 산모님 혹은 태명인 사랑이 엄마였다.
우리 내 부모님들도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로 불리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왔고, 여전히 그들의 며느리나 사위에게 이름 아닌 누구의 엄마나 아빠로 부르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근데..바뀔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의 이름을 잊고 살아간다는 거 그거 꽤나 슬프고 고독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짧은 시간에도 느꼈는데 말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과, 나와 아이-그리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바라고, 그려가고자 하는 남편이 있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벅차오르고 힘이 된다.
비록 또 내일의 나는 힘이 들면 남편에게 투정 부리겠지만,
내 마음을 이 글에 빌어 알아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속내를 적어내며-
언젠가 되돌아봤을 때 이 힘든 순간들이 모두 행복하고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이기에,
혹 나와 같은 시기를 겪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모두의 안위를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