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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상정 댕그마니 Sep 30. 2019

Her Story - 서울 토박이

 나는 서울의 보통 집안 출신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계속 서울에서 살고 태어났다. 창신동의 골목 안 우리 집은 돌계단 두어 개를 딛고 올라서서 자그마한 기와지붕이 있는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야 했다. 어린 시절에는 이 문을 뻔질나게 밀고 드나들며 온 동네 골목을 쏘다니고 신나게 놀았다. 팔십 년도 전의 나의 추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낡고 뿌연 옛 활동 사진 같은 이미지가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눈앞에 흐른다. 

부모님은 나를 포함하여 슬하에 세 딸을 두었다. 두 분 다 말씀이 많지 않았다. 요즘 말로 스마트하게 보였던 아버지는 말씀이 더 없었고 당시의 다른 아버지들만큼 엄했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맞게 해야 할 일을 해나갔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 필요한 정도만 하고 살아왔다. 아버지는 충무로에서 인쇄소를 경영했다. 남겨진 사진 몇 장에 아버지가 직접 쓴 글씨체가 남아있는데 필체를 다시 한번 볼 정도로 잘 썼다. 어머니는 살림만 하는 주부였다. 한글을 알아서 동네 사람들이 편지를 읽고 써달라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한쪽 다리를 세우고 펜을 든 오른손을 '척'하니 크게 휘둘러 저고리 소매자락이 올라가게 한 뒤 편지를 써주곤 했다. 십 대 시절에 미국 선교사가 의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미국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단다. 나의 외조부모님이 딸이 이역만리 생면부지의 땅으로 혼자 떠나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때 두 명의 십 대에게 제안했는데 다른 한 명은 미국으로 떠났고 후에 그녀가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신식 학교를 다녔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으나 아마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랬다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었을 터이니 말이다.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나는 나의 시선이 닿는 한계까지만 내다보았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갔고 내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빠져들었다. 집안일을 크게 시키지도 않았고 학교에만 열심히 다녀 이른 아침 집을 나서서 해가 진 뒤에야 돌아왔다. 학교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바빠서 어머니에게 어머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채 물어보기도 전에 나의 어머니는, 내가 20대 때 병환으로 먼저 훌쩍 세상을 떠나서 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금 판단하건대 나는 에너제틱하고 다이내믹한 아이였지만 TV도, 인터넷도, 노래방이나 놀이공원도 없으니 에너지를 발산하고 가속을 가할 장치가 주변에 없었다. 학교와 내가 속한 공간 안에서 규칙에 맞게 충실히 살아갔다. 참한 언니는 손재주가 좋았고 조용하고 착했다. 나는 언니를 보며 성장했지만 좀 더 진취적이기를 바랐다. 나의 동생은 ‘언니가 하니 나도’라며 나를 따라왔다. 동생은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이화여자중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외과에 뒤따라 들어왔다. 언니는 대학에 가지 않고 결혼을 했고 동생도 대학 시절 만난 동기생과 결혼하여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 나는 대학에 가고 더 멀리 날아가고 싶었다. 다가올 미래의 세상과 머나먼 미지의 세상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휴전 후 언니와 언니 친구들과 광나루 참외밭으로 놀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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