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도 자주 밝혔었지만, 상반기의 후반부 즈음, 그러니까 5월과 6월은 정말 쉽지 않았다. 비단 올 한 해뿐만이 아니라,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사람 (정확히 말하면 상사)과의 마찰, 회사를 다닌 이래로 처음 만나보는 상사의 스타일에 다소 적응이 안 되기도 했거니와, 업무적으로도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래저래 쉽지 않았던 5월을 보내고 나니, 6월은 조금 수월했으나, 그럼에도 6월 또한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당탕탕 상반기를 마무리지을 즈음에 한숨 돌리고 보니 7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5월에 가까운 해외로 나가려고 했으나, 일이 워낙 바빠서 가지 못했었다. 7월 초에는 반드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 보니 일본과 홍콩을 선택지에 둘 수 있었다.
사실, 5월까지만 해도 일본을 가고 싶었었는데, 불현듯 6년 전 처음 방문했던 홍콩이 떠올랐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그때는 친구와 함께 갔던 여행이라 온전히 나 혼자 가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20만 원이라는 항공권이 큰 매력 포인트였다. 항공권을 끊고 나서야 홍콩의 여름이 극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항공권이 저렴했구나… 숙소비가 저렴했구나…. 관광객이 없었구나...
홍콩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숙소에 내리자마자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홍콩은 우기였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비는 피했지만 홍콩의 습기와 태양은 이제껏 느껴본 여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더웠다. 원체 추위를 많이 타서 에어컨도 세게 틀지 못하는데홍콩 가게는 대부분 에어컨을 세게 트는데도 전혀 춥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냉방이 약하면 조금 더 낮춰줬으면, 싶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임에도 15분 이상은 도저히 걷기 어려운 날씨였다. 땀으로 샤워하는 게 당연한 기온, 아침에 보송보송한 얼굴로 나가도 금세 땀으로 얼룩져버리는.
다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오히려 이런 날씨여서 힐링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원래는 케네디 타운을 산책하며 홍콩의 바다를 느끼려고 했으나 오후 2시의 더위는 도저히 이겨낼 수 있는 그것이 아니었다. 10분쯤 걷다가 '안되겠다-' 하고 아무 레스토랑이나 들어갔다. 해피아워라 저렴한 가격에 맥주 한 병 시켜놓고 멍 때리면서 바닷가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무한도전 레전드를 시청하고, 또 지루해지면 음악을 들으며 다시 멍-하게 맥주에 집중했다.
너무 더워서 살려고 들어간 프렌치 레스토랑. HAPPY HOUR 덕에 저렴한 가격으로 시원함을 맛봤다.
나에게 여행이란 사실 이런 쪽에 가깝다. 관광지도 좋고, 유명 맛집도 좋지만, 그보다 혼자 도시의 거리를 걷거나, 아니면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서 생각을 비운 그 순간이 지나고 보면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의식적으로 이런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편이다. 다만, 의도치 않게(?) 맞닥뜨린 살인적인 홍콩의 더위가 어쩔 수 없이 이런 시간을 더 많이 만들게 했는데, 그렇기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더 많은 것 같기도. 오늘의 일상에 허덕이는 동시에 내일과 일주일, 한 달 이후의 일들에 불안해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이라지금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그래서내게 더욱 소중한 것 같다.
아무튼간에 특별한 것은 전혀 없던, 아무것도 하지 않은 2박 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다. 그렇기에 오롯이 개인적인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았던 상반기를 돌아보면서 맥주 한 모금, 하반기는 더 잘 보내야지 생각하면서 또 한 모금하는 순간순간이었다. 반이나 지났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다독이면서 말이다. 상반기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하반기에 다시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들이나, 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도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냥, 모르겠고, 힘들면 힘든 대로 버티면서 이런 시간들을 더 많이 만들자고. 1년 내내 힘들지는 않을 테니, 열심히 하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에 너무 흔들리지 말자고.
여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구나.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렇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7월 중순이고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은 없다. 회사는 여전히 회사고, 업무는 그대로다. 그래도 홍콩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프로젝트는 진전이 되고 있고, 저번주에는 협약식까지 잘 마무리되어서 개인적으로 뿌듯하기도 했다. 가까운 곳이라도 한번 더 나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