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요즘 나의 관심사 말하기. 희곡 글감 발견.
요즘 관심 있는 이야기? 확실히 그런 걸 쓰면 좋을 거 같다. ‘젠더’에 관한 이야기, ‘퀴어’에 관한 이야기 스스로 좀 지겹지 않니. 티서야, 자기에게만 매몰되지 말고 밖을 한 번 바라봐. 작가로써, 네가 요새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무엇이니? 아주 작은 이야기라도 좋아.
웹소설 쓰느라 <환생좌> 일고 있는데요... 아, 굳이 하나 꼽자면 기억에 남는 순간 하나.
대중적으로 먹히는 이야기를 쓰고자 하다가, 남자 주인공이 상대의 불쾌감을 눈치 채는 장면을 썼다. 워딩도 ‘불쾌해 보인다’는 표현을 써서. 그렇게 적고 나니 드는 의문.
‘보통 남자가 불쾌해 보인다는 표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나?’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이 시키 삐졌네.’ ‘자존심 상하네.’는 있어도, ‘불쾌하다’는 말을 쓰는 남자는 확실히 여자들보다는 적은 것 같았다.
사회 언어학적으로 흥미로운 주제 아닐까? 하는 생각 하나.
그리고 또 드는 생각은,
‘아, 나는 왜 보편적인 남자를 짐작해서 쓰려고 이렇게 애쓸까? 왜냐하면 나는 보편적인 남성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부분이 내게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결론은. 나는 동남아 여행을 가서도 맥도날드 한 끼는 꼭 먹는다. 그만큼 입맛도 글감선택도 보수적이니... 그냥 내가 하던 거 하자. 지겨워하면서 은근히 또 하고 싶잖아.
근데 퀴어 주제를 다루는 창작자들 장막만 봐도 다아들 내용이 다양하단 말이지? 젠더, 성별이분법에 관해서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초단편들을 이어서 보여준 분도 있고. 내 지인 분이야 목적과 극적 구조가 확실하고. 약간 시간 여행으로 성전환 전의 자신과 대화하는 내용의 희곡도 있었는데... 역시 대세는 SF. 나도 장르 쪽으로 해야 하나? 중성 외계인 하나 만들어?
아아, 이것 봐.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또 전략을 세우고 있다.
작전참모 된다고 문학상 못 타.
한편으로는 퀴어 주제야 내가 살아오며 늘상 생각하는 거고, 딱히 소재를 고민하지 않아도 소재야 언제나 내 삶에서 길어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소재에 대한 고민을 ‘이 주제(?)’에 관해선 덜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말 하고 보니 완전 이상한 생각이잖아?)
그래, 소재, 소재를 생각하자.
너무 전체적으로 내 인생 그것이 내 희곡이다 이런 거 말고, 구체적인 장면.
티서 넌 뭐가 기억나니?
우선, 친구가 제안한 에세이 기획. 시스젠더 여성인 그녀와 나의 우정을 다룬.
그 친구가 말했듯 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관계’에 집중한 에세이는 또 없었다. 뭐, 트젠 차별하지 말자라는 구호는 있었지만, 또 구체적 일상을 담아낸 글은 없었잖아? (지금이 적기다!)
그 관계들. 화장품 살 때 괜히 그 친구한테 전화하고, ‘그런 무늬가 있는 스타킹을 교내에서 신는 여자는 사실 없으니까.’라는 말을 서로 기분 안 상하고 할 수 있는 그 간의 관계들.
적고 보니 소중하잖아. 서로를 깊게 이해하게 된 데에도 서로의 품이 들었다. 그간의 시간들이 쌓였다.
한편으론, 그래서 에세이를 써야 할지 희곡이 적합할지 또 모르겠다. 너어무 현실의 관계를 그대로 차용해온 픽션 창작을 하기는 싫다.
또 여기 더해서, <오뉴블>에서 그 트젠 캐릭터가 처음 꾸몄을 때, 부인이 ‘왜 10대 여자애들처럼 꾸몄냐’고 말하는 장면, 공감 가서 기억에 남는다. 내 보기엔 따뜻한 장면이었다.
확실히 트랜스젠더가 비난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여성을 가발, 화장품, 스타킹의 집합체 정도로 생각한다.’가 꼽히는 요즘. 거기에 다른 정서를 느끼는 내 이야기를 풀어 봐도 좋을 것 같다. / 패싱의 부담감, 이런 거 백날 설명문으로 말해주긴 지치잖아. 장면을 쓰자.
내가 아주 그냥 눈물 쏙 빼버릴 거야.
암튼 이 소재로 써야겠다.
내 인생 첫 장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격적으로 시간 들여서 쓰는 첫 장편.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20대 초중반 나의 이야기를 좀 갈무리해야만 해.
‘20대 초중반 나의 이야기’라니 이거 완전 광범위하잖아.
이게 소재가 잡힌 건가?
모르겠어. 이 소재는 너무 전체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