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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Nov 30. 2021

<남자에 미친 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

스탠드업 코미디를 목적으로 쓴 대본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최근에 전 회사 동료들을 만났는데요. 그중에 한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자기는 트랜스젠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다른 거 다 떠나서 결국 트랜스젠더들은 남자한테 가끔 여자로 대해지고 싶어 하는 거 뿐인데. 근데 그게 결코 여성 인권과 같이 갈 수 없다고.


  저를 멕이는 말은 아니었고요. 그 친구는 제가 트랜스젠던 줄 몰랐죠. 머리도 똑같았는데, 최근이니까. 그때 화장은 안 했었어요. 근데 제가 모은 화장품들을 전에 다 보여주긴 했거든요? 그, 뭐 편견이 없었나 보죠. 남자도 화장할 수 있다. 그 화장품이 파우치 꽉 채워서 다섯 개는 됐는데, 무튼.


  듣고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진짜 남자 만나려고 상황 따라서 여자인 척을 하는 건가?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아, 이거 그 친구 말이 진짜 맞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일단 저는 카톡 프사는 제 사진 안 하거든요. 근데 틴더에서는 해요, 이렇게 꾸며서. 더 꾸미죠, 어플이 알아서 해주니까. 근데 양심상 그 소개에 CD라고 적어놓거든요? 아, 이게 CD가 뭐냐면요. 크로스 드레서, 그니까 뭐 자기 성별이랑 다른 성별의 옷을 입는다 이런 뜻이겠죠?


  그닌까요. 이렇게, 사람들이 잘 모른답니다? 근데 저는 그 사실도 알아요. 근데 어, 그냥 그렇게만 적어놔요. 맞아요. 지금 여러분이 의심하시는 바로 그 목적 때문이 맞습니다.


  아, 티서씨, 미인이세요. 근데 소개에 시디는, 혹시 시각 디자인과세요? 아니면 애초에 이렇게 오기도 해요. 오! 저 미적인 센스 있는 여자 이상형이에요. 그러면 저도 최대한 상황에 맞춰서 설명해드리죠. 아, 그러시구나. 제가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좀 있답니다. 거짓말은 아니거든요. 뭐 그래서 실제로 만난 적이 있냐, 오프라인으로? 물으신다면. 혹시 여기 그렇게 절 속아서 만났던 분이 없으시다면, 그런 일은 결코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암튼. 근데 그렇게까지 멋대로 착각하는 남자는 사실은 별로 없고요. 보통은 대부분 알아요. 아니면 자기가 검색을 해본다거나. 근데 그러고 나면 이제 또 질문이 쏟아지는데요. 예를 들어서 어, 그러면 수술을 한 거냐. 아래, 위 다 한거냐. 아니면은 호르몬을 먹는다는데 그건 뭐냐. 거의 뭐 트랜스젠더 지망생이죠? 좀 더 직접적으로는 아래가 달렸냐. 그러면 남자랑은 할 때, 어떻게 하냐는 둥.


  어, 옛날에는 그게 좀 이상했어요. 처음 보는 사인데 막 속속들이 궁금해하니까. 뭐 틴더가 캐주얼한 관계를 구할 수도 있는 곳은 맞는데, 이러면 아예 그 로맨틱한 무드 같은 게 다 깨지잖아요? 근데 요새는 그냥 저도 물어봐요. 우리끼리 아랫도리 얘기도 다 할 수 있는 거였냐. 그럼 실례되지만, 오빠는 혹시 크시냐. 아니, 구체적으로 몇 센치냐. 나도 궁금한 게 많아서 그런다. 나도 순수한 호기심일뿐이다!


  물론 상대에 따라서 저도 대응이 다르죠. 이게 사실 그 전 직장 동료가 딱 지적한 부분인데. 좀 마음에 드는 상대면 내가 얼마나 그 ‘여자인지’, 마음이 얼마나 ‘여자고’, ‘여자의 마음이 내 몸에 어떻게 갇혀 있는지.’ 열심히 설명하죠. 근데 뭐 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꼬치꼬치 캐물으면, 친절하게 답해주는 데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냥 여장 남자남자라고! 그러면 뭐 서로 얘기 끝이죠.


  또 막 이런 사람도 있어요. 외모가 진짜, 놓치면 아까울 정도야. 근데 시디는 처음이래. 너무 떨리는데, 호기심은 좀 있대. 그러면 어떻게 해? 또 열심히 설명해야지. 내가 얼마나 ‘여자’고, 그니까 날 만나는 너는 절대로 의심할 여지 없이 얼마나 이성애자 맞는지. 근데 걔가 진짜 궁금하던 걸 물어봐. 근데 트젠도 결국엔 남자였으니까, 남자가 원하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입으로도 그렇게 잘한다는데, 맞나요? 그니까 제가 ‘남자’니까 그것도 잘하냐는 질문이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대답해?


  아무튼. 제가 이렇게 일회적인 만남, 어플? 그런 건 좀 이제 익숙하거든요. 여기서 뭐 날 남자라고 했다, 여자라고 했다 그래도 심적으로 크게 타격받지도 않고. 그렇잖아요. 어플에서 뭐 내가 다섯 살 상습적으로 내린다고 내 나이가 혼란스러워지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이게 좀 괜찮은 남자, 오래 보고 싶은 선한 남자를 만났을 때는 나도 좀 헷갈리더라고요.


  음. 얘랑은 같이 처음에 영화관 데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전 속으로, 어, 영화관 취향? 알지, 알지. 근데 얘가 만나서 같이 좌석을 선택하는데, 그때부터 좀 이상했어요. 얘가 맨 뒷자리가 아니라, 좀 앞쪽을 예약하는 거예요. 어, 뭐지? 앞은 좀, 아무리 옷 위로 만져도, 공연음란죄 아닌가? 좀 힘들 거 같은데, 도망가야 되나? 근데 얘가, 못 도망가게 손을 딱 붙잡는 거예요. 영화 보는 내내. 


  미친. 저 영화관에서 손잡았다고 반했잖아요. 물론 나중에 다른 것도 다 잡았어. 그것도 훌륭했어. 무튼. 좀 웃기잖아요. 무슨 중학생도 아니고 손을 잡았다고 설렐 일이냐고. 근데 그땐 그냥 그랬어요. 평범한 남녀의 데이트 같아서. 그렇게 데이트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날 뭐 성적인 시도의 끝판왕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았죠. ‘와, 씨 진짜 나 성욕에 미쳤나봐. 이제 하다 하다 이런 거까지.’ ‘부, 불쾌하면 그만 할까?’ ‘잔말 말고 이리 와!’ 근데 뭐 어쨌든 뭔가 로맨틱한 접근은 없었거든요. 내가 CD가 뭔지 말하고, 그 의미에 대해서 남자들이 제각각 이해하고 나면요.


  트랜스젠더들은 남자한테 가끔 여자 취급을 받고 싶어 할 뿐이라고? 그니까 그 말도 맞죠. 세상은 오직 성별이 두 가지로 정해진 존재만을 인간으로 인정하니까. 그리고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만 인간적인 호의를 베푸니까. 저도 남자한테 모험 대상, 막 꼴리는 보스몹 그런 거 말고 연애 대상으로 보이고 싶었거든요. 


  제가 ‘여자 취급’을 완전히 좋은 거라고만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한국이 어떤 나라인데,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어도 시스젠더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우리 모두 더 고민해야죠. 하지만 만약 누군가 이 점을 경시한다면, 그게 그 사람이 트랜스젠더라서 그런 건 아닌 거잖아요. 그건 그냥 그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아니기 때문이잖아요.


  저 어렸을 때는 진심으로 고민했었어요. 그때부터 친했던 친구한테 물어봤거든요. 나 이상하게 드레스 업을 하면 남자가 만나고 싶어. 어쩌면 나는 진짜 진지한 정체성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성욕 같은 건가 봐. 그때 시스젠더 여성인 제 친구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여자들도 화장 잘 된 날 집에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해. 뭐 어때서. 


  맞네, 인지상정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는 거였네. 그 얘기를 듣는데 친구의 품이 어찌나 넓어 보이던지. 뭐, 이렇게 마무리하면 좀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는 천상 여자’로 어필되려나요? 아무튼 이제 인사드리렵니다. 참고로 영화관 그 친구랑은 지금 헤어진 상태고요. 다들 좋은 저녁 보내세요.





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지원에 선정, 지원을 통해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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