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그 자체가 나에게는 생각과 취향이었다.
얼마전 글쓰기 모임에서 자신만의 소중한 물건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받았다. 독특한 볼펜부터 다이어리까지 일상을 함께하는 의미 있는 물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나는 외출때 마다 함께하는 이어폰을 소개했다. 평소 노래 듣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대중교통 안에서는 필수품이었다. 뒤이어 소중한 그 물건이 나에게 쓰는 편지를 작성 했다. 듣는 도구지만 이어폰 입장에서는 나에게 불러준다는 느낌으로 글을 썼다. 실제로 힘들때마다 다양한 목소리로 위로해주었기 때문이다. 긴 가사와 그 안에서도 라임이라 불리는 위트있는 말장난이 매력있어 힙합을 좋아했다.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좋았고 너도 할수 있다는 격려도 좋았다. 또 꿈을 이루어 내어 돈자랑을 하는 내용도, 숨기고 싶은 치부를 솔직하게 말하는 내용도 다 좋았다.
그런데 사실 소중한 물건이라고 들었을때 딱 떠오른것은 이어폰이 아니었다. 가져갈수 만 있었다면 지금 누워있는 이 집을, 이 공간을 택했을 것이다. 원래부터 내 공간을 좋아했지만, 독립을 한 후에는 더욱 애정이 생겼다. 비록 매월 돈을 내어 빌리고 있는 이 공간이지만. 엉망처럼 보여도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짜여진 이 공간이. 화장품과 옷을 사는 것 만큼, 소중한 내 공간을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매일 함께 하는 이 공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향을 바꾼 디퓨저 하나에, 빈 벽을 채운 엽서 하나에 하루를 더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일주일 중 하루는 꼭 이 공간에서 뒹굴어 주어야 충전이 되는 느낌이었다. 집순이는 나의 취미이자 힐링이다. 위스키와 담배를 위해 집을 포기한,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는 소공녀의 주인공과는 달리 집 그자체가 나에게는 생각과 취향이었다.
회사와 집이 멀지 않음에도, 심지어 본가와 버스정거장 몇개임에도 독립했다. 높지 않은 연봉에도 새집을 선호했고, 들려오는 단점들(더울때덥고 추울때 추움, 청소 힘듬)에도 불구하고 복층을 선택했다. 이 모든것은 더 나은 나만을 위한 공간을 위해서였다. 그려왔던대로 가구가 도착하고, 정리를 모두 마치고 누웠던, 독립해서의 첫날밤을 잊을 수 없다. 앞서말한 것과 같이 계속해서 지금도 더 나은 나만을 위한 공간을 꿈꾸고 있다.
불가능에 가까워 지고 있다는 내집장만도 역시 꿈으로 가지고 있다. 원룸에서 투룸, 아파트, 전세 자가. 문뜩 이런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죽기전까지 내집을 장만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또한 나의 만족도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이 나에게는 가장 필요하고 만족스럽다. 비록 계약만료 2개월이 남았다 하더라도. 학창시절 비문학 지문에서 우연히 본 이 글이 떠오른다.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이 제일 소중하다는 것은 작가와 내가 마음이 통한 부분이다. 밑줄쳐 가며 익혔던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속 의미와는 조금 다르겟지만.
[하나도 공지가 없는 이 세상에 어디로 갈까 하던 차에 이런 공지다운 공지를 발견하고 저기 가서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담배나 한 대 피웠으면 하고 나서 또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역시 보험회사가 이윤을 기다리고 있는 건조물인 것을 깨달았다. 다만 이 건조물은 콘크리트로 여러 층을 쌓아 올린 것과 달라 잡초가 우거진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봄이 왔다. 가난한 방안에 왜꼬아리 분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튼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 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 안에 놓인 땅 한군데 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두 다리를 뻗고 누워서 담배를 피우기에는 이 동글납작한 공지는 너무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