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Jul 29. 2024

공부하기 싫어했던 아이

작년에 이어 올해 3월부터 또 '찾아가는 한국어교육'으로 초등학교에서 인도 아이들인 샨드라와 아미르 남매, 어머니가 중국인인 민우를 가르쳤다.


(*찾아가는 한국어교육: 다문화학생들이 많이 있어 '한국어 학급'이 따로 편성된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한국어 강사가 파견 되어 소수의 다문화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


작년과 다른 것은 쓰기를 조금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 한국어 사용에 문제가 없었던 5학년 수민이는 이번에는 한국어 수업을 안 듣는다는 것, 1:2로 가르쳤던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학생들과 시간을 조정해 1:1로만 가르쳤다는 것이다.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샨드라와의 수업은 샨드라의 다른 일정 때문에 수업을 많이 하지 못했다는 것 말고는 수월했다. 공부를 싫어하고 장난을 좋아하는 민우는 어르고 달래며 붙잡고 공부하는 것이 좀 힘들었다. 하지만 세 명 중에서 가장 힘든 수업은 너무 조용하고 학습 의욕이 전혀 없는 아미르의 수업이었다.


"안녕, 아미르!"

"... 네...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하는 나와 다르게, 한국어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의 얼굴은 어둡다. 아미르를 가르친 지 6개월째지만 교실에 들어올 때부터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미르의 표정은 항상 축 쳐져 있다. 수업 중에 게임 이야기를 하거나 재미있는 활동을 할 때는 아주 잠깐 밝아지기도 했으나, 곧바로 원래 상태도 돌아오곤 했다.


한국어 수업을 할 때는 내가 하라고 하는 것을 하기는 하지만,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목소리도 항상 작고 힘이 없다. 설명을 할 때는 그저 멍하니 책을 바라보고, 내가 이해했냐고 물어보면 이해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문법 연습을 시켜 보면 계속 틀린다. 틀려도 왜 틀렸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시키는 것만 하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내가 질문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축 쳐져 있는다. 배운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해도 대답은 항상 비슷하다. 예를 들면, '방학'에 대해 공부했을 때....


"아미르는 겨울 방학 때 뭐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요."

"인도에 갔다 오지 않았어?"

"네. 갔다 왔어요."

"인도에서 뭐 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아무것도 안 했어요."

"... 그럼 이번 겨울 방학 때 뭐 하고 싶어?"

"안 하고 싶어요."


학생이 이러면 나는 겉으로는 웃으며 격려하고 어떻게든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만, 속으로는 답답하고 힘들다. 작년에는 그나마 수다쟁이이자 장난꾸러기 한 학년 동생인 민우와 같이 공부해서 수업 분위기가 이렇게 침체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에 민우와 아미르가 수업 때마다 싸워서 떨어뜨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따로 수업을 하게 되어서, 아미르와의 수업이 좀 힘들었다. 약 두 달 동안은 말이다.


어느 날부터 아미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문을 하면 ''아니요'", "안 했어요", "몰라요"만 대답하던 아이가 이제 아주 적극적으로 대답을 한다! 교재의 '다친 경험 읽기' 활동을 마친 후, 아미르의 다친 경험을 말하고 쓰는 활동을 했을 때였다. 전만 같았으면 "아미르는 다친 적이 있어?" 질문하면 "아니요. 없어요."라고 대답했을 텐데, 지금은 달라졌다.


"아미르는 다친 적이 있어?"

"다친 적... 음... 네! 있어요!"

"진짜? 언제, 어떻게 다쳤어?"

"저 지난번에 누나랑 자동차를 탔는데요! 누나가 운전했는데 넘어져서 제가 다쳤어요!"

"자동차? 혹시 자전거 아니야?"

"아, 맞다. 네네 자전거예요. 키키."

"누나가 실수로 넘어졌나 보다. 그래서 어떻게 다쳤어? 피가 났어? 다리가 부러졌어?"

"아~~~ 저 팔 너무 아팠어요. 저 이렇게 넘어져서(팔 쪽으로 넘어지는 시늉). 피 났어요. 많이 났어요."

"아이고, 많이 아팠겠다! 그래서 병원에 갔어?"

"아니요. 병원에는 안 갔어요."

"누나가 아미르한테 사과했지? 어떻게 사과했어?"

"아아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손으로 싹싹 비는 시늉) 이렇게. 키키키키."


수업 시간 내내 조용하고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던 아미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하지만 짐작하는 것은 있다. '그 일'을 시점으로 아미르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어 수업을 시작하고 약 두 달쯤 지났을 때, '취미'에 대해 읽고 말하는 활동을 했다. 역시나 "몰라요.", "없어요."만 반복하는 아이에게 계속 질문하여 '넷플릭스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웬즈데이'를 봤어요."

"그래? 선생님도 넷플릭스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그건 못 들어 봤네. 무슨 내용이야?"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아미르는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웬즈데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한국인 초등학교 3학년 아이도 드라마 내용을 순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게 어려운데, 외국인이고 한국어 실력이 부족한 아이가 얼마나 드라마 내용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호응해 주며 대화를 이끌었다.


"웬즈데이가 학교 수영장에 그... 뭐지... 물고기 있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음... 피가 났어요. 그래서 웬즈데이가 다른 학교에 갔어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물고기를 수영장에 풀어 논 거야?"

"학생들이 동생을 음... 잘 모르겠어요. 동생이 힘들었어요."

"학생들이 동생을 괴롭혔구나. 그래, 그래서 전학 간 학교는 어땠어?"

"친구가 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아 그거 뭐예요? Kidnapping."

"납치? 친구가 납치를 당했어?"

"아 네. 나쁜 사람들 있어요. 웬즈데이는 친한 친구 한 명 있어요. 나쁜 사람들이 웬즈데이를 음... 친구를 납치했어요."


말이 없는 아미르가 이 정도로 말을 하는 것은 <웬즈데이>라는 드라마를 그만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는 집에 가서 넷플릭스로 <웬즈데이>를 찾아봤다. <웬즈데이>는 미국에서 유명했던 만화와 드라마인 '아담스 패밀리'의 딸 '웬즈데이 아담스'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드라마이다. 아담스 패밀리는 오컬트 분위기의 가족인데, 웬즈데이는 매사 무표정에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여자아이이며 환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웬즈데이가 늑대 인간, 흡혈귀, 초능력자, 성격이 이상한 학생 등 별종들만 모인 특수학교 네버모어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웬즈데이>의 내용이다.

   kㄴidnap

웬즈데이 아담스 포스터
웬즈데이 아담스 예고편


아미르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보기 시작한 드라마이지만, 내용이 색다르고 재미있어서 1주일 만에 다 볼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아미르에게 <웬즈데이>를 다 봤다고, 아주 재미있었다고 말하자 아미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진짜 다 봤어요?"

"응! 아미르 덕분에 재미있는 드라마를 알았네? 고마워! 그런데 그거 조금 무서운 장면이 있던데, 괜찮았어?"

"에? 무서운 장면 없는데요~"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선생님은 조금 무서웠는데?"

"에이~ 선생님. 그거는 괜찮아요."

"그렇구나. 그런데 그 드라마에 손만 있는 괴물이 나와서 아담스를 도와주잖아? 그 괴물 이름이 뭐더라...."

"아... 저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안 나요."

"음... 아, 씽! 씽이었다. 그렇지?"

"네! 씽이에요."

"그 괴물을 보면서 선생님도 그런 괴물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친구가 있으면 숙제도 대신해 줄 수 있잖아. 그렇지?"

"이히히히. 맞아요.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한테 가서 안 보이게 이렇게(때리는 시늉) 할 수 있어요."


<웬즈데이>에 나오는 손 괴물 '씽"


<웬즈데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미르의 표정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그날 우리는 <웬즈데이> 줄거리를 쓰고 짧은 감상평을 쓰는 활동을 했다. 이제까지 수업 중에서 아미르가 가장 집중하고 진심으로 잘 쓰고 싶은 듯한 태도를 보인 수업이었다.


그 이후에 아미르는 전보다 태도에 활기가 생겼다. 공부를 싫어하고, 집에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전처럼 축 쳐져서 끝나는 시간만 기다리지는 않았다. 내가 아미르가 쓴 연습 문제 답이 틀렸다고 하면, "어, 왜요?" 라며 왜 틀렸는지 알고 싶어 했고, 쓰기 과제를 하라고 하면 "하... 하기 싫은데"라고 말하면서도 웃으며 열심히 썼다. 가끔은 수업과 관련 없는 수다를 떨려고 하기도 했다. '찾아가는 한국어교육'은 다문화교육지원센터의 예산 문제로 7월에 종료하게 되었는데, 우리 수업은 올해 7월이 마지막이라고 하자 아미르는 아쉽다며,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아미르에게 왜 갑자기 한국어 수업이 좋아졌냐고 직접 물어보지 않아서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웬즈데이>를 통해서 아미르가 내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관심사가 통한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싶다.


교사 한 명이 소수의 학생만 전담해서 보는 것은 이런 장점이 있다. 학생에게 더 집중할 수 있고, 교사와 학생 간의 라포(rapport. 유대감) 형성이 더 쉽고, 학생의 특성을 고려해서 수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찾아가는 한국어교육'이 좋다. 한국어가 어렵고, 학교 생활이 어려운 외국인 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더 세심하게 돌봐줄 수 있으니까. 아쉽게도 내가 있는 지역 '찾아가는 한국어교육'은 예산 문제로 1학기에 조기 종료됐다. 다시 예산을 모아서 2학기에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2학기에는 내가 대학교 한국어 수업이 많아지고 박사 3학기차라 공부할 것도 많을 것 같아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어려울 듯싶다. 아미르가 다른 선생님을 만나도 지금처럼 열심히, 재미있게 한국어를 배웠으면 좋겠는데, 워낙 낯을 가리는 아이라 다른 선생님과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 사진 출처

- 표지 : Pixabay

- 본문 : 드라마 <웬즈데이>

* 동영상 출처 : 유튜브 <웬즈데이> 예고편


* 글에 나오는 아이들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문화 학생이 학교 수업을 따라오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