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심함에서 나온 행동이 누군가에겐 차별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Back!
즐거운 마음에 너무 다가선 것일까?
머쓱하게 살짝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Back! Back!!"
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팔을 휘두르며 내쫓는 동작과 함께, 명령조의 외침이었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난데없이 뒤로 가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내 뒷 차례를 기다리던 노부부의 연신 사과를 받으니, 뭔가 미안한 일을 당한 모양이다.
이곳은 캐나다 밴쿠버의 출입국 관리소.
알래스카 크루즈 승선의 설렘과 기쁨이 불쾌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면, '외국인'과 '북미 거주자'로 나뉘어 수속되는 출입국 관리소에서 '북미 거주자' 라인이 한가해지자 관리 직원이 외국인을 '북미 거주자' 수속 라인으로 보낸 것이 화근. 하필이면 첫 외국인이 나였으니.
"왜 이 사람은 이리가라 하고, 저 사람은 저리 가라 하냐"며 항의하니 라인을 담당 직원의 사과와 함께 '북미 거주자'임이 틀림없는 노부부의 사과까지 덧붙여 돌아왔다.
나의 불쾌함은 이내 당황스러움, 미안함, 고마움 등 복잡적인 마음으로 바뀌었다.
당황스러움은 '지금 차별적인 일을 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됐고, 미안함과 고마움은 관계없는 사람들의 사과에 자연스러운 생겨난 기분이었다.
크루즈 승선을 마칠 때까지 두어 번 더 마주친 그 북미인 노부부는 연신 사과를 계속했으니, 나의 의문은 점점 확신처럼 굳어지게 됐다.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론 차별적인 대우를 받기도 한다. 대놓고 차별하는 부류들은 하수에 속하며, 보통은 그 자리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수들의 차별법은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해맑게 있다 뒤늦게 한국에 돌아와 깨닫고 불쾌해지는 경우이다.
사실 출입국 관리소에서 생긴 이 작은 에피소드는 깐깐하게 일하는 원칙주의자의 업무였을 수도, 차별적인 대응이었을 수도, 아침부터 심사가 꼬였던 공무원의 트집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갑자기 이 에피소드가 생각난 이유는 한국여행을 준비하는 외국인들의 커뮤니티에서 읽은 한 외국인 여성의 하소연 때문이었다. 스스로 본인을 고도비만이라 칭한 그녀의 장문의 글은 한국에 여행 오게 돼서 얼마나 신났었는지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내용은 '이런 일이 정말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싶을 정도의 일이었다.
한국 여행 중 지하철을 이용했던 그녀는 한 무리의 십 대의 비웃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게 됐다. 그녀의 시야엔 한 무리의 (동양인) 십 대들과 그녀를 향해 계속 촬영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휴대폰이 함께 들어왔다. 고도비만의 그녀를 대놓고 촬영하며 비웃는 그들 때문에 부끄러워 재빨리 지하철에서 내렸다며 비극적인 한국 여행의 경험을 공유하는 글이었는데, 그 글을 읽는 동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행 중에 그런 일을 당했다니 위로해주고 싶었고, 특히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차별'이라는 단어는 쉽게 '인종'이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된다. 하지만 인종, 성별, 체격, 직업, 학력, 성향, 국적 등에 차이를 두어 구별하여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모든 차별적인 행동은 주의해야 한다. 나의 무심함에서 나온 행동이 누군가에겐 차별적인 행동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