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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라씨 Jul 27. 2023

크루즈 한 달 살기,이번엔 아이슬란드+영국!엄마랑함께

오늘도 우리는 서로 알아간다.

"엄마랑 한 달 여행이라고? 난 절대 못해"

손사래를 치는 친구들을 보니 절로 엄마와 함께했던 지난 여행들이 떠올랐다.


첫 여행이 언제,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도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정이었던 것 같다. 동생과 함께였고 꽤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뒤로 엄마와 단 둘이 다녀온 여행에서는 서로의 감정 골만 깊어져 "다시는 엄마랑 여행 안 가!"라며 한 달 가까이 대화 없이 지내기도 했다. 발단은 쇼핑부터 간식거리, 일행들과 어울리는 일까지 모든 행동에 대한 조언을 넘어선 통제권을 행사하는 엄마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해외에 단 둘이 나왔는데, "내 자식 =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서른이 넘은 딸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같이 다닐수록 점점 사이가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계속됐던 이유는 '싱글 룸차지'.


당시 아빠는 주로 해외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엄마 홀로 여행하시기엔 해외 패키지여행이 적격이었는데, 몇 번을 모르는 사람과 조인하여 방을 쓰다 보니 여행 내내 고행이셨다고 한다. 대안이 별도로 방을 잡는 것인데, 패키지여행 특성상 혼자 방을 쓰게 되면 '싱글 룸 차지'라는 추가 비용이 일정이 길어질수록, 특수 지역일수록 꽤 금액이 높아지기도 했다.

"엄마 또 저랑 여행 가고 싶으세요?"


다음 여행을 제안하는 엄마에게 나온 첫 한 마디. 매번 반복되는 여행 패턴에 지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여행을 제안하는 엄마가 의아했다. 최근 다녀온 인도 여행에서의 앙금도 안 풀린 상태였는데.


"싱글 룸 차지가 너무 아깝잖아. 그 비용을 차라리 너한테 줄게"

그렇게 또 우리는 길을 떠났다. 모세의 출애굽 여정을 따라가는 성지순례를.


'이집트 -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베들레헴) - 요르단'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는데, 비종교인인 내가 선뜻 함께 동행한 이유는 오로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의 배경이 된 '요르단 페트라' 이곳 하나뿐이었다.

(출처 : stock.adobe.com)


붉은 바위산의 협곡의 끝 지점에서 조금씩 등장하는 알카즈네 신전으로 향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내용보다 페트라의 장엄한 모습에 압도되어 수십 년간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곳이기도 했다.



내가 이 여행에서 간과했던 건 '성지순례'
전국에서 모인 신앙심 깊은 동행인들과 함께하는 열흘이 넘는 일정. 심지어 목사님도 두 분이나 계셨다. 이 여행은 매일매일 수없이 많은 교회를 방문하고, 이동하는 버스에서는 목사님의 성경말씀과 찬송이 함께하는 투어였다. 하필이면 페트라는 제일 마지막 일정.


결국 삼일 만에 거의 울다시피 아빠한테 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괴로운 여행은 처음이며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딸의 투정에 아빠의 신사적인 회신이 왔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는 건 어때? 성지순례를 소망으로 오랜 기간 저축해서 온 사람들일 텐데, 그곳에 가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지 조금 너그럽게 이해해 줬으면 좋겠구나.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말씀 듣고 괴로웠던 시간들이 아빠 말씀처럼 그 마음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니 그전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아직도 성지순례 여행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가지 말라고 조심스럽게 조언하고 있다.)

엄마와 함께 한 지난 여행들을 떠올려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도 이렇게 즐겁게 여행 다닌 지 얼마 안돼'

이번 여행의 시작은 엄마의 소멸예정 항공 마일리지.

4만이 넘는 마일리지가 올해 소멸 예정이었고, 동남아 왕복 혹은 미주, 대양주, 유럽 편도 항공권을 이용할 수 있는 꽤 큰 마일리지였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 때문에 해외여행은 생각조차 않고 계셨는데, 마일리지 사용을 핑계로 수년만에 해외여행을 결심하시게 됐다.

"너 때문에 난 영국일주 못 해봤다."

수년 전 영국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자유여행을 계획하던 때 동행을 거절했던걸 아직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미 그 해 몇 차례나 함께 여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에게 한이 되지 않게 이번 여행은 영국일주를 목표로!  

이렇게 탄생한 여행의 컨셉

'오로지 엄마만을 위한 여행'

어쩜 기가 막히게도 원하는 일정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까지 영국을 일주하는 '12 Night British Isles Cruise'를 발견했는데, 이 크루즈 노선이 아주 흥미로웠다.

미국에서 출발 대서양을 건넌 후 첫 번째 항차는 노르웨이 피요르드, 두 번째 항차는 아이슬란드+스코틀랜드 그리고 세 번째 항차가 영국일주. 잘하면 3번의 크루즈를 연속해서 탈 수 있겠는데?

(출처 : https://www.royalcaribbean.com)


"난 그 작은 배 한 달 넘게 타고 싶지 않아"

이 크루즈 선박은 로열캐리비안 크루즈 선사의 주웰호 Jewel of the Seas로 9만 톤급의 소형 크루즈 선박이다. (현재 최대 크루즈는 23만 톤)  

크루즈 선박의 규모에 따라 내부 시설이나 액티비티가 차이 날 수밖에 없는데, 단칼에 거절하는 동생의 뜻에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 항차와 '영국일주' 항차를 예약했다.

(엄마 브리핑용으로 만든 문서, 자세한 후기 올릴때 함께 올릴게요)



동일한 크루즈를 연속해서 승선하는걸 백투백 'Back to Back(B2B)'이라고 하는데, 크루즈 환승쯤 되겠다. 놀랍게도 이 크루즈에서 미국에서 여행을 시작한 여행객들이 꽤 많았던 것. 4번의 크루즈를 연속으로 이용했으니 'B2B2B2B' 가 되겠네.

노르웨이 +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 크루즈 백투백 승객은 200명이 넘었고,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 + 영국일주 크루즈의 백투백 승객은 150명 정도 된다고 하니
총 승선객 2,702명 규모의 주웰호의 약 10%는 백투백 승객.

크루즈 생활은 '항차' 단위로 설계되는데, 이는 식당, 쇼, 액티비티 등 모든 크루즈 생활이 항차 단위로 운영된다. 백투백 크루즈의 단점(우리에게 장점)은 이 동일한 메뉴, 동일한 쇼, 동일한 액티비티 등 중복되는 스케줄에 보다 여유롭게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오로지 엄마만을 위한 여행'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 자체!
크루즈를 승선하는 항구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는데, '쾨켄호프 튤립축제' 기간이랑 딱 맞았는지!!

어쩜 크루즈 일정 중 '어머니날'이 있었는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었던 다이나믹한 5월의 유럽 날씨도 환상적이었고, 웅장한 자연의 그 모습 자체, 유구한 역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기항지도 환상적이었다. 지난 4년간 우리 가족에게 닥쳤던 괴롭고 힘든 시간들이 약간 위로받는 느낌.

"너무 행복하다"
연신 행복함을 느끼고 표현하시는 소녀 같은 엄마를 보니, 그 모습에 더 행복해지고 자식 된 도리로 뿌듯함도 느껴졌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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