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ema Jul 05. 2023

들라크루아 일기_18220905

9월 5일 목요일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형과 사냥을 나갔다. 나는 몸을 돌리며 메추라기를 쏘았고, 그 모습에 형은 찬사를 보냈다. 그것은 토끼를 향해 쏜 세 발의 총격을 실패하고 사냥에서 건진 유일한 소산이었다.*

저녁에 우리는 내 셔츠를 수선해주러 오는 리제뜨 양을 마중 나갔다. 그녀가 조금 뒤쳐져 오기에 나는 다가가서 입을 맞췄다. 그녀는 저항을 했고, 진심으로 싫어하는 모습에 나는 고통스러웠다. 그녀를 한 번 더 마주쳤을 때 나는 또 입을 맞췄다. 리제뜨는 만약 자신이 원했다면 바로 나에게 말하지 않았겠냐며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괴로운 마음으로 그녀를 밀쳐냈고,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골목길을 한두 바퀴 돌았다. 리제뜨와 다시 마주쳤다. 저녁식사를 위해 물을 긷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풀고 싶지도, 그쪽으로 다가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또 다시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저를 사랑하지 않는단 말인가요?” “안 한다고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시나요?” “저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요.” 이 말도 안 되는 대답은 그만 좀 하라는 의미였다. 이쯤 되자 나는 화가 나서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고 등을 돌려버렸다, 상처 받고 우울해진 채. 그녀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그건 진짜 웃음이 아니었다. 반쯤은 진심이 담긴 저항의 흔적일 뿐이었다. 게다가 가증스러워 하는 게 느껴졌으니! 나는 그녀를 못 본 척 하며 골목길로 접어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다시는 그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사랑에 빠진 건 아닌데도 나는 그녀가 후회하기를 바랄 정도로 분개해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분한 마음을 풀고 싶다. 원래는 내일 그녀가 세탁하는 모습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이 욕망을 따라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 것도 끝나지 않게 되는데, 나는 과연 그 짓을 반복할 만큼 어리숙한가? 그게 아니길 바라고 바랄 뿐이다.


━ 형과 늦게까지 담소를 나눴다.

로끄베르 군함의 함장에 대한 일화로, 사지가 잘린 자신을 판자에 못질을 해서 바다에 던지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는 알려져야 하며 그의 아름다운 이름은 망각의 늪에서 건져져야 한다.


━ 어제 4일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엊그제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일기를 쓸 때 어머니의 영혼이 나와 함께 하시기를. 그리고 아들의 일기에 어머니가 얼굴 붉히는 일이 없기를!



* 프) 혈기왕성했던 들라크루아는 무엇보다 사냥에 빠져 있었다. “나는 사냥을 하는 게 참 좋아. 사냥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오면 내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하고, 나는 전장에서 앞으로 돌진해 살육에 뛰어드는 것처럼 열의를 가지고 어쩔 줄 모르는 먹잇감을 쫓아가지……. 새끼 새 한마리가 떨어지는 것만 봐도 우리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난 듯 흥분하고 승리감에 도취된다네.” 하지만 이 열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다음 해(1819년),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정말이지 사냥은 나랑 안 맞아……. 무거운 총을 들고 이리저리 다녀야 하고 가시덤불 지나다니는 것도 성가셔……. 이것은 마치 끝나지 않는 시간 동안 사냥꺼리를 찾아다니는 것에 정신을 쏟고 다니는 것에 불과해.” 하지만 사냥에 시들해졌다고 해도 예술가로서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여기에도 보상이 있긴 하지. 기회를 잡을 수 있거든. 더럽고 포석이 깔린 도시에 있는 대신 떠오르는 해, 나무와 꽃, 아름다운 벌판을 볼 수 있으니.” (들라크루아의 편지 17쪽과 40쪽)   

** 프) 샤를 들라크루아의 아내 빅투와르 외벤은 고급 가구 세공인이었던 장 프랑수아 외벤의 딸이었다. 그는 지난 세기 다양한 상품을 많이 판매한 유명인사였다. 

   외젠 들라크루아는 고작 열다섯의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가 어머니에 대해 언급할 때는 오직 다정함과 효성이 담긴 동경심만이 드러났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 나 때문에 고통 받은 것, 나에게 주시던 다정함을 다 갚아드리지도 못했는데.” (들라크루아의 편지 46쪽)

   영) 들라크루아의 어머니 빅투와르 외벤은 유명한 가구 제작자인 외벤의 딸이었다. 그녀는 1814년 9월 3일에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작가의 이전글 들라크루아 일기_182209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