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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ma Oct 10. 2023

들라크루아의 일기_18221008

10월 8일 화요일

에두아르가 나에게 말하기를, 아뜰리에가 두 곳 있는 집을 찾았는데 우리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침울한 동네에서 하루를 보냈다. 우울함이 나를 온통 적셨다. 

저녁에는 삐에르를 만났고, 그의 집에 있는 예쁜 하녀의 매력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과거에 무언가를 거부했다는 이유 하나로, 현재 그것이 다시 나타났을 때 꼭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전에 유용함을 찾지 못했던 책이라도, 더 경험이 쌓인 눈으로 보면 교훈을 얻게 되리라. 

나 자신이 그랬다기보다는 내 정력이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은 것 같다. 나는 위대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팔을 부는 전령사가 될 것이다. 

내 몸에 있는, 종종 나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무언가가 자주 원기를 북돋워준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내적 영향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영향력은 다른 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왕성하다고 느껴진다. 그게 없다면 나는 무너지겠지만……, 그것은 나를 소진시킬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를 지배하고 이끌어주는 상상력에 관한 것이다.)


자신에게서 결함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숨기는 대신, 그 부분에서 자신의 역할을 줄이고 돌려 말하지 말며, 그것을 고치라. 영혼이 겨루는 대상이 오직 신체밖에 없었더라면! 하지만 영혼에는 악한 성향도 있기에,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신성한 한 조각의 영혼은 쉼 없이 싸워야만 한다. 육체의 열정이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나 악의를 담은 영혼의 열정은 진정한 병폐와도 같다. 질투 같은 것이 거기에 속한다. 비겁함은 너무나 저열한 것이어서, 몸과 영혼 양쪽에 모두 가담한다.


나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을 때, 단 한 줄의 생각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더군!…… 어찌나 단순들 한지! 그들은 그림에 있는 그 모든 이점을 제거한다. 작가는 이해받기 위해서 거의 모든 걸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림에서는, 그 안에 있는 사람과 그걸 보는 사람 사이에 마치 신비한 다리 같은 게 생긴다. 관찰자는 외적인 경관의 형상을 보지만,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진 진정한 속내를 생각하며 은밀히 명상에 잠긴다. 몇몇 사람들은 글을 쓰며 그 생각에 요지를 주려고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 정수는 미묘하게 변질된다. 그리하여 상스러운 사람들의 마음은 음악가나 화가보다 작가에 의해 더 많이 흔들린다. 화가의 예술은 물질적으로 보일수록 더욱 인간의 마음에 가깝게 다가간다. 왜냐하면 외부 자연과 마찬가지로, 그림에는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이 명료하게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것이란 다시 말해, 감각으로만 표현된 대상 안에서 영혼이 내적으로 동요되게 만드는 것이다. 



*1820년 경, 들라크루아는 현재의 바렌느 거리인 쁠랑쉬 거리 22번지에 자신의 아뜰리에를 만든다. 그는 1823년까지 이곳에 있다가 야콥 거리로 거처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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