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유진 <엄마의 어휘력>
나는 평소에 짜증 나고 화날 때 혼자 구시렁거리는 스타일인데 엄마가 되고 나서도 변함이 없어 문제다. 하루는 또 무엇 때문에 화가 나서 혼자 구시렁구시렁, 옆에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엄마 왜 화났어? 말해봐~~~" 자신이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말해보라는 어투로 내게 이야기하는 아이. 그 순간 부끄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한때 아이에게 늘 밝은 모습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바로 깨닫고 포기했다. 엄마인데 벌써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민망할 때가 많지만 엄마도 사람이니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이게에 인식시켜 주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며 자기 합리화했다. 특히 오래오래 하루종일 같이 있으려면 이게 최선인 것 같다.
따라 하고 싶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두 달 넘게 오래오래 읽었던 <엄마의 어휘력>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아이에게 감정을 숨기고 어른다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른이 불안해하면 아이는 더 큰 불안을 느낄 거라고. 하지만 불안을 숨기느라 아이의 마음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한 단어 한 단어 엄마의 감정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자. 그러면 아이도 엄마의 감정을 수용한다. 그리고 반가워한다. 아, 엄마도 나와 같구나. 화를 낼 수 있는 거구나. 슬퍼할 수도 있는 거구나. 기쁨은 저렇게 표현하는 거구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를 엄마의 감정 표현을 통해 아이는 배운다.
나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스스로 잘 인지하고, 또 건강하게 수습할 수도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아이 앞에서는 부정적 감정을 숨기고 긍정적 감정만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수용하자. 그렇게 튼튼한 마음을 만들자. 그래야 아이의 다양한 감정도 건강하게 지켜 줄 수 있다.
p.203-204
엄마도 사람이기에 부정적인 감정은 수시로 들쑥날쑥한다. 가능한 이성적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무척 힘들기에... 짜증 또는 화를 내게 되었을 때 사과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매번 내가 진심으로 사과할 때마다 "응, 용서해 줄게"라고 쿨하게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정말 육아(育儿)는 육아(育我)라는 걸 실감한다.
아이와 나눈 말들을 떠올려 보면 그 말들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손과 발을 주무르면 그 촉감에 내 기분도 좋았고, 아이를 안아주면 나 역시 따뜻했다. 아이와 자연을 보며 나누는 대화들은 바쁜 도시의 일상에 갑갑한 나에게는 휴식이었고,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만들어 내는 말들은 지친 내 마음에도 약이 되었다. 아이를 위해 들려주었다. 생각한 말들이 더 큰 힘이 되고 치유가 되어 내가 돌아왔다. (p.296)
너무 힘들지만 흥도 많고 정말 밝은 우리 아이,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다. 부디 지금처럼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