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네요.
"지금 뭐하냐? 나, 너네 동네인데, 맥주 한잔 할까?"
시간이 떴다. 무려 2시간이나.
토요일인 오늘 나의 일정은 12시에 대학 동기 점심 모임, 5시에 회사 동료와 커피 회동, 그리고 8시에 고등학교 동창 저녁 모임. 그런데 대학 동기 모임이 생각보다 빨리 3시에 끝나버린 게 아닌가. 난 이 자투리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한 친구 녀석을 급히 불러낸다. 그리고는 다음 약속 시간까지 그 친구와 맥주를 몇 캔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결혼 전까지 내 주말은 대강 이런 모습이었다. 보통 하루 3개 이상의 모임을 소화하면서, 친구들을 만나 어울려 놀아야만 주말을 보낸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주변의 친구들은 내가 급히 불러낼 때마다, "너 또, 다른 약속 가기 전에 잠깐 시간 뜬 거지?ㅋㅋ"라고 핀잔을 주며 나오곤 할 정도였으니.
이렇듯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는 강박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일요일 저녁만큼은 아무 약속을 안 잡고 혼자 사는 원룸에 일찍 가서 쉬었다. 본가는 서울이었지만, 주중에는 수원에 있는 회사 앞 원룸에서 혼자 지냈던 나는, 처음에 원룸을 찾을 때 일부러 번화가가 아닌 쪽으로 골랐다. 크고 작은 공장들만 있던 집 주변은 편의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식당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과, 평일 퇴근 후의 나의 일과는 마치 속세를 떠나 도 닦는 것과 같이, 고요하고 무료한 시간이었다. 그저 원룸에 들어오면, 홀로 맥주를 마시며, 내 삶에 대해 돌아보는 은둔의 철학자(?) 같은 생활이었다. 회사에서 내가 뭘 했는지 돌아보며, '좀 더, 말조심할 걸.', '이 일은 이렇게 해 볼 걸.' 하는 생산적인 생각도 해보고, 지난 주말에 만났던 친구들과의 모임들을 떠올리며 '이번 주에는 이걸 해봐야지.'라는 파티 계획도 세워보기도 하면서, 적적한 시간을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보내곤 했다. 지금 돌아보건대, 이 자발적인 칩거의 시간과 공간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 많은 모임과 인연들을 만들고 또 잘 끌어 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돌아보며 혼자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주말의 바쁜 스케줄과 인간관계를 잘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사람들을 만나야만 에너지가 생기는 나도, 나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No Meeting!
'난 이 시간에 회의 못합니다!' 선언을 땅땅땅. 매주 월요일 오전과 금요일 오후는, 우리 팀에서 자체적으로 정한 회의가 없는 시간이다. 구글 스케줄에 아예 그 시간대는 'No Meeting Block'이라는 타이틀로 막아두어 다른 회의를 못 잡도록 사내에 알림을 해두었는데, 팀원들과의 많은 협의 끝에, 한 주간의 업무를 준비하는 월요일 오전 시간대와 정리하는 금요일 오후 시간대를 No meeting 시간으로 정했다. 온갖 부서, 국가와 매주 진행하는 주간 회의뿐 아니라, 스팟성으로 긴급하게 진행하는 회의도 워낙 많다 보니, 이렇게라도 강제하지 않으면, 생각이란 것을 아예 할 틈이 없어 만들어낸 해결 방안이다.
회의하다 하루가 다 가버리고, 야근 좀 해줘야 내 업무를 그제야 볼까 말까 하다는 이야기가,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흔히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이 수많은 회의 중에 정말 의미가 있는, 꼭 해야만 했던 회의가 어느 정도 될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회의가 한참 진행이 되고 있는데 '그런데 오늘 우리 왜 모인 거죠?'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왜 모이는지도 모르고 모인 회의라니! 수많은 회의에 허덕대면서 준비가 안된 채 끌려가듯 들어가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이런 회의는 백날 해도 도움이 안 되고, '나 좀 모자란 친구예요. 미안해요.'라는 커밍아웃을 해야 되는 슬픈 일이 벌어질 리스크까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지만, 어쩌다가 저런 커밍아웃을 함께 자주 일하는 동료에게 했다면? 그 이후 벌어질, 나에 대한 평판과 신뢰도의 수직낙하는 상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사실 팀을 옮기고 얼마 안 되어 프로젝트 리드였던 미국의 임원과 1대 1 미팅을 한 적이 있는데, 계속 회의가 이어지는 타이트한 일정에 제대로 준비 못하고 들어가서 초보적인 용어도 몰라서 헤맨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가 친절한 미소와 함께 매우 난감해하던 그 미묘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뭐 이런 모자란 친구가 나의 황금 같은 시간을 야금야금 좀먹고 있는 걸까. 대놓고 짜증내면 울 것 같으니 친절한 표정으로 나의 분노를 표출하자.'같은 느낌(물론 나의 망상이다). 그 뒤로, 그녀와 팀 동료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쏟았던 노력은 그날 내가 한 실수의 몇 곱절은 될 것 같다. 이때의 강렬한 그녀의 표정은 꿈에도 나오곤 했는데(정말이다),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내가 준비가 안된 채 업무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온전히 나의 업무와 미션에 집중해서, 한주의 시작과 마무리를 정돈하는 시간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 'No Meeting' 시간 덕분에 나는 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내 Agenda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이 시간을 통해 내가 꼭 해야 할 일들과 꼭 참석해야 할 회의, 꼭 설득해야 할 이야기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다행히도, 그 미묘한 표정은 안 보게 되었다.
"너 또 어디에서 짱 박혀 있었어?"
이곳저곳에서 종종 들은 이야기. 그렇다. 난 소위 말하는 '짱 박히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놀 때 이야기이고, 일하고 공부할 때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 난 공부를 책상에서 안 하고, 침대에서 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책상을 안 사주신 건 아니고...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시험공부할 때, 침대에 엎드려 문제집을 펴서 보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에 둘러 쌓여 정자세로 일하는 게, 상당한 고역이었다. 그래서 삼성에서도 난 집중력이 특별히 필요한 일을 할 때는, 가능한 사람이 적은 조용한 공간을 찾아가곤 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바짝 집중해서 일한 뒤 자리로 돌아오면, 일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자리를 한동안 비웠다는 사실에, 누가 뭐라 안 해도 괜스레 혼자 눈치를 슬쩍 보곤 했었다. 그러고 나서 들어오게 된 구글은 이런 내게 어쩌면 이상적인 곳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구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여기저기서 자유롭게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휴게실이나 벤치 같은 곳에서 반쯤 누워 배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하는 직원들도 있고, 오피스 안에 있는 러닝머신(aka 트레드밀) 위에서 걸으면서 일하기도 한다. '읭? 러닝머신 위에서 어떻게 일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사내의 러닝머신에는 노트북을 놓을 수 있는 거치대가 있어서, 운동하면서 동시에 메일을 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것이 미덕이고 당연한 곳에서 일해왔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주의가 산만하며...' 내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종종 나왔던 문구인데, 난 어렸을 때, 이게 좋은 말인 줄 알았다. 산만하다고 하니, '산처럼 듬직하고 굳건하다는 의미이구나!'라는 창의력 대장 같은 해석을 했던 것인데, 부끄럽게도 진짜 의미를 알게 된 건 상당히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만큼 난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고 관심 둘 곳이 너무 많아 정신없으면서 즐거웠었다. 문제는 업무나 공부할 때인데, 역시나 구글에 와서도 변함없이,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집중이 쉽게 흐트러졌다. 그래서 엣지 있는 구글러로 빙의하여, 식사 시간이 지나 조용해진 구내식당의 한 구석에서 업무 메일을 쓰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게임룸에서 발표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일을 하자 일의 속도가 더 빨리 진척되었고 이는 곧 업무 효율로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주변에 사람이 많은 원래 자리에서 자료를 읽을 때는 희한하게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고 하다가 겨우 뒷장으로 넘어가도, 앞 내용이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돌아와서 읽는 일도 종종 있는데 반해, 내가 집중이 잘 되는 곳에서는 막힘 없이 술술 읽는 놀라운 경험을 하곤 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각각의 환경은 다를 순 있지만, 나에게 맞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일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메리트이다. 따라서 내가 어떤 환경에서 최대의 효율을 내는지 이해하고, 가능한 그런 곳에서 일하는 것은 나의 시간을 아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야, 난 여기서 도저히 안 되겠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시험공부를 하면, 널찍한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왜 그런 곳 있지 않나. 긴 책상에 칸막이 없이 다닥다닥 앉아서 적당히 옆사람, 앞사람과 공간 셰어 하는. 그런 곳에서는 고개를 들면 앞으로 수백 명이 앉아있고, 뒤로 돌아도 마찬가지였다. 주의가 '듬직하고 굳건한' 나로서는 도무지 효율을 낼 수 없는 곳이었다. 도서관에서 내가 선호하는 곳은 따로 있었는데, 열람실이 아닌 자료실이었다. 책장이 빽빽하게 겹겹으로 늘어져 있어서, 무협영화에 나오는 자객들이 곳곳에 매복한 대나무 숲 같은, 바로 그런 곳. 그곳에 가면 창가에 뜨문뜨문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저녁엔 친구들하고 항상 어울려 놀러 다녔지만, 낮에는 그곳에 가끔 들러 나만의 시간을 갖고는 했다.
그런데 꼭 나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업무를 위해서든, 인생을 위해서든 나만의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필요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알고, 목표를 점검해가며 달리는 사람을 그냥 무작정 생각 없이 달리는 사람이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저 눈앞에 닥친 일들을 고민할 틈 없이 허덕이면서 수습하면서 살다 보면, 내일도 모레도 그 모습 그대로 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면, 내일 그리고 모레는 오늘보다 조금은 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전 직장에서 내가 나를 돌아보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그날그날 닥친 일을 처리하는 데에만 급급했다면, 유학을 하고, 이직을 하고,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지금의 새로운 인생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주변의 소음에서 벗어나 나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하는 그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표제 사진 출처: pixabay.com/photos/library-study-alone-reading-male-241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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