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구간 (4.13)
무파로를 관덕정 분식 주차장에 두고 택시로 광령1리 사무소로 가서 오전 9시 40분부터 걷기를 시작하였다. 제주시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제주시에서 중문 관광단지로 이어지는 간선도로 평화로를 만난다. 제주도에서 제일 교통량이 많은 도로답게 차가 가득 지나간다.
평화로를 잠시 따라가다가 무수천을 만나 도로를 버리고 한적한 숲길로 들어선다. 무수천을 따라가는 길은 제주시가 아닌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다. 어제 내린 비로 건천인 무수천에 물이 제법 많이 흐른다. 개천을 건너는 길이 물에 잠겨 건널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이리저리 건널 곳을 찾다가 포기하고 돌아 나와 우회로를 찾았다.
이 길은 외도동 마을길을 지나 월대까지 이어 진다. 월대는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바닷물과 만나는 곳이다. 수백 년 된 팽나무와 소나무가 강가에 늘어서 있어 운치가 있다. 달빛을 감상하던 곳이라 월대라고 한다. 월대를 지나 외도교를 건너면 해안길로 나선다. 내도 알작지 해안이다. 작지는 자갈의 제주 방언으로 반들반들하게 닳은 검은 자갈이 바닷물에 쓸리면서 소리를 낸다고 해서 알작지 해안이라고 한다.
망망한 바다와 끝없이 밀려와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해안길을 걸으니 시간이란 지극히 짧은 생을 살다가는 우리 사람에게만 중요한 물리적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억 년 동안 저리 있어온 바다와 파도에게 시간이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생각이 단순해진다. 생각이 없어진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저렇게 망망한 바다와 끊임없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그저 터벅거리며 걷는데 열중할 뿐이다.
비워진 머리를 흔들거리며 걷다 보면 이호테우 해변에 닿는다. 이호동의 테우라는 뜻이다. 테우는 작은 목선을 뜻한다. 제주시에서 가깝고 고운 모래와 수심이 얕은 해변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방파제 끝에 말 모양의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있어 젊은이들의 인생 샷을 찍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호테우 해변의 부드러운 모래를 발끝으로 잠시 느끼다 도로에 올라서면 도두 해안에 닿는다. 식당과 펜션이 늘어서 있는 해안도로를 지나면 도두항이다. 항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 도두봉으로 오른다. 높이가 65m인 작은 봉우리지만 해변에 있으니 높아 보인다. 잠시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사방이 확 트인 정상이다. 이곳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어 바다를 배경으로 나무가 우거진 숲의 촬영 포인트에는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사방이 트인 정상에서는 바다는 물론 제주공항과 신제주 시가지가 보인다. 오늘 한라산은 구름에 싸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아쉽다. 도두봉을 내려서 마을을 벗어나면 용두암으로 가는 해변 도로다. 드라이브 코스답게 차들이 많다. 정오가 한참 지난 시간이라 길가 중국식당에서 짬뽕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짬뽕이 자신 있다고 커다란 간판을 내건 집이다. 일상적이 아닌 맛의 짬뽕을 점심으로 먹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 용두암에 닿았다.
용두암이 있는 곳은 용연마을이다. 관광지답게 식당이 해변길에 늘어서 있다. 용두암을 지나니 제주 시가지로 들어선다. 나지막한 집들이 이어지는 골목길이 정겹다. 이리저리 골목길을 돌아 나서면 관덕정이다.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가 있던 곳이다. 관덕정을 지나 다시 골목길을 따라가면 오늘의 마지막 지점인 간세다리 라운지가 있는 관덕정 분식집이다. 걷기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개운하고 먼길을 걸었지만 다리도 가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