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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y 27. 2021

바다와 숲이 조화로운 길

19구간 (4.21)


오늘은 조천 만세동산에서 출발하였다. 거대한 만세 기념탑에 주눅이  정도다. 만세동산을 빠져나가면 해안도로다. 날씨가 흐려 걷기에는 좋지만 바다 색깔은 맑은 날에 비해 푸르름이 덜하다. 해안도로는 관곶을 지나 신흥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관곶은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날씨가 좋은 날에는 추자도가 보인다고 한다.


신흥해수욕장의 넓은 모래밭은 밀물로 인해 완전히 물에 잠겨있다. 1910 세워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개의 방사탑도 물속에 잠겨 상부만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물이 가득한 해수욕장의 해변도로를 따라 옥색의 바다와 수평선을 감상하다가 길을 놓쳤다. 덕분에 해수욕장을 반대편에서 아름다운 해안을 감상하는 행운을 헛걸음에 대한 보상으로 받았다.


오던 길을 되돌아와 신흥리 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아 마을 좌측으로 넘어가니 함덕해수욕장 서쪽 끝이다. 활처럼 휘어진 해변 길은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건물을 숙박시설과 식당, 카페가 차지하고 있다. 해변과 차도를 분리하고 파도가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해변의 벽 위에는 젊은 여성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인생 샷을 위해서 라지만 위험해 보인다.


해수욕장 해변의 한쪽  돌출부에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카페 진입로를 지나면 작은 해수욕장  나오며 모래밭  길이  있다.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이 좋긴 하지만 걷기에는 불편하다. 해변  잔디밭에는 캠핑 나온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있고 그위 주차장에는 캠핑카도 여러  주차해 있다.


해변을 지나 망오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서우봉을 오른다. 여느 오름과 마찬가지로 잠시  흘려 오르면 제주의 푸른 바다와 설문대 할망이 누워있는 한라산의 경관에 감격하게 된다. 제주 바닷가의 오름은 어디서나 둥그스런 수평선과 해안 풍경 그리고 한라산이 있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길은 서우봉 정상 초입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북촌리로 가는 길이다. 느릿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 나지막하게 바다에 떠있는 다려도가 보인다. 북촌리는 4.3 사건의 상처가 깊은 곳이다. 군인 2명이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죽자 토벌대는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학살된 주민의 숫자가 4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마을에는 일층 콘크리트 건물의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앞에 당시에 학살된 아이들의 돌무덤이 있다. 가슴 아픈 기억이다. 4.3 기념관과 위령비를 지나 북촌포구에 서면 다려도가 코앞에 있다. 무인도지만 팔각정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4.3 사건 때는 일부 주민들이 이 섬으로 피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려도를 마주하고 있는 카페에서 옥색 바다를 앞에 두고 빵과 차로 점심 요기를 했다. 근처에 식당이 없으니 빵이나마 점심 요기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이 집이 빵으로 소문난 맛집이라는 걸 후에 관광안내책자를 보고 알았다. 카페를 나서 중산간으로  길을 따라 동복리로 향했다. 간선도로를 건너 건물  채의 마을을 지나면 동복리 운동장에 닿는다.  속에 만든 축구장이다. 이곳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나면 숲길이 시작된다.


벌러진 동산이라는 간세다리 안내판이 나오고 나무가 우거진 숲길에 들어서면 머리 위에서 도는 풍력발전기의 바람소리가 숲의 고즈넉함을 앗아간다. 이 숲 주위에는 날개 회전 직경이 87미터이고 용량이 2MW인 풍력발전기 15기가 설치되어 있다. 풍력발전기 설치와 유지보수를 위해 시멘트 포장길이 숲을 관통하고 있어 또 한 번 한숨이 나오지만 곧이어 곶자왈 숲길로 들어서니 한낮인데 어두울 정도로 숲이 우거져 아직 자연이 살아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혼자 다니기엔 너무 호젓한 길이다.


곶자왈 숲길과 시멘트 포장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곶자왈을 벗어나니 보리밭과 마늘밭이 사이로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마주치는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걷다가 해안으로 나서면 오늘의 마지막 지점인 김녕 서포구다. 마침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와 바다는 파랗게 빛을 발하며 수평선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올레길 마지막 구간으로 갈수록 발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가라앉아 점점 아쉬움이 커진다. 오늘 길은 전반부는 바다, 후반부는 숲이 잘 조화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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