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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Sep 24. 2023

청운의 추억여행

봉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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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tmcx-xe4p8?feature=shared


“이번 여행은 송이가 주제라네. 송이를 따 보고 맛도 보면 좋지 않겠나.”

폰으로 흘러나오는 석하의 목소리가 차분하지만 다가오는 여행에 기대감이 가득하다.


9월 20일 아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태현이가 몰고 온 승합차에 올랐다. 오는 비는 여행의 기대감에 잔뜩 취해있는 우리들의 기분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한다.

“봉화 송이산에 올라 송이 한번 따 보고 싶어 따라나섰니다.” 조수석에 앉은 태현 집사람의 구수한 영주 억양에 송이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지고 승합차 안의 분위기가 비 내리는 고속도로와는 달리 여행 모드로 들뜬다.

이번 여행에 함께한 주섭이가 걸쭉한 목소리로 보이스 피싱 사기단을 응징하는 무용담이 이어지며 50여 년 전 중학 시절로 돌아가 즐거운 농담과 추억담이 이어지다 보니 금세 단양에 닿아 서원이가 차에 올랐다. 지난 단양여행에서 친구들에게 단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던 서원이는 십수 년 전 단양에 정착하여 지역사회봉사와 동물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눈병으로 눈이 먼 진도견을 십 년 이상 수발들며 키우는 맹견인(?)이다.


승합차가 영주역으로 들어서는데 역 앞 벤치에서 일영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여행에 합류하려고 새벽밥 먹고 부산에서 올라왔다. 일흔의 나이에도 까만 파마머리를 한 그는 영원한 청춘이다.

일영이를 만나 떠드는 사이 진희는 부산에서 타고 온 청량리행 무궁화호에서 내렸다. 플랫폼에 내려서는 그에게 서원이가 환영의 표시로 절을 한다. 서원이와 친구들의 환대에 환한 웃음으로 답하는 진희도 50여 년 세월이 담기긴 했지만 중학 시절의 동안을 그대로 간직한 그 모습이다.


고향을 찾을 때면 꼬불꼬불 치악재나 박달재 그리고 죽령재를 넘던 예전과는 달리 쾌속으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영주에 도착하였고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만났으니 시장기를 해결을 물론 여행에서 빼놓 수 없는 즐거움인 먹거리를 위한 맛집을 찾아야 한다. 영주역 근처의 맛집이라면 단연 명석이네 너른마당이라고 친구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너른마당 주인인 명석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부석태로 만든 청국장과 두부요리가 너른마당의 주 메뉴인데 청국장 정식에 찬으로 나온 두부가 입안에서 쫀득하게 뭉개지며 올라오는 고소한 두부맛이 일품이다. 입에 넣기 전에 살짝 묻힌 간장이 구수함을 더해주는 것은 이곳 영주의 부석태로 만든 두부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냄새가 없는 청국장의 구수함과 함께 나온 나물을 섞어 만든 비빔밥의 맛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고향의 맛이다. 맛있는 요리에는 배경이 있다. 식당 한편에 놓인 명석이 안사람이 받은 청국장 장인 인증서들이 맛이 있는 음식이 한순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영주에서 봉화는 지척간이다. 봉화는 경상북도이지만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으로 공무원들이 발령받기를 꺼리는 BYC(봉화, 영양, 청송)중 한 곳이다. 북에서 남으로 달리던 백두대간이 태백산까지 내려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백산으로 내달린다. 그 남쪽 기슭에 봉화군이 자리하고 있다. 송이는 깊은 백두대간이 춘양목 아래 물기가 잘 빠지는 마사토양에서 자란다. 그래서 봉화 송이는 수분이 적어 쫄깃한 맛과 함께 향이 뛰어나 우리나라에서 최상급 품질의 송이로 알려져 있다.


비가 추적거리는 가운데 봉화 내성천변에는 송이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올해 축제는 9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봉화읍 내성천변과 송이 산지인 송이산에서 열린다. 송이축제에 참가하면 송이를 구매할 수도 있고 직접 송이산에 올라 채취할 수도 있다. 이 기간 중에는 송이뿐만 아니라 봉화에서 생산되는 한우도 맛볼 수 있다. 봉화 사람들은 봉화 한우를 약한우라고 부르며 한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봉화가 고향이며 매년 많은 분량의 송이를 구매하는 석하의 안내로 송이 전문상점 몇 군데를 둘러봤다. 올해 송이는 품질이 좋지만 생산량은 많지 않아 가격이 만만치 않다. 1킬로그램에 1등급이 90만 원, 2등급이 72만 원, 3등급이 56만 원, 4등급이 44만 원, 등외가 32만 원이라고 한다. 껍질 벗긴 바나나 반 개 정도 크기의 1등급 송이 한 개의 가격이 대략 8-9만 원 정도다. 한우 2++급 등심 600그램 한근이 6만 원이라고 하니 한우가격의 8배. 이 정도면 한우를 먹기도 쉽지 않은 보통사람이 선 듯 사 먹을 수 있는 식품은 아닌 듯하다.


1등급 송이의 고고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눈요기만 하고 돌아 서려다가 마침 송이를 판매하러 온 현지인으로부터 등외품 400그램을 10만 원에 흥정하였다. 등외품이라도 판매 가격대로 하면 14만 원 정도인데 이 정도 가격이면 저녁식사 용으로는 아주 제격인 송이를 구한 셈이다. 송이 축제에 왔으니 1등급 송이는 언감생심으로 입맛만 다시기도 어렵지만 모양이 좀 덜한 등외품이긴 하지만 송이맛을 보게 되었으니 송이가게를 안내한 석하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송이가게와 봉화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나서 한우 등심과 부챗살을 넉넉이 사고 된장찌개 거리를 장만하여 춘양면 서벽리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근처에 있는 수목원 펜션으로 갔다. 매번 여행을 기획하는 석하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고향이 봉화이니 특별히 좋은 먹거리와 잠자리를 신경 써서 정했다.


수목원 펜션은 2층 목조건물인데 우리가 통째로 빌렸다. 아래층은 노래방 시설이 갖추어진 넓은 거실과 방 2 그리고 식당이 있고 이층에도 방이 2개가 있어 우리 일행 9명이 쓰기에 충분하고 남는다. 마당 한편에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 고기를 구워 먹기에도 적합하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빗속에서도 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한우를 구워 먹는데 이게 바로 여행의 맛이며 봉화 한우의 맛이다.


사가지고 간 한우 네덩어리 중 세덩어리를 구웠는데 먹는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일영이가

“난 이제 고만 먹을란다, 한우 실컷 먹었다.” 한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도 한우 등심과 부챗살로 어지간히 배를 채운 듯하다. 술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만중이가 술보다 한우를 더 많이 먹은 것 같다. 만중이가 가지고 온 조니워커 블랙 한 병을 다 못 비웠으니 한우로 배를 채웠음에 틀림없다. 만중이가 가면 어디라도 따라가는 만중이 집사람이 살뜰하게 장보기를 챙겼고 태현이 집사람이 준비함 쫀득한 도토리묵과 서원이 집사람이 여행가는 신랑 손에 들려준 배차적(배추전의 사투리)을 더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겼다. 반 덩어리 남은 비싼 한우를 그냥 남길 수 없어 마저 구웠다. 배는 부르지만 역시 숯불에 육즙이 흐르게 미디엄으로 구운 한우 등심은 맛이 있다. 남은 한우 구이로 다음 날 아침 만중이 술안주까지 하였으니 이십몇 만 원어치 소고기로 9명의 친구들이 포식을 했다. 고기로 배를 채웠지만 우리 정서에는 밥이 들어가야 잘 먹었다고 트림이 나온다. 그래서 고기 집에서 얻어온 자투리 고기로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여 햇반을 말아 한 그릇씩 해치웠다. 1박 2일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인 행복한 첫날 저녁 만찬은 제대로 한 셈이다.


배가 부르면 그다음 할 일은 무엇일까.

춘석이가 준 당구대 녹색천으로 석하가 만들어온 고스톱 전용 깔개를 깔고 고스톱 판이 벌어지고 한 켠에서는 노래방 기계를 틀어 흥을 돋운다. 고스톱 팀과 노래방 팀으로 나누어 자유롭게 즐기는 밤시간이다. 즐거운 고스톱과 노래방도 12시까지다. 다음날의 일정을 위하여 늦게까지 노는 건 안된다. 넓은 방 곳곳으로 스며들어 잠을 청하니 백두대간 맑고 청정한 공기 덕분인지 술기운도 없이 금방 꿀잠에 빠져든다.


청량한 아침공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가운데 산책을 나섰다. 수목원 옆길을 따라 한동안 걷다가  아침 식사를 할 식당을 찾아 전화로 주방장 아침잠을 깨워 놓았다. 30여분 산책이 온몸을 가볍게 하고 기분도 상쾌하게 한다. 늦잠을 잔 친구들을 깨워 식당으로 갔다. 시래깃국, 두부찜, 산채나물의 정식에 간고등어를 추가하니 이 또한 여행지의 호사로운 아침식사다.


수목원 정문 근처에는 더 비글스라는 카페가 있다. 이른 시간인데 문을 열고 있어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카페 안주인이 수목원 탐방팀이 주문한 점심식사용 50인분 샌드위치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더 비글스란 카페이름은 비글스라는 품종의 개를 좋아하고 두 아이가 있어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5년 전에 아무 연고가 없는 이곳 서벽리에 정착한 젊은 부부가 경영하는 카페다. 신선한 커피 향이 담긴 카푸치노를 마시며 고객들이 자유롭게 그릴 수 있도록 비치한 스케치북과 색연필로 창밖 풍경을 그렸다. 서원이는 손자 셋을 그리며 다음에 손자를 데리고 이곳에 오겠다고 한다.


어제 내린 많은 비로 송이 채취 체험행사가 취소되었다고 주최 측의 문자 안내를 받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남는 시간은 펜션 주위를 산책하며 보냈다. 여행에서 여유로움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펜션 뒤 산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배추밭과 과수원이 있다. 배추는 속이 차기 시작했고 사과나무는 알이 굵어져 힘겹게 가지를 지탱하고 있지만 과수원 주인은 포만감으로 흐뭇해할 정경이다. 아직 사과 색이 안 올라 수확하려면 20여 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 알뜰한 만중이 안사람이 과수원 바닥에 떨어진 낙과를 하나 주워 껍질을 벗겨 주는데 달콤함은 거의 차 올랐다.


여유로움을 즐기는 여행 식구들을 다그쳐 서벽리에서 지척에 있는 오전 약수터로 향했다. 예전 보부상이 다니던 길이 이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었지만 경사가 급한 백두대간을 옆구리를 굽이굽이 오르내리는데 길가 계곡에는 어제 내린 비로 맑은 물이 시원스럽게 흐른다.

일영이가 근처에 전원주택을 지어 사는 준욱이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했다. 얼떨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준욱이에게 다짜고짜 잠시 후에 들릴 테니 차 한잔 하자고 한다. 오전 약수의 쌉싸래하고 톡 쏘는 물맛을 보고 도착한 준욱이 집은 잘 가꾸어진 전원주택으로 도시인들의 로망이 됨직한 풍경이다. 준욱이와는 50여 년 만의 만남이지만 희끗한 머리 외에는 어릴 때 모습이 그대로 배어난다. 손을 잡아 따스한 온기로 반가움으로 잠시 나누고 나서는데 준욱이 집사람이 때마침 수확한 땅콩을 한 보따리 내어준다. 삶은 땅콩 한 봉지도 함께. 땅콩을 좋아하는 나는 횡재한 기분으로 승합차 뒷자리에서 생땅콩 한 줌과 삶은 땅콩을 까먹었다.


오전 약수탕에서 봉화로 나가는 길 우측에는 물야저수지가 있다. 저수지를 끼고도는 길에는 오래된 벚나무들이 있어 봄이면 벚꽃 나들이를 하기 좋은 드라이브 코스라고 한다.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수량이 많은 저수지를 지나 축서사로 향했다.


축서사는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문수산 해발 800m에 위치한 절로 문수보살이 출현한 곳에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3년 전에 지은 절로 부석사의 큰집이라고 불리는 절이다. 독수리가 산다는 의미의 축서는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며 이는 지혜를 가진 문수보살을 의미하므로 축서사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축서사에는 보물 995호인 비로자나부처님과 목조광배가 있고 보물 1379호 괘불 탱화가 있다. 축서사 대웅전에 올라서니 멀리 소백연봉이 구름에 싸여 있다. 마치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듯 전망이 장쾌하다.


축서사를 나서서 송이의 고장에 왔으니 송이밥을 먹어야 한다며 석하가 안내한 곳은 송이 솥밥정식 집이다. 봉화 송이 맛집으로 요리경연대회에서 여러 번 대상으로 뽑혀 받은 트로피가 전시되어 있다. 정결한 반찬과 함께 나온 뜨거운 돌솥의 뚜껑을 여니 아이들 고추만 한 송이절편이 밥 위에 가지런히 얹혀있다. 나물과 끓인 된장찌개를 넣어 고추장에 비벼 먹으니 송이향이 입안에 가득하다. 함께 주는 송이 차에도 향은 함께 따라다닌다.


어제저녁 한우 구이에 더해 송이 돌솥밥까지 먹었으니 이것보다 더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은 없으리라. 여행은 이런 맛이라고 혼자 중얼거려 본다. 태현이는 승합차를 봉화 읍내 송이 축제장으로 몰았다. 오늘 있어야 했던 송이 채취행사는 취소되었지만 21일 정식 오프닝 행사는 예정대로 열릴 예정이라 축제장이 바쁜 모습이다. 건너편 강변에 설치된 무도장에서 흘러나오는 트롯 가요에 주섭이가 몸을 흔들며 흥을 낸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언제나 젊고 흥이 넘친다.


오후 4시 반 아쉽지만 1박 2일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올라가야 할 시간이다. 석하는 고향에서 하루 더 보내야 하고 일영이도 온 김에 하루 더 놀다 간다고 하여 두 사람을 영주역에 내려주고 중앙고속도로에 올랐다. 올 때나 갈 때나 태현이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집사람과 놀러 다니기 위해 장만한 태현이의 스타리아 승합차가 이번 여행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구수한 목소리에 이웃집 아저씨의 포스를 가진 태현이의 안전한 운전이 즐겁고 행복한 1박 2일의 여행을 만들어 주었다.


김석하, 최태현내외, 서만중내외, 김서원, 정일영, 송주섭, 이종호가 여행을 함께하였고 윤진희, 정명석, 송준욱이는 잠시 만나 반가움을 나누었다.

글은 이종호가 정리하였다.

최태현이 정리한 여행관련 동영상

https://youtu.be/Xtmcx-xe4p8?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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