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티: 내가 매일 혹은 자주 하는 일이 있을까요?
보라: 청소요. 저는 청소를 매일 해요.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살아야 하잖아요.
티: 깨끗한 걸 좋아하시나 봐요.
보라: 적어도 제 주변은 깔끔하게 해 놓아야 해요.
티: 비가 온 뒤, 꼭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비가 온 다음 날 새벽이면 달팽이를 주우러 간대요. 비가 오고 난 뒤에 달팽이들이 다 기어 나와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밟혀 죽잖아요. 그래서 달팽이가 자주 나오는 길목으로 산책을 가는 거예요. 조심스레 주워서 다시 숲 속으로 돌려보내주는 거죠. 그 말을 듣고 좀 놀랐어요.
보라: 전 비 온 뒤에 창틀 청소를 해요. 빗물이 스며 들어서 새까만 먼지가 더 많이 보이거든요. 꼭 닦아 줘야 해요.
티: 대단하시네요. 전 청소하는 게 정말 싫어요. 힘들어서요.
보라: 청소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즐거운데요. 나는 집에서 매일 청소를 해요.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티: 혹시 특별히 좋아하는 계절이 있나요?
보라: 겨울이요. 나는 겨울이 좋아요. 하얀 눈이 내리는 걸 보면 너무 좋아요.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걸 보면 내 마음이 깨끗한 기분이 들거든요.
보라 님은 일상 속 모든 행동과 생각이 깨끗함에 머물러 있었다. 센터에 온 지 이틀 되었는데, 책이 많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책을 빌려서 집에서 본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쓸고 닦은 집에서, 물건이 제자리를 찾은 공간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소설이나 에세이, 뭐든 본다. 책은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에서 나온 말과 생각이 보라 님의 생각을 조금 흩트려 놓았으면 좋겠다. 어질러진 모습에 적응하다 보면 매일 꼭 청소를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약간이나마 느슨해지지 않을까. 헐거움이 필요한 분이었다. 어딘가 매어진 끈을 풀어 주고 싶을 만큼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