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亡)
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분 공모작
망한다 망한다
망한다는 소리만 들린다
이제는 정말 망할 것 같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 속 젊음이
붉은 띠 위에 기름처럼 진득하다
끈적이는 액체가 땀일까 묻지만
망한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열망에 붉게 타오르던 눈동자는
길 고양이 보다 더 퀭하게 되었고
걸음은 비 오는 날을 알게 되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꾸역 넘기는 저녁이 아침인지 모르겠다
마시는 물은 생명수라 불리고
쓰고 아린 몸은 몽롱하게 밤을 부른다
둥글게 도는 것이 보름달인지
밝다 못해 눈부셔 찡그리게 된다
새끼발가락에 치인 빈 병이 구르고
그 뒤를 그림자가 서둘러 쫓아간다
망한다는데 이까짓 뭐 있으랴
그저 지긋이 바라보다
그 끝이 끝내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