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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May 11. 2020

지금 어딜 만지시는 거예요?

조금 수상한 면접관

 


 기차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도착한 곳은 런던에 속한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의 시골이었다. 건물이 바로 눈 앞에 있다고 지도는 분명 말하는데 찾지를 못해서 서너 번은 똑같은 곳을 헤맨 뒤에, 저 컨테이너를 대충 쌓아 만든 듯한 유사 건물 같은 것이 내가 면접장으로 찾아가고 있는 공유 오피스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허허벌판 흙먼지 날리는 곳에서 서서 전화를 하니 대표가 마중을 나왔다. 혼자서는 절대 찾아갈 수 없는 칸칸이 나눠진 방들을 굽이굽이 지나, 내가 합격하게 되면 일하게 될 오피스에 도착하게 되었다. 대표는 곧 넓은 방으로 옮길 테니 양해해달라고 했지만, 사무실은 딱 책상 두 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고 창문이 천장과 가까운 곳에 아주 조그맣게 나있어서 흡사 감옥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얼떨결에 마치 병원에서 진찰을 보듯이 대표 책상 옆편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대표가 먼저 내가 할 일을 소개해줬는데, Marketing Assistant라는 직책은 그저 허울뿐이고 실상은 호텔에 전화를 해서 인재 채용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설득하는 일종의 영업직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나는 한국에서 제휴 업무도 했고, 콜드 콜도 해보면서 영업 관련 경력이 조금이나마 있다고 대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대표가 내 말을 가로막고, 이미 네 이력서는 다 읽어봤다고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대표는 가족은 어디에 사냐라는 관심을 가장한 질문부터, 나이와 애인 여부를 묻는 불법적인 질문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미 너는 합격을 했다면서 기본급은 없지만 성과에 따라 월급을 조금씩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스타벅스 월급보다 많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마음속으로는 이미 거절을 한 상태였지만, 대표는 이미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이 곳에서 부동산을 한다며 사무실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라며 그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소름 끼치는 제안까지 했다.


 인터뷰가 계속 진행될수록 힐끗 쳐다본 철문은 더욱 굳건해 보였고, 다른 직원은 외근을 나갔고 앞으로는 너와 내가 단둘이서 일할 것이라는 말에 소름 끼쳐하던 순간 인터뷰가 끝났다. 다행히 한국에서 단련된 사회생활 능력 덕분에 겉으로는 화기애애하게 면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극적의 탈출 순간에 대표는 뒤에서 내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나를 배웅해주었다.


 사실 이 면접이 첫 사무직 면접은 아니었다. 바로 그 전주에는 런던의 9 존에 있는 마케팅 회사에서 면접을 봤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방문 확인을 하는데, 내 앞뒤로 빽빽하게 15분 단위로 면접자가 20명은 넘게 줄 서있는 묻지 마 면접을 하는 곳이었다. 처음으로 영어 면접을 본 곳이라 대답도 잘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겠다고 괜한 의욕을 부려서 피티를 하는데 긴장이 극도로 돼서 목소리를 덜덜 떨던 나를 면접관이 안쓰럽게 보던 기억이 난다. 집에 와서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기업 후기를 찾아봤는데, 알고 보니 취업이 간절한 사람들을 이용해 영업을 하는 다단계 회사였다. 하지만 이 다단계 회사에서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영국에서 겨우 두 군데 면접을 봤는데 한 군데는 다단계 회사였는데 그나마도 탈락했고, 한 군데는 변태가 운영하는 회사라니 마음이 참 막막해졌다. 마치 내가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아무리 노력해봤자 제대로 된 회사는 들어가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꾸역꾸역 취업 준비를 하면서 몇 주가 흘렀을까, 한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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