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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May 10. 2020

영국에서의 나의 첫 직장, 스타벅스

주문하신 브어닐라 라테이 나왔습니다

 영국에서의 첫 2주는 일자리 걱정 없이 마음껏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꿈에서도 나왔던 트라팔가 스퀘어부터 빅벤까지의 길, 가장 좋아하는 거리에 있던 카페에서 마시는 플랫화이트, 활기가 넘치는 쇼디치 등 2012년 어학연수 시절의 추억들을 마음껏 느끼며 걸었다. 첫 2주는 임시로 호스텔에 머물렀는데 불편한 6인실에서 낯선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선 잠을 자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목표했던 2주가 다가왔을 때 통장에 있는 돈을 계산해보니 이제 더 이상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많은 워홀러가 천만 원 정도를 저축해서 오고 첫 달은 천천히 런던에 적응하면서 일자리를 구하지만, 나는 퇴직금을 받아 준비 비용을 제외하고 300만 원만 달랑 들고 런던에 왔다. 일을 한 달 정도 해야지 월급이 나오니까 첫 달치 월세와 한 달치 보증금을 제외하면 쓸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서도 구직을 하려면 넉넉히 2-3달이 걸리는데, 통장 사정은 나의 최종 목표인 '사무직 취업'을 기다려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영국 내 한국인 페이스북 그룹에서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바리스타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본드 스트리트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스타벅스에서의 일자리를 그저 사무직을 구하기 위해서 거쳐가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했는데, 꼼꼼한 매뉴얼에 따라서 열정적으로 일을 가르쳐주는 파트너들 덕분에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커피를 만들고 컵을 씻을 때 손 위로 쏟아지는 기분 좋은 차가운 물, 이름을 부르며 커피를 건네주면 고맙다며 인사해주는 손님들, 걸레가 지나가면 눈으로 보이는 깨끗한 바닥 등 평생 체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에서 생소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잘못된 걸레를 가져왔다고 F 단어를 쓰며 욕을 하는 파트너나, 마감 청소를 할 때 커피 머신에 알약을 조금 늦게 넣었다고 이마를 짚으며 '여기에 있는 게  뭔지 알아? 뇌야 뇌. 제발 뇌를 좀 써라'라고 인격모독에 가까운 말을 들을 때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워홀 최종 목적지가 이 곳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Reed, Indeed, Linkedin 같은 사이트에서 설정해놓은 키워드별 채용공고를 보고 인턴이든,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가리지 않고 하루에 최소 20곳 정도는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원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런던 외곽에 있는 호텔 마케팅 회사였는데, 당장 오늘 오후에 면접을 왔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경력을 살릴 수 있는 Marketing Assistant라 경력을 살릴 수 있는 포지션이라 좀 더 면접 연습을 하고 싶어서 면접 일정을 다른 날로 잡으려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 방문을 두드릴 사람은 같이 사는 서먹한 한국인 네 명뿐이라서 통화 중이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고 해도, 날 선 문 두드림은 계속됐다. 그래서 통화 중인 상태로 방문 밖을 나가보니 웬 외국인이 서있었다. 경찰처럼 이름과 나이를 묻고 취조하는 질문을 던지길래, 정신이 없어서 면접을 오늘 보러 가겠다고 통화를 마무리해버렸다.


 덕분에 중요한 전화를 방해받게 된 상태라 짜증 나는 얼굴로 그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나에게 언제 입주했는지, 월세는 얼마인지, 누구에게 월세를 지불하는지에 대해서 취조하듯이 무례하게 묻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부동산에서 파견된 사람이었고, 내가 계약한 사람은 집주인이 아니라 이 집을 렌트한 사람이었고, 집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낯선 사람들에게 서브렌트를 내주며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경찰 포스를 풍기던 외국인은 방을 당장 이번 주까지 비워주지 않으면 강제로 쫓아내겠다고 선언하고 사라졌다.


 면접 당일에 갑자기 길에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니, 황당했다. 하지만 마침 그 전날 내 방에서 귀여운 미키마우스가 도도도도 달려가는 모습을 본 지라 이 비위생적인 곳에서 탈출하는 것이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하던 시간도 잠시, 3시간 앞으로 다가온 면접을 보러 가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단기로 머물 곳을 찾느라 면접 울렁증을 느낄 새도 없이 기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서 런던 외곽의 공유 오피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나는 변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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