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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Jul 17. 2020

회사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 때

존버만이 답일까

 나는 첫 사회생활을 혹독하게 시작했다.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전사에 내 평판을 낮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수 때문에 지옥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매일같이 거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화장을 지우고, 화살 같은 피드백 때문에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 번씩 무너지던 시절이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다들 하나같이 그만두라는 말 혹은 사회생활이 그러니 3년만 버티라는 말만 해왔다. 나는 나 혼자로 꾸려진 1인 가정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매달 내야 하는 월세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무턱대고 퇴사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버티기에는 매일같이 자살을 생각하던 내가 너무 불쌍했다.

 그러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고, 나는 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 좋은 팀원들을 만나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서 이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라 진리와 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법칙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하기 쉬운 조언은 "그만두라"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조언을 해준 사람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우리는 성인이기 때문에 본인의 어깨에 달려있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지 사회에 존재할 수 있다. 누구보다 힘든 사람에게는 끔찍하게 들리지만 이것은 잔인한 현실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식상하고도 말하기 쉬운 문장에서 나는 듣기만 해도 끔찍한 "존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존버는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기고 사람들을 극한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다. 이 문장을 통해 나는 그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일반적인 현상을 알려주면서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

나의 첫 상사는 사원 10번 안에 드는 창립 멤버였고, 이 멤버가 없으면 팀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일을 잘하는 멤버였다. 보통은 일을 못하는 상사가 하는 소리는 멍청한 피드백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에게서 듣는 말은 신빙성을 가지고 나를 공격한다. 이 신빙성은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상식을 무너뜨리고 자책으로 사람을 몰고 간다. 바닥이 된 자존감 때문에 이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착하게 되고, 타인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들리지 않게 된다. 하루하루의 기분이 이 사람의 한 마디에 좌지우지되고, 매일같이 말라가는 날이 계속되었다. 평생 이 직장에서 일할 거라는 말을 달고 다는 사람과 나를 비교했을 때, 내가 더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만둬야겠다는 타이밍만 노리던 순간, 이 사람이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나는 새로 꾸려진 팀장과 팀원들과 함께 2년을 더 일할 수 있었다.

영국으로 직장을 옮긴 후, 한국과 같은 직접적인 인격모독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치는 여전히 존재했다. 줄타기는커녕 빈말로도 칭찬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윗 사람들은 너무 어려웠다. 그러던 도중,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우리 본부 헤드로 들어왔다. 헤드는 퍼포먼스를 올리기 위해 피 냄새나는 숙청을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의 일자리가 걸린 큰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나는 너무나 불안했다.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평판과 업적들을 파악하기에 새 헤드는 정보가 없었고, 잠깐 동안의 친목과 개인적인 호감도로 프로젝트 리드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니어는커녕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순간, 헤드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수습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퇴직을 한 것이다.

이 사람은 퇴직은 했지만, 이 사람이 했던 결정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이 결정은 더 높은 곳에서 내려왔고 헤드는 그저 수습 기간을 통과하기 위해서 더 높은 사람의 결정에 쉽게 동의해버린 것이었다. 내가 맡은 시장의 특성 때문에 나는 이 사람과 일할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고, 이 사람은 개인적인 선호로 본인들과 일할 사람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선택에 또 불안이 도지는 순간, 회사에 대들보와 같은 존재여서 이메일조차 보내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었던 그가 퇴직했다.

이 일련의 상황들을 겪으면서 나는 직장 생활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을 덜기 시작했다. 이유는 각각 다르긴 했지만, 회사에서 아무리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내 생각만큼 오래 회사에 머물지 않았다. 이 경험들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회사 내의 이해관계는 변하기 마련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노력이 반드시 승진이나 물질적인 보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했던 노력들이 어느새 내 실력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꾸준함이 만들어 낸 실력은 회사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면 드러나기 마련이고, 아니라 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쌓아온 실력들은 이직할 때 큰 도움이 된다.

보통 직장 생활로 인한 고민과 힘듦은 삶에 대한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삶을 올바르고 가치있게 사는 사람만이 문제점을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물론 이런 일이 없다면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직접 겪어보고 부딪히면서 나에 대해 배워가는 것의 가치는 당장의 안일함과는 비교도 안된다. 오늘도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낼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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