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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다 Feb 03. 2022

영국 회사에서 정치하는 방법

내향인이 대기업 정치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


한국의 대기업은 정치가 심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영국도 똑같았다. 위 헤드가 바뀜에 따라 한 팀이나 부서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은 예사였다. 오히려 한국보다 사람을 자르기는 더 수월해서 해고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봤다. 3년 전, 이전 회사에서 헤드가 바뀌면서 퍼포먼스 마케팅 인하우스 팀을 없애고 에이전시를 고용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에이전시를 쓰면 내부에서 에이전시를 관리할 인원 일부만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부서의 사람들 중 80%가 해고가 될 상황이었다. 취업비자에 묶인 나는 영국에서 바로 추방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몇몇 동료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팀의 80프로가 그만두고서야 피바람이 멈췄다. 그 동료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만두려 했었는데, 딱 한 명을 헤드가 잡았다. 이직할 회사의 연봉을 하루 만에 맞춰주면서 남아달라고 설득을 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우리 팀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뛰어난 스킬을 가진 것도,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직책이 가장 높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헤드의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딱 하나 "정치를 잘해서"였다.


그 동료는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세일즈 일을 했었다. 고객들이 상품을 구매할 때 얻는 커미션이 곧 자신의 수익이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과도 빠르게 친해지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직책이 높은 사람들이 앞에 걸어가면 슬금슬금 걸음을 늦춰 대화를 피하는 반면, 그 친구는 걸음을 더 빠르게 해서 그들과 한마디도 더 해보려고 했다. 새로 온 헤드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회사 상황을 잘 모를 때였는데, 누가 사근사근하게 잘 대해주면 그 사람의 능력과 상관없이 좋게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료의 정치는 그저 높은 사람들과의 스몰 톡을 잘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직책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져서 최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한 예로 이 동료와 같이 점심을 먹을 일이 있었다. 내가 별로 관심 없는 여행 얘기를 길게 하길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충 응응이라고 대답했는데 동료가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민망해서 가끔 나 말을 못 알아 들어도 응이라고 대답한다. (한국어로 들어도 가끔 오는 귀가 먹어서 그럴 때가 많다) 그랬더니 동료가 그러냐며 하하호호 웃으면서 대화를 끝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몇 주 후 새로 온 시니어 매니저와 미팅을 할 때 일어났다. 시니어 매니저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아는 내용이라 건성으로 응응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료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더니 '흰다는 가끔 영어를 못 알아들어도 응이라고 대답할 때가 많아. 그래서 잘 알아듣는지 확인해줘야 해'라고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니어 매니저는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 감이 없었는데, 이 동료의 한마디로 나는 영어를 못하고 배려를 해줘야 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동료한테 매니저 앞에서 이런 부정적인 얘기는 피해 줬으면 한다고 직설적으로 얘기를 해서 잘 풀긴 했지만 이 사건은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이런 극단적인 일 말고도 정치를 못해서 피해를 보는 일이 많았다. 나는 당시에 아직 한국의 직장 생활에 담금질된 예의 바르고 무엇이든 배우길 원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매니저와 같이 커리어 발전 계획을 세울 때 솔직하게 나는 이 부분이 부족하니 한 해 이 부분을 개선하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반면, 동료들은 달랐다. 면담에서 본인이 발전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본인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는지, 자신이 받는 연봉이 얼마나 부당한지, 팀에서 한 명 승진을 시킨다면 내가 되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나보다 경력이나 기술이 부족한 동료가 나 대신 승진 대상자에 오르기도 했었다. 현실로는 내 메신저가 하루 종일 불타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들 매니저가 시킨 일에 자신 있다고 대답하고 뒤로는 몰라서 나한테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런 동료들을 몰래 뒤에서 도와줘야 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난 뒤 나도 살아남기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치의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승진이나 연봉협상에서 우위에 서고, 장기적으로는 추후에 이직할 때 레퍼런스를 받는 것이 될 수 있겠다. 보통 정치는 상사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거나, 나의 성취들을 홍보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다. 다만 나에게 정치질이 참 어려웠는데, 내향적인 성격, 주니어 때의 부족한 영어 실력 (일하는 데는 문제없었지만 가벼운 대화를 나눌 때는 끼기 어려웠다 - 이때는 다들 말이 빠르고 속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잡혀있어서 힘들었던 듯하다. 또 생각해보면 그때는 퍼포먼스 마케팅 커리어를 쌓은 지 고작 1년이 넘었기 때문에 내가 한 일에 별로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퍼포먼스 마케팅은 공식처럼 딱딱 답이 정해져 있는데, 아직 그 논리들이 머리에 확실하게 잡히기 전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 업에 자신이 없으니 내 성과를 홍보하기도 어려웠다.


동료들이 외향적인 성격을 이용해 정치를 하는 동안,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정치를 했다. 동료가 나에 대한 선입견을 만드는 것을 그대로 이용했다. 그 동료는 나는 사람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걸 잘하고, 흰다는 기술적인 일을 잘한다고 내내 떠들고 다녔다. 사실 매니저로 가려면 기술적인 것보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 대신 본인이 승진해야 한다고 은근히 홍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지 말던지 동료들은 미팅에 가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에 집중할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퍼포먼스 마케팅 기술을 늘리기에 집중했다. 일을 하다가 모르는 일이 있으면 매니저를 잡고 물어보고, 매니저가 모르는 일은 구글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끈질기게 물어봤다. 구글 애즈 서포트 센터에서 안 읽어본 페이지들이 없을 정도로 매일 읽고 공부를 했다. 4년 차가 됐을 즈음에는 헤드보다 기술적인 지식이 더 높아서 (헤드는 보통 윗사람들에게 보고나 팀 관리에 집중하는 게 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전략을 세울 때 항상 나와 먼저 논의를 하게 되었다. 또한 비록 사람들에게 먼저 살갑게 먼저 말을 걸진 못 하더라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도와주려고 노력을 했다. 타 팀에서 연락이 왔을 때는 빨리 대답을 해주고, 내가 모르는 일이면 다른 사람들을 연결해줬다. 그리고 동료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미팅을 잡아서 상세하게 기술을 가르쳐줬다.


사이다 결말은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돈과 직책을 쫒던 동료들은 규모가 작은 회사로 다 이직을 했고, 결국 나는 이 대기업에 남아 매니저 타이틀을 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름 조용하게 일을 열심히 하던 것을 모두가 알아줬는지 마지막에 이직할 때 헤드가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끝내주는 추천서를 써줬다고 말을 하기도 했고, 다양한 팀들의 동료들에게 추천을 가장 많이 받아 회사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도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동료들의 비율이 성격을 이용해 정치를 한 동료들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내 방식대로 했던 정치가 커리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낸 셈이다. 그러니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정치에 대해 막연히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잘 맞는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안 맞는 옷을 입으려 하기 보다는 때로는 나와 잘 맞는 옷을 입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인종과 출신에 상관없이 사람의 진심을 알아보는 보스들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Photo by dylan nolt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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