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충덕 Oct 26. 2024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 지음


‘강신주의 감정수업’ 장마다 덧붙인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중 ‘46 슬픔’의 일부분이다.     

‘타자와의 마주침이 없다면 감정도 존재할 수 없다. 타자를 만나서 삶이 충만해진다고 느낄 때의 감정이 기쁨이라면, 슬픔은 그와 반대로 타자를 만나서 삶의 충만함이 훼손된다고 느낄 때의 감정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기쁨이나 절대적인 슬픔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불행히도 우리는 영원을 구가하는 신이 아니라서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은 상대적이거나 조건적일 수밖에 없는 법이다. 원치 않은 타자와의 관계가 지속되면 우리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지배된다. 이럴 때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조금만 더 잘해 주는 타자가 등장하면, 우리는 너무 쉽게 기쁨의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당연히 우리는 내게 기쁨을 안겨 준 타자와 함께 있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타자보다 더 많은 기쁨을 주는 타자가 또 나타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새로운 타자가 기쁨의 대상이 되는 만큼, 과거 기쁨을 주었던 타자는 자연스럽게 슬픔의 대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건 슬픔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직 날 보고 감성적이라고 평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짜증스럽다는 느낌 같은 감정을 제외하면 다른 감정은 표현하지도 못하고 사는 건 아닌지...... 신혼 시절 늦은 시간, 시집을 읽다가 핀잔을 받은 이후 시집을 사지 않은 지가 스무 해가 넘었다. 핑계라기보다 주제넘은 것 아닌가, 혹은 분노였는지도 모르겠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감정에 대한 성찰이다.

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사랑, 대담함, 탐욕 등 모두 48가지 감정에 대하여 이성보다 욕망에 주목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감정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고 그에 딱 맞는 소설 중 최적의 부분을 찾아 소개한다.

48가지 감정마다 덧붙인 ‘철학자 어드바이스’까지가 감정 하나에 대한 편집 세트다. 책을 읽으면서 내 감정을 살리고 싶다 느낀다. 시집도 사야겠다고......     


저자 강신주는 에필로그에서 감정에 맞는 소설을 찾아 준 40대 노처녀 편집자 양희정 님을 칭찬한다. 에필로그에 밝히지 않았더라면 강신주가 모든 소설을 찾아 읽고 48가지 감정에 대한 글을 쓴 것으로 오해할 뻔했다. 저자만큼이나 편집자도 멋지다.     

남은 일은 48가지 감정에 맞춰 소개한 소설을 찾아 정독해 보는 일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SERICEO에서 처음 알게 됐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은 민음사에서 편집자 양희정 님이 2013년 11월 초판을 내놓았는데, 내가 읽은 것은 2015년 2월 1판 31쇄, 본문 526쪽 분량이다.     


1 비루함,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 - 『무무』, 이반 투르게네프
2 자긍심, 사랑이 만드는 아름다운 기적 - 『정체성』, 밀란 쿤데라
3 경탄,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로미터 - 『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4 경쟁심, 서글프기만 한 사랑의 변주곡 - 『술라』, 토니 모리슨
5 야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 - 『벨아미』, 기 드 모파상
6 사랑,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힘 - 『동풍서풍』, 펄 벅
7 대담함,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 비밀 - 『1984』, 조지 오웰
8 탐욕, 사랑마저 집어삼키는 괴물 -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9 반감, 아픈 상처가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저주 - 『풀잎은 노래한다』, 도리스 레싱
10 박애, 공동체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11 연민, 타인에게 사랑이라는 착각을 만들 수도 있는 치명적인 함정 -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12 회한, 무력감을 반추하도록 만드는 때늦은 후회 - 『전락』, 알베르 카뮈
13 당황, 멘붕, 즉 멘털붕괴와 함께 하는 두려움 - 『채털리 부인의 연인』, D. H. 로렌스
14 경멸, 자신마저 파괴할 수 있는 서글픔 - 『여인의 초상』, 헨리 제임스
15 잔혹함, 사랑의 비극 - 『인생의 베일』, 서머싯 몸
16 욕망, 모든 감정에 숨겨져 있는 동반자 - 『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즈
17 동경, 한때의 기쁨을 영속시키려는 서글픈 시도 - 『아우라』, 카를로스 푸엔테스
18 멸시, 사랑이라는 감정의 막다른 골목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에드워드 올비
19 절망,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는 치명적인 장벽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20 음주욕,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발버둥 -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21 과대평가, 사랑의 찬란한 아우라 - 『허조그』, 솔 벨로
22 호의, 결코 사랑일 수 없는 사랑 -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23 환희, 원하는 것이 선물처럼 주어질 때의 기적 - 『판결』, 프란츠 카프카
24 영광, 모든 이의 선망으로 타오르는 위엄 -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25 감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품고 친절을 베풀 수밖에 없는 서러움 -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26 겸손, 진정한 사랑을 위한 자기희생 -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에밀 졸라
27 분노, 수치심이 잔인한 행동이 될 때까지 -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28 질투, 사랑이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 - 『질투』, 알랭 로브그리예
29 적의,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허망한 전투 - 『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
30 조롱, 냉소와 연민 사이에서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31 욕정, ‘프레스토’로 격하게 요동치는 영혼 - 『악마』, 톨스토이
32 탐식, 자신의 동물성을 발견하게 될 때 - 『먹는 일에 대한 이야기 둘』, 모옌
33 두려움, 과거가 불행한 자의 숙명 - 『유령』, 헨리크 입센
34 동정, 비참함이 비참함에게 바치는 애잔한 헌사 - 『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커포티
35 공손, 무서운 타자에게 보내는 친절 -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36 미움, 내가 파괴되거나 네가 파괴되거나 - 『피아노 치는 여자』, 엘프리데 옐리네크
37 후회, 모든 불운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나약함 - 『캐스터브리지의 읍장』, 토머스 하디
38 끌림, 사랑으로 꽃필 수 없어 아련하기만 한 두근거림 -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39 치욕, 잔인한 복수의 서막 - 『토요일』, 이언 매큐언
40 겁, 실패를 예감하는 위축된 자의식 - 『여명』,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41 확신, 의심의 먹구름이 걷힐 때의 상쾌함 -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42 희망, 불확실해서 더 절절한 기다림 -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43 오만, 사랑을 좀먹는 파괴적인 암세포 - 『위험한 관계』,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
44 소심함, 작은 불행을 선택하는 비극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 사강
45 쾌감, 포기할 수 없는 허무한 찬란함 -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 조르지 아마두
46 슬픔, 비극을 예감하는 둔탁한 무거움 - 『미국의 비극』, 시어도어 드라이저
47 수치심, 마비된 삶을 깨우는 마지막 보루 - 『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48 복수심, 마음을 모두 얼려 버리는 지독한 냉기 - 『빙점』, 미우라 아야코     


P.S.  2015년 9월 24일 오후 11:34

작가의 이전글 축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