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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Aug 06. 2024

나를 지키는 조촐한 가이드

카피생활 6년째.


디자이너는 오늘도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내가 주물냄비로 보이는지

내 일을 저 일처럼 주물주물.


저 멋대로 말도 없이 카피를 바꾸더니

이젠 사전 알림도 없이 일정까지 바꾼다.


더 빨리 달라 닦달볶달.

내 얼굴은 불닭볶음면.


일하다 자존심 상하는 순간이 있다면

월권, 침범의 협곡이다.


고심이 담긴 카피를 가볍게 치부할 때?

그럴 때는 인간적인 대우를 못 받은 느낌이라

자존심이 상한다.


되게 자존심 상하게 하는 사람은

대게 진흙처럼 들러붙어 짓누른다.

무시하기엔 자존심 상하고 반박하자니 쓸데없고.


그럴 때면 훨씬 넓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면서

(마침내 때가 되면)

은연중에 본인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닫게 해 줄 결정적 사건이 생기길 바란다.


그런 사람을 동료로 만나면 업무적으로

필요한 감정과 대화만 주고받고 싶다.

실은 것도 벅차다.


감당 안 되는 사람을 동료로 만났을 때.

나를 지키는 조촐한 가이드가 형성된다.


노감당 동료는 대부분 경험이 없어 모르거나.

지금까지 방식에 길들여진 경력자다.

전자는 조금씩 맞춰가면 되지만 후자는 어렵다.


하지만 카피라이터는 칭찬하는 직업이니

그들의 장점을 찾아 좋은 점을 발견한다.

그 좋은 점이 그냥 좋다가 아닌

‘어떻게’ 좋고 ‘무엇이’ 굉장한지 생각한다.


그래야 좋은 방향으로 흐른다.

껄끄러운 관계로 일하면 결과물도 껄끄럽다.

애만 쓰고 결과물이 엉망이면 무슨 소용인가.


상대는 변하지 않으니 내 생각을 변화시킨다.

원하는 게 무엇이고, 내가 어떻게 해야

수월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


사회생활 15년째지만 여전히 어려운 조직생활.

8번째 이직한 곳에서 목표 기간 1년을 채운 뒤

2년을 더 채워보고자 버티고 배우는 중이다.


무심하고 무례한 말에 휘둘리지 않는 배짱을 키우고, 모두와 친할 필요 없이 상황에 따라 사무적으로 대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화가 나더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능력과 감정 노동을 줄이는 방법을 배우며,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실력 기르기에 전념하는 시간을 단련 중이다.


무엇보다 내가 느낀 감정을 짧고 뾰족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폐부를 찌를, 한 문장!


정곡에 찔려봐야 정곡을 찌르는 글을 쓴다.

번뜩여 봐야 번뜩이는 글을 배회한다.

심장을 쏘여 봐야 심장을 쏘는 글을 쓴다.


모든 경험은 글이 되니까.

그래서 오늘도 이런 경험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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