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일잡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비 Feb 19. 2021

왜 영업부가 움직이지 않을까

[전직 마케터의 교통정리] 엉덩이가 무거운 영업부 움직이기

이번 주는 전화로 시작해서 전화로 끝날 것 같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월요일부터 몰아치는 각종 요청들과 미뤄뒀던 방문 약속들이 쏟아진 구정 직후는 늘 이렇다. 무엇보다 합병 이후 합쳐진 팀 내 업무 분장과 언제나 미제로 남아 있는 영업부와 마케팅 간 얼라인먼트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주간이다.


나는 전직 마케터였고 지금은 영업부 소속이지만 약간 비껴난 업무를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우리 영업사원들을 조금은 옵저버 입장에서 보게 된다. 합병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완전히 유기적인 팀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업무분장과 직무별 JD의 문제이고, 결국 매니지먼트의 문제라 판단해서 내가 나서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생각이 아예 없다. 단, 늘 생각한다. 내가 이 조직의 장이라면 나는 어떤 조직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좋은 학습의 장이다.


지금 떠오른 이슈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작년 연말 만들어진 수퍼에이급 고객들에게 추가적인 프로모션을 지급하기로 한 것. 다만 이건 합병 전 관행적으로 지급해왔기에 기존 거래처들의 요구사항이지만, 현 매니지먼트 팀 입장에서는 이걸 꼭 줘야 하나라는 의문이 있었다. 탑클래스 거래처 수는 매우 적고 그들은 이미 많은 베네핏을 받아갔으며 수량을 채웠지만 굳이 요구하지 않은 거래처도 많았으니까. 하여 협의를 본 것은 그대로 진행하되 유관부서와 상위 매니저들에게 레퍼런스를 추가적으로 들이밀기로 하고 마케팅에서 간단히 양식을 마련해서 영업사원들에게 거래처로부터 리포트를 받아오도록 지시했다.


근데, 근데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영업사원들이 심드렁하다. 팀장도 딱히 강압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지역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이걸 만들어 제출해야봐야 지나간 매출은 연 마감 다 끝났는데 뭘 어쩌라고다. 올해의 다음 주문 일자만 뒤로 하염없이 밀릴 뿐. 마케팅에선 자료가 안들어와서 발 동동 구르는데 영업부는 이거 아니라도 매출 만들기에 바쁜데 하필 연중 근무일 수도 가장 짧은 2월말까지 해오라니. 이걸로 내 인센 기준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거래처에서 심지어 그 대상인 줄 모르지만 수량을 다 채운 곳도 있는데 땡큐지 그걸 왜 내가 선제적으로 가서 알려줘야 하나, 싶은 걸테다.


나 역시 회사 정책으로 나온 건데 이걸 일괄 밀어야 실은 회사 신용도도 유지되고, 이 탑급 거래처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들인 경우도 있으니 프로모션 정보는 전화 한통이면 금방 알 수도 있는데 지역 담당자가 키 맨이 아닌 주문 담당자하고만 말을 트고 지낸다면 모르는 척 할 수도 있겠다만, 모든 일이 그렇게 내 시나리오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니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나는 팀장도 아니고 이 업무는 내게 직접 할당된 것도 아니라서 도와줄 준비는 하고 있으나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없다. 나에게도 모티브가 있는 건 아니다.


진짜 내 성질머리도, 오지랖도 다 죽었다. 예전 같으면 왜 안하냐고 판 다 엎고 수십명 담당자들한테 일일이 전화하고 팀장들에게 일일이 상황 설명하고 에스오에스 쳤을텐데, 많이 컸네. 토닥토닥.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등돌리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이게 먼저다. 내 말이 맞건 틀리건 간에.


하여 팀장님께 상황 설명드리고 팀 독려를 부탁한다. 마케팅 차장님과는 각 직무별 입장을 대변해준다. 그나마 이 회사 조금 더 다닌 나라서 예전엔 어땠고 지금은 왜 이게 안돌아가는지 설명해드린다. 그리고 이 조각난 팀웍에 대해서 같이 스토리를 맞춰본다. 어디에서 이 업무 커뮤니케이션 벨트가 끊어졌는지. 개별 담당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각 거래처별로 입장이 조금씩 또 다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역시 말을 나눌수록 퍼즐이 맞아간다. 사정 뻔하고 입장 다 안다 생각했던 나의 경험치로 비벼보는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또다른 영업부의 입장들이 나온다. 아하 아하. 조금씩 더 기저에 깔린 생각들과 상황들이 더 나온다. 조금씩 솔루션의 싹이 보인다.


결국 영업부를 움직이는 힘은, 실은 인센이나 매출압박이 크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내셔날레다. 개인적으로 이 영단어는 나의 very like 디렉토리에 늘 들어가 있는데 사람이 아무리 노예같은 삶이라도 이걸 왜 해야하지 어리둥절 하게 이해하는 상황에선 선뜻 일을 시작할 수 없고, 반대로 일을 해야 할 이유와 명분만 명확하다면 돈보다 훨씬 조직적으로 팀을 움직일 수 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있던가요. 약간 귀찮은 지점은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는 매 업무마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안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의 포인트에서도 충분히 보완이 되어야 한다는 것.


구걸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결국 마케팅은 영업부에 대한 영업이 필요하다. 나 대신 메시지를 전하고 거래처의 동향을 파악해줄 손발이 되어줄 그들이 신나서 자발적으로 안갈 수 없게 설득하는 영업. 이것이 내셔날 그리고 이 끈을 길게 이으면 결국 얼라인먼트와 결과적으로 가성비 좋은 스마트워크로 이어진다는 것. 참 지난한 일일 수 있지만 이게 또 하나의 배움이고 재미이지 않을까.


자잘한 교통정리가 남았지만 거진 큰 그림은 알겠네. 이젠 아직 못한 전화 몇 통을 더 돌리는 것. 이렇게 전화 몇통 하다보면 해지는 노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퇴근 시간이다. 재택과 현지출퇴근자에겐 별 의미없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갑을 대하는 을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