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Feb 15. 2023

스위니토드, 근데 이게 무슨 공연후기야.

중년부부의 노알맹이, 현실판(?) 뮤지컬 감상평

한달전쯤이었을까?

그렇게 나의 삶 전체를 옥죄던 집 문제가 해결이 됐다. 드.디.어!! 광명의 빛! 스텔라표 대형사고 수습!

대출을 갚을 길이 생긴거다.

지난했던 2022년 이 시기에 우리가 부부관계까지 잃으면 우린 모든걸 잃는거라는 생각에 서로 합의,

각자의 위치에서 견디고, 버텨준 남편과 나에게 뭔가 보상력이 강력하게 담긴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서초구 방배동.

내일 모레면(뜨아, 정말 내일 모레네!!) 떠날 이곳으로 마음먹고 이사를 올때는 사실 내가 가장 기대했던건

아이들 교육보다, 삶의 퀄리티같은 것보다,

어이없지만 솔직하게도 예술의 전당과 가깝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이것저것 모든것이 마음대로 안되어 방황이 짙던 20대의 나는 드디어 내 영혼이 좋아하는 곳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공연장, 특히 음악공연을 하는 곳들이었던거다.

그 미련이 남아 ‘예술의 전당 가까이 사는 것’은 일종의 나의 로망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그건 로망이 아니라 노망에 가까운 타이밍이였다는 것을 금방 알아채야 했지만...


마땅히 공연을 함께 즐길 메이트가 없어 거의 난 혼자였다.

아무리 좋은 공연도 보고, 감명에 젖었어도 공연을 마친 후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 쓸쓸하게 빠져나오는 기억들은 공연의 감동을 다 앗아갈만큼 건조하고 씁쓸했다.




방배동으로 이사올 때, 난 왜 철이 없었지?

아이는 넷이였고 역시 나이는 마흔이나 훌쩍 넘었는데도, 어찌나 철이 없는지 예술의 전당과 가까이만 살면 그 많은 문화혜택을 절로 받을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예술과 가까이, 문화생활을 누린다는 것은 공연장과 가까이 사는 거리가 아니라, 공연티켓을 턱턱, 걸림없이 예매할 수 있는 경제력과 시간이라는 여유라는 것을, 그 초등학생도 아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래도 이 생면부지의 장소로 민족대이동을 한 것이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일할인 티켓을 구해 혈안이 되었고 구할때마다 나는 점점 싫은 기색을 내기 시작하는 남편과 꾸역꾸역 동행을 종용했고 그의 싫은 기색을 모른척했다.




삶의 모든 것을 맞춰주는 나의 남편에게도

‘이건 사기결혼이다’라고 주장할 만하나 몇 가지

단서가 있는데..


1번이 70키로대를 유지하고 살겠다는 약속이고

2번이 음악, 공연 이런거 정말 즐기고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이며

3번이 마주앉기만 있어준다면 집밥은 죄다 자신이 해다 바치겠다는 약속이다.


이 모두, 결혼전 내가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안이었고 이 사람을 평생 반려자로 선택한 이유 중 큰 포션을 차지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당근빠따로??절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배신감에 싸운 날도 있고, 이 때의 약속을 무기삼아 부부싸움의 레퍼토리로 늘 써먹는 단골메뉴다.


그래도 삶의 전반적인 것들을 잘 해내고 있는 그이기에 난 그 세가지를 크게 눈감아 준다. 하지만 2번, 나의 문화생활 메이트가 되어주기로 한 약속은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려 한다.


20대에 혼자 외로웠던 모든 공연장은 그와 동행으로 하나하나 도장깨듯 희석해 가고 있는데,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는 아직 기회가 없었다.


 그래!

이번엔 정말 큰.맘.먹고 비싼 뮤지컬 티켓을 예매하는거야. 그 동안 싼마이만 찾아다닌 나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마지막이니까 진짜 보고 싶은 것을 봐!!  너 그래도 돼~ 라고 하면서부터..

인생 절체절명의 고민이 시작됐다.


클래식이냐, 뮤지컬이냐..


뮤지컬보단 클래식이 좋은데, 그 중에서도 ‘말소리 나오는 것’보다는 ‘악기로만 이루어진 클래식 공연’을 선호하는데...






누가 왜 이렇게 공연장에 집착하냐? 고 물은적이 있다. 이 질문에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원래 좋아했는데, 실컷하지 못했고. 누린다 해도 외로웠고, 사남매 육아로 지친 내 영혼이 조용히 쉬어가기에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서 라는 답을 얻었다. 또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생각에 치여 지친 일상에서

떨어져 가장 생각의 가지치기가 잘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만히 쉬어가는 스윗스팟,
내 영혼이 좋아하는 곳.
그곳에 가자..


그런데 이건 비보다. 슬프다.

공연보는 내내 ‘하아... 이건 아닌데...”

하아.... 집에서 도보로 가능한 근거리에 있는 예당에서  악전고투 고민과 고민의 그 끝에 결국


난 좋은 클래식공연을 택해야 했던거다!!


왜 그랬는지

이날따라 난 그만 입소문 자자한 ‘스위니토드’를 보겠다는 생각에 꼿혀버렸다. 전미도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너무 편협하게 클래식만 찾아 다니니까,

문화생활에 외골수가 되어가고 남편도 흥미있는 분야를 찾지 못하게 만든게 아닐까?

나에게 변화를 주자~며, 샤롯데에서도 사무치게 외로웠던 20대의 나를 40이 넘은 내가 남편 손 딱! 잡고 가서 기억을 치환해주고 오자~ 라고 하며..




전미도, 신상록 라인업이 제일 재밌다는 후기에 눈에 불을 켜고, 날짜와 라인업에 맞는 티켓을 찾았다.


드디어 한달을 기다린

그날이 어제 연인들의 날이라는 발렌타인데이였다.

(여기서 잠깐‼️

어제가 발렌타인데이인줄도 몰랐다는 분, 손!! ㅎㅎ)


하필, 기다리던 공연에 맞춰 기분은 저조했고

아이들은 상태가 엉망이었으며, 나도 울다자다해서 퉁퉁부어 못생겨져 있었다.



 못생김의 원인, 어제의 포스팅

https://m.blog.naver.com/2939225/223014930412



취소를 해버릴까, 몇번을 고민하다가 여수에서 술로, 영업으로, 킥오프 미팅으로 탈탈털려 집에 돌아와 잠시 기절해있는 그를 깨웠다.



샤롯데 시어터를 처음 본 부산 촌놈(?) 그는

“이런게 있는 줄도 몰랐다”며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어디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게 뻔히 보이지만 짐짓 모른척 하고, 샤롯데에 관한 내 지난추억들을 떠벌,떠벌 해본다.


공연내용은 각설한다.

그냥 이 한마디만 하자면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 나는 전통 오케스트라 클래식 공연을 봐야 했었다.


그도 그랬다.

어짜피 잘꺼인데, 시끄럽게 말하는 것보단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잠에 더 도움이 된다고..

(역시. 클래식을 들으면서 자야 끝나고 더 개운하다나 뭐라나...ㅉㅉ)

그림, 음악, 문화생활에 조예가 깊은 듯 얘기했던

13년전 뉴욕의 아쌀한 그는 어디가고,


어디가 더 잠이 잘 왔었는지, 어떤 음악이 자기 잠취향에 적격인지로 공연후기를 말하는 그를 난 사랑? 아니 거래의 힘으로!! 그렇게 합을 맞추며 살아간다.



공연 후, 적당히 배가 고프다.

겨울 밤 찬공기에 발을 동동굴리며 나의 손을 감싸쥔 그의 손은 여전히 포근하다.



이렇게 길들여진 내가
그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을까..



발렌타인데이라고 방이동 먹자골목이 시끌벅적하다. 술집도 너무 시끄러운건 싫은데..

인터미션 시간에 빠르게 검색해둔 그가 원하는 ‘뜨끈한 국물’이 안주인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한적하고, 소란스럽지 않고 음식도 생각보다 괜찮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집에 있는 네 아이를 ‘전화육아’로 밥과 구몬선생님과 볼 영화와 싸움과 논쟁을 정리시켜주고.


드.디.어. 하이볼 두잔과 맛있는 안주를 사이에 둔 부부대화의 장면을 맞이했다. 2주간의 잦은 출장으로, 그래도 계속 얼굴은 보았고 글도 읽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레알 이야기들을 할 시간이 없어 답답했다.

드디어 디어

이야기 보따리에 묶어둔 아이들을 풀어냈다.


사랑을 속삭이고 웃음꽃이 만발한 이야기는 주변 테이블이고 우리는 남 다르게(?).. ㅎㅎ

여전히 그가 해결해 주지 못할, 내 숙제..

정수기이전설치등등 이사로 닥친 현실의 문제, 미국과 연봉이야기, 아이들 싸우는 힘든 이야기, 어느쪽으로든 불균형의 온상인 양쪽 부모님 이야기. 이 속에서 말도 탈도 많은 형제이야기들..

내가 사랑의 힘으로만 동반해 줄 수 없어 해결이 안되는 그의 고민이 테이블 사이에 붕붕 떠서 먹구름을 이룬다. 이게 중년의 농익은 생활데이트지 뭐.. 하며


그래도 우리 아이들 잘 크고 있는것 같다는 얘기에 훈훈한 웃음이 잠시 스치는 듯 했다가 교육비라는 현실앞에 금방 또 먹구름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모든게 함께니까.


그러면서 또 드는 생각.


세상은 이런면에서까지 공평하구나.

이렇게 부부관계를 잘 매만져 놓아도 언젠가 상실의 시대를 겪을 인생 한 켠에서는 홀로서야 하는구나


글벗님들이 말하는 ’홀로서기‘가 이때일까?

더 큰 성장을 노렸기에,

이 때를 타고 어느덧 자동함수로, 어느 타이밍에는

결국 이게 오고야 마는구나...


관계가 깊고,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홀로서기기는 이렇게나 고통스럽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사실 너무나 두렵다.

아니 막상 시작하면 의외로 괜찮을지도 모른다.

뭐든 시작하기 전이라 가장 어둡고 불안하고 불편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라 해도, 이건 너무나 미지의 세계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은것이 인생전반에 좋지만 결국 타인인 남편과의 분리는 누구에게나 오는 인생의 숙제라는것. 이건 뭐, 사이가 좋았었을수록 생이별일테니..

결국 이리치나 저리치나 인생은 힘든거구나...





내일의 힘듦은 힘듦이고 지금은 입에 들어오는 맛있는 음식의 향연에 집중해본다.

학산 플래터와 밀풰유 나베 국물로 허한 육신에 양분을 주고, 그간 못다한 대화들로 허한 영혼에 양식을 채운 후 자정을 넘은 중년은 12시가 넘자 꾸벅꾸벅 졸려고 한다.

아직 쌩쌩한 이제 시작인 많은 젊은이들을 뚫고

택시에 몸을 실어 네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강에 어린 야경이 너무나 스산하고 아릿했다.

가방 주머니를 뒤적거려 스위니토드에 느껴진 감상들을 떠올려봤다. 문득 전자숫자가 가르키는 1시를 향해가는 택시안에 숫자를 보니, 내일 새벽글쓰기 걱정이 된다.


몇 시간 못자겠네.

그래도 오늘, 공연은 기대보다 별로였지만 글감은 건졌네. 날짜와 사람이 다 했다는 내용이 되겠지만..

그래도 공연에 대해 한 두마디 정도는 해볼까?하며 티케팅할때 나눠준 이걸 (이름을 꼭 알아내야겠다) 꺼내본다.




그대와 나 사랑스런 커플.

멋진 바다?

아.. 우리 사이에 놓일 태평양 바다를 나는 원망할까,

또 다른 꿈을 꾸게 될까..


슬픈 감상에 젖어 그를 쳐다보니...

이렇게 멋지게...




자.고.있.네...




사남매 아빠의 무게..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커리어의 고민..

자신의 힘만으로 부자아빠가 되고 싶은

간절한 노력..

아내의 공연메이트 자리를 지키고.

아프신 아버지의 장남자리를 지키고..

까다로운 장인의 막내사위 역할을 해내고..

일호글벗의 자리까지 지키는 그의

이유있는 고단함에.


슬며시 어깨를 내어준다.


역시,.... 그는


머리가 컸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씨 다섯명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