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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26. 2021

최씨 다섯명에게..

비관이 아니라 비전이다.

철이 드려는건가? 아니면 본격적으로 늙으려는 건가?

여튼 요즘 감사할 일도, 별거 아닌데도 감상에 젖을 날이 많다.


허무주의라면 누구와도 싸워 지지 않을 자신있고, 기질적 우울함으로 보낸 시간의 총합또한 종합순위 상위권을 자신하는 내가 갑자기 세상이 조금 예뻐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바로 지금부터 요이 땅은 아닐테다. 하도 내 자신이 신통방통해서 가만히 지금 현주소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보니 약 1년반쯤 딱 이 동네에 이사를 오면서 부터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가 싶다.


어제는 동료작가이자 공동육아자인 그와 변호사 사무실 상담을 다녀왔다.

잘 살아보겠다고 여보란듯이 살겠다며 호당당 거리고 살던 작은 에너자이저의 뒷 수습중 거의 막바지다. 유난히 후덥지근 덥고 돈 이야기가 오가니 잔뜩이나 민감해진 탓에 인상을 자주 찡그리는 그의 눈치를 살살 보며 갑자기 미안해진다. 이보다 더 미안한 짓도 많이 했는데 어제는 너무 그를 당연하게 나의 뒷감당을 해주는 사람으로 여긴게 아닌가..


그래서 팔짱을 끼며 "와~~ 오빠 날씨 진짜 좋다. 추워지더니 낙엽든것좀 봐. 어머어머~" 하며 짐짓 호들갑을 더 떨어보는데 "뭐, 먹고 싶은거 없어요? 점심 사줄게" 한다.

"치, 뭐 잘했다고 점심까지 먹여요?" 했더니 앞만 보고 무심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

"그렇다고 못한건 뭐 있어요.."


나 살자고 참 많은 썩지 않을 플라스틱을 던져댄 나다. 나를 만나기 이전의 내 무수한 문제들이 마치 그가 해결해야할 당연한 숙제인 마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감정을 배출하다가, 가끔 눈치를 봤다.

그래도 내가 살려면 그만한 안전지대가 없었기에 그런 나약한 핑계 뒤에 숨어 아이를 낳고 네 아이를 모두 내 방식대로 그렇게 쥐락펴락 하면서 살다가.


글쓰기가 인생에 도움이 됐는지, 독서가 철학이 사유의 시선을 조금 높여주었는지.

이제야 주변이 명확히 보인다. 다 내가 한 것 같고 다 내 고생의 결과물이라고 옹졸한 틀 안에서 갇혀 있던 나에게 날개를 달아준 건 남편의 극진한 넓은 마음과 책과 쓰기 그리고 네 마리의 똥강아지다.

요즘은 글벗이라는 우정까지 추가됐다. 그렇게 다 갖추고 살아도 한없이 우울하다고, 텅빈것 같다고 답도 없을 울분을 최근까지 징징거렸는데.


죽을때가 됐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죽음이 두려울 정도로 내면의 내가 달라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두 딸아이와 오후에 한가하게 커피를, 차를 한잔 하다 말고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그리고 그 감정을 전처럼 삭이지 않고 그대로 담아 바로 옆에서 피곤한 낮잠을 자고 끌려나온 그에게 전했다 "나 살려고 당신을 자주 죽여서 미안했어. 여보. 그걸 고마운지도 모르고 그렇게 오래 했는데, 어떻게 버텼던거야?"

아까부터 왜 이러냐며 당황해 했지만 그런 그의 눈시울도 벌개 있었던걸 보았다.

앞에 앉은 딸들은 엄마 왜 울리냐고, 무턱대고 아빠보고 사과하고 아빠가 잘 하라고 한다. 이 또한 얼마나 세뇌와 학습의 의한 결과인지... 문득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최씨 다섯명에게 몽땅 미안한 이 마음.

어디가서 구원 받을 수 있으려나?



오늘 새벽 11기 글쓰기를 시작하고 오티 후 정식 첫 글쓰기 날이라 새벽공기를 가르며 작업실로 종종거리던 시간 전원이 모두 첫 날 글쓰기를 무탈히 발행하고 그들에게 정성이 듬뿍담긴 댓글을 쓰고 아침 7시 퇴근을 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드라마 작가가 되어보고 싶어 혼수대신 'MBC 아카데미 드라마 작가반'을 수강해 달라고 남편에게 강매하여 열심히 신부수업대신 듣던 수업에서 작가선생님이 말하던 그런 인생, "아!! 부럽다" 하는 그런 이생을 내가 살고 있구나.


이쁘게 크고 있는 네마리의 똥강아지와 그들과 나를 지켜주는 사랑스러운 남편,

집에서 3분거리에 있는 나만의 작업실, 그리고 불혹이 넘어 찾았지만 평생을 함께 할 나의 업, 글을 쓰는 일, 그리고 쓰도록 돕는 일..


작가 선생님의 삶을 침흘리고 부러워 하던 29살의 예비신부는 12년만에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계속 바깥으로만 시선을 향해 있는 나머지 나의 행복대신 남의 행복을 쳐다보며 또 침만 흘리고 있었다.

그 침대신 이제는 참회의 눈물을 흘려보려 한다. 남편에게 그동안 자존심으로, 다 말하면 혹시 내 매력이 바닥이 보일까봐 하지 못했던 모든 속 얘기도 다 나누고 나의 글에도 모든 가식을 벗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내 마음에 들지 않던 나의 글, 어렴풋 이유는 알았지만 어떻게 고쳐내야 할 지 모르겠던 그 방법의

막연한 희망의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부터 나는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울 수는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저 매일 쓰고 쓰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누군가는 듣고 싶은 말이 되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누군가는 읽고 싶은 글이 되기를..

그런 사람이 조금씩 늘어가면 좋고, 아니라면 어쩔수 없는 그런 마음으로 다시 글을 향한 마음을 재부팅해본다.


11기를 시작하면서 시달렸던 내적 갈등.

아, 그만 쉬고 싶다.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이내 시동이 꺼지는 중고 자동차 같던 열정을 억지로 끌고와 다시 시스템에 넣어보니. 그래!! 이맛이지..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함께 글쓰는 시스템을 만들었지!! 하며 내면에 자신감이 붙는다.


그래서 오랜만에 브런치의 하얀 여백과 마주할 수 있었나보다.


내가 별로라는  인지하는 사람은  나은 사람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선량함이나 역량에 의존하는 방식보다 제대로 굴러갈  있는 체계가,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빨리 가닿을  있다. 그건 비관이 아니라, 비전이다.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비관의 삶의 늪에서 드디어 무사히 빠져나오는 나를 눈물겹게 환영하고

이날이 있기까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썩지 않은 플라스틱을 모두 받아 삼킨 그와 그와의 작품들 최씨 5인에게 이 가슴뜨거운 감사를 꼭 표현하고 싶었다. 


그게. 이렇게 끝내 기록해 두고야 마는 일이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고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사랑의 표현 방식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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